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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벌써 잊었는가?
보도자료
201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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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갓 졸업한 사회복지사들이 태반인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에게 국가의 일을 떠맡겨놓고 아이가 죽으면 책임을 묻지요. 전국에 375명뿐이에요. 이 숫자,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경기도 한 도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울먹이며 내게 물었다. 그 375명 가운데 한명인 상담원 박아무개(27)씨는 최근 사표를 냈다.


“죽도록 일해서 얻은 건 자부심은커녕 병밖에 없습니다. 입사 6개월 만에 그만두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지만 더 이상은 감당 못 해요….” 그는 사표를 낸 다음날도 오전 6시에 출근해 밤늦도록 현장조사를 다니느라 4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6명은 현재 1인당 60건 이상의 아동학대 사례를 맡고 있다. 요즘 신고가 급증하여 1주일에 20건 가까운 신규 접수를 빼고도 그렇단다.


신고가 들어오면 72시간 내에 현장조사를 해야 하지만 조사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순순히 만나줄 리 없고 협박도 다반사다. 일 때문에 바쁘다 하면 집에 돌아올 때를 기다려 밤 10시에도, 주말에도 만나러 가야 한다. 한 건당 현장조사를 6, 7번씩 나가다 보면 신규 접수 사례를 또 맡아야 한다. 관리 중인 60여건은 손도 못 대는 상황이다. 박씨는 “손 놓고 있는 새에 아이가 또 맞으면 어쩌지 싶어서 잠도 안 온다”고 했다.


폭력 행위자를 직접 대면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민간인이 이들 말고 또 있을까? 이 문제가 여러 번 지적되자 9월 시행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상담원과 경찰의 동행출동 규정을 강화했다. 벌써부터 아동보호전문기관엔 경찰의 신고와 동행출동 요청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나 전국 512개 지구대에서 3교대로 일하는 경찰은 5분 내에 출동할 수 있지만 전국 50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교대 없이 일하는 375명의 상담원은 그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이러니 또 상담원들에게 늑장 부린다고 비난이 쏟아진다. 박씨의 말마따나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립한 이유는 아동의 특성상 일반 폭력사건을 다루는 수사관보다 전문적인 조사자가 필요해서라지만, 학대사망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문성이 없다고 비난받는다. 실제로 미숙한 대처가 곧잘 눈에 띈다. 그러나 업무 과중을 견디다 못해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평균 근무연한이 3년 미만인 상담원들에게 어떤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곧 특례법이 시행되면 가해자에게 상담, 교육을 받게 하고 학대당한 아이를 분리하는 게 지금보다 쉬워진다. 그런데 가해자 상담과 교육은 누가 하나? 전국에 학대피해아동 전용쉼터는 36개, 그중 임상심리사가 있는 곳은 5개뿐인데 아이는 어디로 보내 어떻게 치유하나? 법을 현실로 만들 예산은 전무하고 사람도 모자라는 판국에, 법과 제도는 알아서 굴러가는 자동기계라도 되는가?


상담원 확충을 위해 국고 지원을 요구해도 기획재정부는 “지방이양사무라 지방자치단체가 하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아이들의 최소한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은 국가의 책무가 아닌가?
이대로라면 제2의 울산, 칠곡 아동학대사망 사건을 막을 수 없다. 울산에서 가정 내 학대로 숨진 이서현양은 독서일기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이양이 없는 지금, 그 애달픈 쓸모를 떠올려본다. 그때 분노했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벌써 그 아이를 잊었는가?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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