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필수 조건은 ‘말’이 아니라 ‘실천’임을 증명하며 한평생 아동권리 실현을 위해 일해온 세이브더칠드런 김인숙 고문. 1970년대부터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사업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아동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제사회에 한국 아동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김인숙 고문은 30년 전 한국에 처음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알린 사람입니다.
1989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되기 5개월 전 협약을 알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해마다 열리는 세이브더칠드런 연맹총회가 1989년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어요. 출장을 준비하던 중 연맹 총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동권리를 논하는 중요한 국제회의가 있으니 총회 2~3일 전 먼저 와 달라고요. 국제회의에 스웨덴 수상이 와서 아동권리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며 앞으로 5개월 후 유엔총회에서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될 예정이라고 했어요. 그날 처음으로 아동권리협약을 알게 됐어요.
국제회의에서 어떤 논의를 했나요.
아동권리협약의 실질적 이행이 가장 중요하므로 전문 분야별로 논의가 필요했어요. 당시 한국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지역 기반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커뮤니티 베이스(지역단위로 아동의 삶을 증진 시키는 일) 분야에 들어가 의견을 나누었죠. 어떻게 하면 아동을 중심에 두고 국가와 국제사회가 단계별로 통합을 이루면서 연계해 일할 수 있을지, 이행하려면 커뮤니티 베이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했어요.
가치를 공유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겠어요.
세계 각계각층이 모인 자리였는데 한국인은 저밖에 없는 거예요. 처음엔 이렇게 큰 주제를 안게 돼 덜컥 겁이 났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일은 내 사명이면서 세이브더칠드런의 사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협약 이행 방법을 배워서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결심했죠.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 후 협약과 관련해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아동권리를 연구하고 논의하는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2003년 11월 아동권리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1월 17일 아동권리주간 선포식을 열었어요. 선포식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약한 아동을 중심에 둔 복지를 보편적인 아동복지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어요. 아동복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 거죠. ‘한 사람이라도 노력하면 이렇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구나……’하고 감동했어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된 11월 20일이 포함된 한 주를 아동권리주간으로 지키자고 선포한 것도 이 날이에요. 사실상 아동권리주간도 세이브더칠드런이 만든 셈이죠.
말만 하지 말고, 보기만 하지도 말고
아동권리협약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협약은 아동권리에 대한 준거다’라고 말해요. ‘준거의 틀을 제시하는 거’라고요. 협약은 높은 수준이 아닌 최소의 기준, ‘다 못해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거죠. 좀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협약은 약속이야.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것만은 지켜주자는 약속’이라고 답해요.
협약에서 말하는 의무이행자는 누구를 뜻하나요.
협약에서는 국가를 제1의 의무이행자(이해관계자)로 정의하고 있어요. 후원자들 역시 이해관계자에 속해요. 후원자들은 아동권리 옹호를 위해 세이브더칠드런과 뜻을 같이하며 참여권을 이행하는 사람들이에요. 후원자들이 아동권리를 위해 마음을 담아 후원해주는 것 역시 의무이행자의 책무성을 다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아동권리실현을 위해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알려주세요.
우리 아이가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아이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때에 따라 적절한 도움이 필요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들을 양육자가 원하는 어떤 형태로 이끄는 것은 아이들에게서 기회를 빼앗는 거예요. 그리고 의견도 말해본 아이가 말하지, 항상 억압된 생활을 한 아이들은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두려움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어른들에게 필요해요.
아동권리와 세이브더칠드런세이브더칠드런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을 시작한 70년대만 해도 아동권리를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은 아동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모든 NGO가 아동권리에 기반한 사업을 한다고 말하지만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미 100년 전부터 아동권리를 토대로 사업을 수행한 역사와 뿌리가 있잖아요. 역사적인 자료도 많고 아동안전보호정책도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에서 만든 거란 말이죠. 이런 전문 자료를 숙지하고 모든 사업 현장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정말 아동권리를 중심으로 사업을 수행했는지 모니터링을 통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아동권리, 모르면 세이브더칠드런에 물어봐’가 돼야 하는 거죠.
글 이정림(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 김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