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발견부터 재학대 예방까지 아이들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입니다. 아동학대 현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하는 울산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 박종범 팀장, 서울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 이은혜 팀장, 경기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 임진 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동학대 관련 뉴스를 본 후에 옆집에서 아이가 오래 울면 ‘신고해야 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학대 상황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112에 신고하기가 망설여졌어요.
이은혜 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는 소리, 고함 소리가 들리면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니까 바로 신고해주시면 좋아요. 신고자분들이 저희한테 많이 물어보세요. 신고할만한 상황인지요. 그런데 학대냐 아니냐의 판단은 관계기관이 하는 거지 신고자의 몫은 아니거든요. 신고 내용만 보면 별일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현장 조사하면서 심각한 아동학대 사례를 발견해서 부모와 아이를 분리한 적이 있었어요.
박종범 범죄현장을 112에 신고한다기보다는 의심되는 상황에서 아이를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단순히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맞아서 우는 걸 수도 있거든요. 아이가 옆 방에 있는데 물건을 부수며 큰 소리로 부부싸움을 하거나 아이가 가정폭력을 목격하는 것도 아동학대에 해당합니다.
임진 아동학대 신고가 늘어날수록 아동학대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해주시는 게 필요합니다. 길에서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때린다면, 집안에서도 아이를 자주 체벌하는 상황일 수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꼭 신고해주세요. 아동학대는 조기발견이 너무 중요하고, 그 첫 단추가 아동학대 신고입니다.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박종범 112에 신고하면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현장에 즉시 경찰이 출동합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경찰과 동행하거나 혹은 경찰조사 후 따로 피해아동과 가족, 학대행위자에 대한 상담과 조사를 진행합니다.* 가정에서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지, 학대가 다시 발생할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서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하고, 아동을 학대행위자와 분리하거나, 경찰 수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은혜 아동학대 판단은 총 세 가지로 이루어져요. 잘못 신고한 경우 학대 상황이 없으면 일반사례로 분류하고, 학대까지는 아니지만 학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 조기지원사례로 판단해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사례관리를 합니다. 그 외에는 아동학대 사례로 분류하고, 심각한 경우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합니다.
임진 조사 과정에서 아이 몸에 상처가 많이 남았다거나, 아이가 적극적으로 분리 의사를 밝히는 심각한 상황인 게 드러나면 아이를 부모와 분리해 시설로 보호조치 합니다. 성학대는 필수적으로 분리하고요. 쓰레기집 같이 아동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없는 환경일 때도 응급조치로 분리합니다.
*2020년 10월부터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아동학대 현장조사 업무를 시·군·구청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담당합니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업무가 단계적으로 잘 이관되도록 2022년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조사 업무를 하거나 돕게 됩니다.
아동학대로 경찰수사가 이루어지면 다 형사처벌 받나요?
이은혜 다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아이 몸의 상처가 심하거나 성학대인 경우에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그 이외에는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으로 보호관찰이나 교육·상담 명령을 내립니다. 알코올 의존도가 높거나 우울증 등 정신과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병원치료 명령을 내리기도 해요.
박종범 가정법원에서 내리는 보호처분은 교육과 상담을 통해 다시 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임진 수사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부모교육을 하려는 것입니다. 피해아동 치료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학대 행위자가 변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요. 아동복지법에는 강제성이 없어서 상담을 안 하는 분들을 설득하는 것 외에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럴 때는 수사 의뢰를 해서라도 부모와 아이가 상담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아동을 보호하고 가정을 돕기 위한 방식으로 처분을 내리는 거군요! 그렇다면 사례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박종범 신고접수부터 사례종결, 3개월 이상의 사후관리를 포함해서 사례관리라고 합니다. 사례관리의 핵심은 학대의 요인을 파악해서 아동학대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과 상담프로그램을 직접 제공하거나 필요한 자원을 연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을 막기 위해 체벌까지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앞으로 계속해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아동학대가 발생할 우려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지역 내 ‘스마트쉼센터’를 안내해주거나 어떻게 스마트폰 사용을 관리할지 부모 상담을 받게 하는 거죠.
임진 기본적으로는 올바른 훈육법을 교육하고, 학대피해아동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놀이치료나 상담치료를 진행합니다. 그 외에도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장애인복지관, 병원 등 전문기관에 연계하는 중재자 역할도 하고요. 학대의 문제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사례를 종결하지 않아요. 기관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평균 1~2년 사례관리를 진행합니다. 아주 경미한 아동학대도 6개월 정도 사례관리를 해요.
이은혜 매달 정기적으로 직접 아이와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아이와 직접 통화해서 다시 학대가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합니다. 수사의뢰 후 사법절차가 진행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법원과 소통해, 가정에서 재판에 성실하게 참여하도록 하고, 사례관리에 관한 의견을 보내기도 합니다. 아이가 부모와 분리되었다면 시설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계속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요.
아동학대 조사나 사례관리 과정에서 거부하는 부모님도 많을 것 같아요.
박종범 많은 분들이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만 아동학대로 생각하세요. 뉴스에 나온 범죄자와 동일시된다는 것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많은 부모님이 상담원을 원망하고 거부하시죠. 그런데 저희 업무에서는 잘못된 훈육 방법을 사용해서 아이를 가볍게라도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도 아동학대라고 말하거든요.
임진 우리나라에서 체벌이 당연시되는 문화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부모님의 경계심을 허물고 상담과 교육을 위한 자리까지 나오도록 하는 게 쉽지 않죠.
이은혜 처음에는 거부하시다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희 마음을 이해해주시기도 해요. ‘저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감시하는 게 아니라 가정이 건강해지도록 돕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진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동학대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던 지우(가명)의 그림입니다. 미술치료 초반에는 표정 없는 얼굴을 그렸고, 6개월이 지난 후 비로소 사람 얼굴에 눈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포로 위축되어 사람을 두려워하고 멀리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68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는데, 2019년 신고 건수가 3만 건이 넘어요. 직원도 많지 않은데, 조사와 사례관리 모두 쉽지 않겠어요.
박종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현장을 조사하는 조사팀과 상담과 교육을 하는 사례관리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조사팀에 있는데요. 갑자기 현장 출동을 나가야 해서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때가 많아요. 아동학대 신고접수가 예정된 게 아니어서 근무시간이 아닌 평일 저녁에도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죠. 당번을 정해도 금방 돌아와서….
이은혜 내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아이들은 맞으면 고쳐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부모 입장에서는 어떤 기관에서 가정에 개입하는 거니까 저희가 분노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죠.
임진 작년 한 해 동안 경기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접수한 아동학대 신고건수가 약 940건이었어요. 한 상담원이 진행하는 사례관리가 60가정이고, 사후관리는 30가정입니다. 한 사람이 한 달에 90가정을 사례관리하는 게 쉽지 않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시도별로 없는 곳도 많아요. 아동학대가 아이들의 생명권과 직결된 만큼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박종범 ‘평생 경찰서 안 가봤는데 이렇게 가보고 좋네요’라며 비꼬시던 분이 1년 정도 교육받고 상담받으시면서 아이들에 대해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방법을 몰라서 아이들한테 잘못했던 게 미안하다고도 하시고요. 미술치료 받으면서 만든 작품을 상담원한테 선물하는 아이도 있어요. 전부 그렇진 않아도, 이런 케이스 하나가 나머지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죠.
이은혜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린 국민을 지키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밑바탕을 다지는 일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는 가정을 보면 이 일을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보람을 느껴요.
임진 한 아이의 생명·안전에 관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피해아동이 성인까지 잘 자랄 수 있도록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제가 믿는 것 하나는 ‘내가 버티는 만큼 피해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아이들의 환경을 좋게 만들 수는 없지만, 내가 만나는 몇 명이라도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잖아요.
꼭 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임진 세이브더칠드런 후원자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동보호전문기관 정부 보조금 예산이 정말 적거든요. 그런데 세이브더칠드런은 학대피해아동 심리치료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요.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단순 모니터링이나 유관기관 연계를 넘어 학대피해아동을 직접 치료하고 학대행위자를 교육한다는 게 강점입니다. 사업비가 없으면 치료나 교육을 할 수 없는데, 후원자분들이 계셔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박종범 아동학대는 서로의 생각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아동권리를 침해하는 상황,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이 아동학대거든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알아가도록 돕는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혜 처음에는 엉덩이 한 대를 때렸지만, 이 한 대가 두 대가 될 수도 있어요. 체벌이 점점 습관화되고 강도가 세질 수 있거든요. 초반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하게 되면 부모님은 학대나 체벌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조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관심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아동학대 의심이 되면 적극적으로 신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