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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9일, 정부는 ‘아동학대 대응 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법무부, 경찰청 등 범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한 제1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도출된 결과이다. 이번 대책은 지난 10월 13일 생후 16개월 아동이 입양된 지 8개월여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이하 ‘양천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대책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진단을 회피한 채 단편적인 해결책들만 열거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에게 아동 최상의 이익이 무엇인지, 아동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양천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아동 구제를 위한 아동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총 3번의 학대신고가 있었고 아동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이웃주민, 어린이집 교사, 의료기관 종사자 등이 아동보호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했고, 그들의 책무를 뒷받침하는 것은 공공의 역할이다. 그러나 아동보호체계에 따라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어떤 공공기관도 사안의 특수성, 긴급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아동학대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 사회가 지적했던, 아동인권 문제에 대한 공공기관의 감수성과 이해도의 부족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아동 인권의 관점에서 아동보호체계의 전과정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 대책은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례로 현장인력의 전문성 강화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지만, 전문성 강화를 위한 방법과 세부내용이 매우 부족하다. 아동보호체계 담당 인력의 ‘전문성’은 아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동 인권 보호를 핵심 가치로 둔 교육·훈련을 통해서 형성되어야 하며, 이러한 교육·훈련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 예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동 인권의 관점에서 교육·훈련 과정을 구성하고, 내·외부 모니터링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이 단순히 전담공무원에 대한 직무교육과 보수교육 시간을 늘리고 순환보직을 금지하는 정도의 대책으로 전문성 강화를 외치는 것은 현장의 부담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정부가 작년 11월부터 강조했던 ‘2회 신고’시 즉각분리 제도 또한 충분한 대책이 아니다. 학대피해로부터 아동의 즉각적인 분리는 강조해마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나, 단순하게 신고 횟수만을 기준 삼아서는 안된다. 1차 아동학대 신고라도 신속히 현장에 출동해 조사를 해서 아동의 보호에 필요하다면 긴급하게 분리를 해야 한다. 아동의 학대피해 위험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아동의 건강진단 등 응급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사안의 긴급성과 위급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 담당자의 전문성과 아동인권 감수성이 필수적이다. 분리된 이후에 필요한 아동과 가정에 대한 지원과 개입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준비 없이 무조건적인 분리조치를 실행한다면 아동은 갑작스럽게 낯선 생활환경으로 강제이동당할 것이며, 대규모 양육시설에서의 생활은 아동으로부터 개별적 삶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여건과 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국제인권규범은 아동의 원가정 지원을 원칙으로 하며, 부득이한 경우 아동보호를 위한 대안양육체계를 마련하되, 아동의 가정분리는 필요한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서 일시적으로 시행하고, 아동의 원가정 복귀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 것을 요청한다. 또한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모든 단계에 있어서 아동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하고,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된 경우에도 아동이 생활하는 환경은 가정과 유사한 형태여야 하며, 시설보호는 최소한으로 하고 궁극적으로 탈시설을 지향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원가정으로부터의 분리는 아동 최상의 이익 원칙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며, 과정 전반에 아동 당사자의 의견청취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삶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받을 아동의 권리는 당사자에 대한 적절한 정보제공과 의견표명, 의사결정을 위한 논의과정과 결과에 대한 안내를 포함하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여전히 아동의 기계적인 즉각 분리와 시설보호를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아동 또한 존엄하고 독립적인 삶의 주체라는 점을 망각한 행정 편의적 발상이다.
또한 아동보호체계의 중요한 한 축인 입양제도에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2014년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아동 사망사건(일명 ‘현수사건’)에서도 정부는 입양기관에 대해 ‘분기별’로 점검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제대로 이행한 바 없다. 이미 현행 「입양특례법」상 보건복지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입양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을 하고, 입양기관이 입양 의뢰된 사람의 권익을 침해했을 때 업무정지나 허가를 취소하는 등 관리·감독의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권한을 유의미하게 행사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공적 아동보호체계와 괴리되어 민간기관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입양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 제시된 ‘입양절차의 공적 책임 강화’ 방안은 허울 좋은 포장에 불과하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의 사망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아동보호체계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와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도입을 검토하지 않은 것 또한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 사회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이 공적 기록에 등록되어 있어야 아동 보호와 복지의 사각지대가 줄어들 것임은 자명하다. UN아동권리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출생통보제와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도입하여 한국 사회 내의 모든 아동을 평등하게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양천사건에 대한 진지한 원인 진단과 평가 없이, 당장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급히 내놓은 정책의 나열로밖에 볼 수 없다. 이번 대책에서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동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각 단계별로 드러난 아동보호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정부가 이번 “아동학대 대응 체계 강화 방안”을 아동 인권의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며, 개선방안 마련에 다음의 사항을 중점적으로 고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1. 아동보호 공적체계 및 인력 확충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제출하라
2. 지역사회 기반 아동보호체계를 즉각 수립하라
3. 아동학대대응 인력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라
4. 아동학대대응 부처와 기관 간 소통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라
5. 아동의 원가족보호 지원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최우선적으로 투여하라
6. 위기 임신・출산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원가정에 대한 양육지원 서비스 지원 내용과 접근성을 강화하라
7. 공공이 입양을 책임지고 아동보호체계와 통합적으로 운영하라
8. 국가 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아동학대대응시스템의 전반을 점검하라.
<정책요구안 전문 별첨>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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