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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죽음은 운명이 아니다
보도자료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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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농민 드리스는 석 달 전에 아내를 잃었다. 분만을 앞두고 아내가 하루 반이나 진통에 시달리자 드리스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 들것에 아내를 싣고 1시간을 걸어 보건소에 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출산을 도와줄 의료인도, 의료용품도 마땅히 없었다. 보건소에서는 차로 4시간 떨어진 큰 마을의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4시간 뒤 구급차가 왔으나 때는 이미 늦었고, 아내도 아기도 살지 못했다. 아내에게는 이번이 열 번째 출산이었는데, 드리스와 아내 사이에 생긴 10명의 아이 중 살아 있는 아이는 5명뿐이다. 

첫날 못 넘긴 아이만 한 해 220만 명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이 2월 초 펴낸 보고서 ‘신생아 사망을 종식하기’(Ending Newborn Deaths)에 따르면, 2012년에 10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난 날 숨졌다. 생후 한 달(28일) 이내에 사망한 신생아 290만 명 중 무려 3분의 1이 생애 첫날에 숨진 것이다. 

그런데 ‘첫날의 비극’은 이뿐만이 아니다. 100만 명이란 숫자는 생존해 태어난 아기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사산아는 아예 포함하지 않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사산아는 26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운 120만 명이 ‘출산 과정 중에’ 사망한 경우다. 산모에게 진통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심장이 뛰고 있던 아기들이라는 얘기다. 생후 24시간 이내에 사망한 신생아와 출산 과정 중에 사망한 사산아를 모두 고려하면, 태어난 (혹은 태어났어야 할) 날을 못 넘기고 사망한 아기는 220만 명에 이른다. 생존 출생아만 대상으로 하면 ‘첫날 사망률’의 진짜 규모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의 경우, 생존 출생아 기준으로는 첫날 사망률이 1천 명당 15명이지만 사산아까지 고려하면 1천 명당 40.7명이나 된다. 

태아, 신생아, 산모에게 모두 가장 위험성이 높은 시기는 출산 과정과 출산 직후다. 달리 말하면, 출산일을 전후한 이 시기에 산모와 아기에게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2011년에 펴낸 ‘조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에 따르면 신생아 사망 원인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무호흡(분만 과정 중 산소 부족)의 경우, 아기의 등 부분을 문질러주는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사망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보고서는 매년 4천만 건의 출산이 전문 의료인의 도움 없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의 출산 때 아예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 아기를 낳았다는 산모도 200만 명에 이른다. 2000년 채택된 새천년개발목표에는 전문 의료인의 도움하에 이뤄지는 출산의 비율을 2010년까지 85%, 2014년까지 90%로 올린다는 목표가 담겨 있었지만, 2012년 기준으로 이 비율은 70%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지역과 경제 사정에 따라 편차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가령 유럽 국가의 산모들은 거의 100%가 출산시에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이 비율이 50% 정도밖에 안 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산모의 10%만이 출산시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빈부와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하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부유한 20%에 속하는 가정은 출산의 46%가 전문 의료인의 도움하에 이뤄지지만 가난한 20%에 속하는 가정의 산모들은 2%만이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는다. 

르완다가 보여준 희망

의료 접근권의 차이는 사망률 차이로도 이어진다. 무호흡과 패혈증은 신생아 사망 원인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부유한 나라에서는 무호흡이나 패혈증으로 인한 신생아 사망이 매우 드물다. 2008년에 영국, 부르키나파소, 네팔은 연간 출산 건수가 모두 72만~74만 건으로 비슷했다. 그러나 무호흡으로 사망한 신생아는 각각 306명, 5874명, 6591명이었고 패혈증으로 사망한 신생아는 각각 39명, 3109명, 5304명이었다. 

태아, 신생아, 산모의 죽음을 막으려면 출산할 때 모든 산모가 의료서비스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2011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모성 및 영·유아 보건이 취약한 68개국에서 태아, 신생아, 산모 보건과 관련된 15가지 의료 조치에 대해 보편접근권이 달성될 경우 많게는 연간 110만 명의 태아, 20만 명의 산모, 140만 명의 신생아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출산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편접근권 확대는 아직 요원한 과제로 보인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 사이 전문 의료인의 도움하에 이뤄진 출산의 증가율은 연 1.1%에 불과했다. 이 속도라면 2043년이나 되어야 출산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편접근권이 달성될 수 있다고 추정된다. 결국 2014~2043년 약 3억5400만 건의 출산이 의료인의 도움 없이 이뤄지게 되고, 이 가운데 수많은 산모와 아기가 맞이하지 않아도 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추산한다. 

이 보고서는 보편접근권을 달성하려면 출산 의료인 양성, 의료시설 확충 등과 함께 의료비용 체계를 산모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바로 그때, 가령 진통이 시작됐을 때, 산모가 제 지갑에서 직접 나가야 하는 돈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 시스템을 통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르완다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르완다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의료시스템이 크게 무너졌다. 그러나 2000년부터 의료서비스의 접근성과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는데 그중 하나가 ‘건강상호조합’이다. 커뮤니티 기반의 건강보험으로, 2006년에 전국으로 확대돼 르완다 인구의 90%가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보험기금의 절반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나머지 절반은 정부나 기타 기관의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최빈곤층은 보험료를 내지 않는 등 보험료 부담이 누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도 가입할 수 있고, 필요할 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여러 연구는 건강상호조합 도입 이후 르완다에서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인구가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비율은 2000년 39%에서 2008년 67%로 올랐고, 1990년에 출생아 1천 명당 151명이던 5살 미만 영·유아 사망률은 2012년 55명으로 줄었다.

출산 관련 의료서비스 접근성 확대해야

예방 가능한 요인으로 숨지는 아이가 없게 하려는 전세계적인 노력으로 5살 미만 영·유아 사망자 수가 1990년 1260만 명에서 2012년 660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만 받았어도 피할 수 있었을 죽음을 맞는다. 출산을 전후한 시기가 아이와 산모 모두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임을 생각하면, 출산 관련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 김승진 (세이브더칠드런 커뮤니케이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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