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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에서 2년 전 숨진 영아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발견되었다.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살아남은 아이의 증언이 없었다면 세상에 존재조차 밝혀지지 않았을 잔혹한 죽음이다. 아동보호체계의 주요 기관인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동사무소에서 세 번이나 가정을 방문하였으나 주검이 된 아이의 존재를 몰랐다는 사실은 더욱더 비극적이다. 아동이 공적체계에 등록되지 않았을 때 보호자가 얼마든지 한 아이의 삶에 대한 증거를 은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출생 미신고 사례이다.
기시감이 드는 어른들의 뒤늦은 탄식은 국가의 책임 방기와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반복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아동의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5월 모든 아동에 대해 공적으로 등록되어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출생통보제 도입 시기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올해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을 국가기관에 통보하는 제도도입이 아동 살해, 유기, 방임 등을 크게 줄일 것으로 보았으나, 의료기관과 관계 부처 등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어른들이 외면하는 사이 아이들의 외로운 죽음은 계속되었다. 한 아이의 생명과 안전 보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구조조차 못 한 아이들의 죽음을 우리는 언제까지 냉동고에서, 나무 상자에서, 화장실에서 목도할 것인가.
2019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학대로 인해 사망한 42명의 아동 중 57.1%가 1세 이하의 아동이었으며 치명적 신체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절반이 영아였다. 등록되지 않은 아동의 죽음은 통계의 숫자조차 되지 못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감춰진 죽음은 더 많을 것이다. 부모에게만 출생신고를 맡겨두는 현행 출생신고제도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입법적 개선 노력은 19대, 20대 국회에서 있었으나 진전은 없었다. 유엔인권이사회(2012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2011년, 2019년),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2017년) 등 국제사회가 모든 아동이 출생 시 공적으로 등록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아동은 존엄성을 지닌 권리의 주체이다. 우리 사회와 국가는 세상에 태어나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모든 아동의 존재 의미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동의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생명에 대한 보호와 보살핌이 가정의 기능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국가는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도록 모든 적절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동의 소재 및 안전에 대한 전수조사나 영유아 검진, 위기아동 및 가정 지원 등도 아동이 공적으로 등록되어야 가능하다. 부나 모 등 출생신고의무자가 아동의 탄생에 대한 신고를 하기 전까지 국가는 아동의 출생을 파악할 수 없다. 대부분의 출생에 의료기관이 관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2017 통계청, 99.6%) 출생통보제 도입은 출생신고의 누락 및 지연에 따른 아동 인권침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데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정부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조속한 개정을 통하여 의료기관이 출생하는 모든 아동을 누락 없이 국가기관 등에 즉시 통보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냉동고 밖에 나와서야 생의 존재를 알렸던 한 아이의 죽음 앞에 행정부담이나 예산 소요 등 어른들의 궁색한 변명은 그쳐야 할 것이다.
2020년 12월 1일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