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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니제르 마을에 기부된 염소들, 새끼 낳아 이웃으로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기아문제전문가 장 지글러는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세계는 120억명을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있는데도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 사막화와 삼림 파괴로 인한 저개발 국가의 농업 생산성 악화,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국제정치, 경제적 관계가 굶주림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인류가 연대하고 서로 돕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임을 제시하고 있다.
북서 아프리카 니제르의 마라디 지방에서는 반복되는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호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의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사하라 사막이 전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니제르의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마라디 지방은 전체 인구 중 65%가 하루 소득 1.25달러 미만의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고, 기후변화 및 사하라 사막의 확장으로 생존 기반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곳이다. 인구 80% 이상이 가족단위 소규모 농경 혹은 생계형 목축에 종사하고 있는데 기후변화의 영향은 심대하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식량자급뿐 아니라 수출까지 했던 니제르 정부도 3N 이니셔티브(Les Nigeriens Nourrissent les Nigeriens: 니제르 국민이 니제르 국민을 부양한다는 정책) 를 전개하며 농목축업의 생산성 개선을 통한 반복되는 식량난에 대한 극복에 진력하고 있다.
구호단체들이 펼치는 사업은 ‘염소 전달하기 사업’이다. 빈곤아동들이 영양실조 위기를 극복하고 가정 생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염소는 건조한 날씨에도 적은 먹이만으로 생존할 수 있으며 사육이 쉽고 생후 18개월 이후부터 번식이 가능하고 1년에 3마리 가량의 새끼를 낳는다. 이 뿐 아니라 매일 신선한 젖을 아동에게 제공하여 풍부한 미세영양소와 단백질을 보충해 줄 수도 있다. 주된 사업 방식은 최초에 지원 받은 수혜자가 염소를 번식시켜 새끼 염소를 다시 이웃에게 나눠주는 ‘전달하기(Pass it on)’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고 마을 주민들 사이에 나눔의 분위기를 북돋을 수 있다.
농촌 지역 소작농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 학비, 전통의례 비용, 의복 구입비 등 생활비 조달을 위해 가격이 가장 낮을 때 곡물을 팔아 치우고 춘궁기에 수확기보다 70~80% 상승된 가격으로 개인 소비용 혹은 씨앗용 곡물을 구매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춘궁기를 겪으면서 비싼 가격으로 곡물을 구매하면서 농업생산 수단이자 가정의 자산인 농기구, 가축 심한 경우에는 토지의 일부까지 팔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구호단체들은 사회적 보호시스템의 일환으로 곡물담보대출을 운영한다. 소작농들의 수확물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주고, 이 자금으로 소작농들이 스스로 선택한 소득창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수혜자는 대출되는 자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춘궁기가 다가오면 창고에 저장해 둔 곡물을 꺼내 먹을 수도 있다. 소작농들에게 춘궁기에도 식량확보를 할 수 있고, 농번기를 위하여 씨앗을 확보하게 하여 다음해 소득도 보장해 준다.
2014년 9월 염소를 배분받은 1차 수혜 가정 1,600세대가 2차 수혜 가정에게 각 두 마리씩 총 3,200마리의 염소를 전달하는데 성공하는 등 속속 결실을 맺고 있다. 단순히 숫자가 늘었다는 점만큼이나 지역사회 안에서 연대의 물결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염소 나누기 사업의 수혜자인 하비 카숨(27ㆍ주부)은 15세 때 남편 세두 이디(37)와 결혼해 자녀 9명을 두고 있다. 카숨의 가족은 작황이 좋은 해에도 수확한 농작물이 일년 중 3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 밖에 되지 않는 최빈곤층으로 춘궁기에는 연명이 막막하기만 했다. 농사 외에 허드렛일 품삯에 의존하거나 이웃 나이지리아로 일시 이주해 간신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숨이 염소 나누기 사업의 수혜자로 선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배분 받아 키우던 염소가 첫번째 출산으로 새끼 3마리를 낳고, 이 중 두 마리를 마을의 최빈곤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었지만 카숨은 앞으로 많은 염소를 키우며 자신의 가족과 마을의 최빈곤 가정들이 배고픔없이 사는 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장 지글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기아의 고통 앞에서 무심해지지 않기를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하지않으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만이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니제르 마라디 지방 카숨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광 세이브더칠드런 해외사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