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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내 체벌 금지를 위한 민법 개정,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 멕시코의 체벌금지 법안 만장일치 통과에 붙여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12월 10일) 멕시코 의회가 만장일치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것을 환영하며, 대한민국 국회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의안번호 2104530) 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
이번 개정 전까지 멕시코 또한 우리나라의 「아동복지법」과 같이 '아동·청소년 인권에 관한 일반법(La ley general de los derechos de niñas, niños y adolescente)'이 체벌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민법(Código civil federal) '에서는 친권자에게 자녀를 '교정'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여 체벌 금지를 무력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2011년과 2015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멕시코에 모든 환경에서 체벌을 명확하게 금지하고 민법에서 '교정할 권리'를 폐지할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고 지난해 11월 관련 법 개정안이 상원에 발의되었다. 이달 10일 개정안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멕시코는 법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61번째 국가가 되었다.
멕시코에서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은 2019년 상원 의회에서 아동권리협약 30주년을 기념하며 진행한 아동·청소년과의 대화를 기점으로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 아동·청소년은 체벌을 비롯해 굴욕적인 비신체적 처벌의 관행을 근절할 방안을 요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체벌을 금지해달라는 아동·청소년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 왔다. 올해 1월 정의당과 세이브더칠드런을 비롯한 주요 아동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아동 대표로 참여한 임한울(9세)은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다"며 체벌의 금지를 촉구했고, 최서인(13세)은 " 우리는 단지 맞는 게 두려워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이고 싶다. 그리고 마땅히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며 체벌에 관대한 인식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10월 법무부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를 앞두고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음성 편지를 띄운 아동들 역시 "체벌이 아니라 이해심 또는 관심을 통해 더 좋은 행동을 배울 수 있다", "아이가 잘못했든 부모가 잘못했든 때리는 건 문제해결의 가장 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린이 체벌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멕시코에서와 달리 한국의 징계권은 1958년에 생긴 그 조문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다. 「민법」이 허용하는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에서 체벌을 제외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의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로부터 1년 7개월이 흘렀다. 2020년 10월 법무부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다며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해당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소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시민 사회에서도 아동학대 발생을 줄이기 위한 체벌금지 추진에 72.0%가 찬성하는 등(세이브더칠드런 조사, 2020년 10월 전국 성인 남녀 1만 명 대상) 그 어느 때보다 체벌금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음에도 정치적 갈등 국면을 이유로 징계권 조항 삭제가 미뤄지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아동이다.
2019년 한 해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 30,045건 가운데 75.6%인 22,700건이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였다. 아동학대 행위자의 가장 흔한 변명은 '아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한 체벌이었다'는 말이다. 2019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2명으로, 부모에 의한 치명적 신체학대는 60%, 가해자는 모두 부모였다. 코로나 19 또한 아동에 대한 폭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팬데믹이 아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세이브더칠드런의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아동에 의해 신고된 가정 내 폭력 발생 비율은 학교 휴교 전 8%에서 두 배 증가하였다(17%). 팬데믹이 시작된 후로 32%의 가구의 아동과 보호자가 가정 내에서 신체적 또는 정서적 폭력이 일어났다고 보고하였다.
법에서 체벌을 용인하면서 아동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대한민국 정부는 아동 역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맞지 않을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징계권 조항 삭제는 징계 목적으로 아동을 때리는 것이 더 이상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기준’을 사회구성원에게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국회가 하루 속히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켜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고 하는 민법 제915조의 폐지를 촉구한다. 올 한 해 보호자의 학대로 희생된 아이들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은 금새 잊혀지는 분노가 아니라 아동에 대한 폭력을 방조했던 우리 사회의 통렬한 반성과 변화일 것이다.
* 세이브더칠드런은 2014년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활동으로 보호자에 의한 체벌금지 조항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제5조제2항 신설)을 이끌어낸 바 있다. 현재 굿네이버스, 사단법인 두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와 함께 징계권 조항 삭제를 위한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캠페인(change915.org)를 공동 진행하며 체벌금지를 통한 아동학대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2020년 12월 21일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