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연재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무엇인지, 후원금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알아봤었죠?
인도적 위기 상황은 아동과 그 가족이 생명,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안전의 기회가 인재나 자연재해의 결과로 위협 받는 상황을 말해요.
그리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해당국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한계가 있는 상황일 때, 피해를 입은 이재민, 지역, 국가를 ‘대가성 없이’ 지원하는 것을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죠.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도와준다고 상황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것인데요. 오늘은 이 물음에 대한 세이브더칠드런의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상의 나라 ‘세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동남아시아 적도 부근에 있는 이 나라는 태풍이 일년에도 서너 차례 발생하고 이로 인해 홍수와 산사태도 자주 일어나요. 게다가 지진과 화산폭발이 빈번한데다 쓰나미도 겪은 적이 있죠. 그런가 하면 가뭄으로 고생하는 지역도 있어요. 온갖 자연재해가 나라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거죠.
하지만 매년 연례행사처럼 태풍으로 인해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발생해도 주민들의 대응은 늘 비슷해요. 홍수로 물이 넘치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제방 위로 올라가 피신하는 게 전부죠. 1년 전 태풍으로 폭삭 무너진 집을 채 보수하기도 전에 또다시 집을 잃는 일도 매년 반복돼요.
이런 나라가 있다면, 어떤 활동이 정말 의미 있는 도움이 될까요?
단순히 후원금을 전달하고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진 않을까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재난위험경감’ 사업이에요.
재난위험경감(Disaster Risk Reduction, DRR)은 말 그대로 재난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줄인다는 뜻입니다.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미리 대비해놓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그 ‘대비’의 핵심은 지역 구성원 개개인이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랍니다.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거나 미약할 때 지역 공동체나 주민 스스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것이죠.
재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
세이브더칠드런은 그동안 수많은 재난을 경험하면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현장에 가장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군인이나 구호 전문가가 아닌 마을 주민이라는 것인데요.
전문 인력과 구호물품이 도착할 때까지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서로 힘을 모아 어마어마한 건물더미에 깔린 이웃들을 구출하고, 부족한 식량을 서로 나누고,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돌봅니다. 시장 상인과 버스 기사, 옆 집 아주머니와 10대 청소년들까지, 참사가 일어나면 모두가 구호 활동가가 되는 거죠.
그래서 아동을 포함한 주민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해 재난에 침착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세이브더칠드런이 실제 재난위험경감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필리핀으로 가 보죠.
위에서 가상의 나라 ‘세칠’로 소개했던 곳은 사실 필리핀입니다.
필리핀은 한해 평균 다섯 건의 대형 태풍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홍수와 산사태가 빈번히 일어나요. 그런가 하면 지진과 화산대가 모여있는 ‘불의 고리’에 속해있어 지진과 화산폭발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고 쓰나미도 겪은 적이 있어요. 게다가 지역에 따라 가뭄 피해를 입는 곳도 있죠. 지난해 12월에는 태풍 ‘하구핏’으로 수 천 세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 만큼 재난위험경감 사업의 필요성도 높은 곳인데요.
이번에 소개할 곳은 필리핀 팜팡가(Pampanga) 주, 미날린(Minalin) 시의 산타리타(Santa Lita) 마을이에요. 이곳은 홍수뿐만 아니라 지진도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지난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6,201명이 사망하고 1,400만명이 피해를 입었죠.
세이브더칠드런이 앞으로 일어날 재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리핀 정부, 지역사회, 산타리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볼까요?
1. 재난 대비 훈련과 아동보호 활동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
재난을 이기려면 먼저 재난에 대해 잘 알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전략을 짜는 것이겠죠?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대비’는 마을 주민 전체가 마을에 대해, 그리고 닥쳐올 재난에 대해 잘 인지하도록 돕는 것이에요.
세이브더칠드런은 마을의 어느 곳이 재난에 취약한지, 어떻게 보완을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마을 주민, 공무원들과 함께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합니다. (위험취약성 역량평가, HVCA, Hazard Vulnerability and Capacity Assessment)
이렇게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마을의 위험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요. (Hazard Map)
이 지도가 있으면 마을의 어디가 재난에 취약한지, 또 안전한 대피로와 대피소는 어디에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죠.
지도를 나눠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재난이 닥치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노약자를 중심으로 대피 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합니다. 위험지도를 바탕으로 사전에 대피 장소와 대피로, 위험지역을 마을 주민들에게 알린 다음, 대피 계획을 세워 가상 훈련을 하는 것이죠. 마을 노인 분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우선 대피시키는 법과, 대피 과정 중에 부상을 입은 사람에게 어떻게 응급처리를 하는지도 배우는 시간입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체계로 위험을 알리고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비상연락체계도 세우고 이를 마을 전체에 알려요.
마을 방송과 확성기, 경보 알람을 설치해 마을 주민 누구라도 재난을 감지하는 즉시 사전 경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재난위험경감 활동의 일환이죠.
세이브더칠드런은 재난위험경감 사업에도 아동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아동들이 자신의 눈높이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어린이 구조대 (Children Brigade)도 꾸린답니다.
아동들이 직접 마을의 재난위험경감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각자 집에 돌아가서 어른들에게도 알릴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죠. 또 아이들 손으로 직접 학교나 마을의 대피로를 표시한 지도를 제작하고 학교 안에서 어떻게 대피하는지 모의 훈련도 해요.
2. 시설 정비
재난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마을의 여러 시설을 미리 튼튼하게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죠.
낡거나 손상된 강둑이나 제방, 대피소를 보수하고 대피소 안에 소화기나 비상식량, 전등 등 장비도 갖춰놓아요.
홍수가 나면 마실 물도 구하기 어려워져 식수 문제도 발생합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미리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 놓죠.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각 가정의 지붕과 버스 지붕 등을 수리하는 일도 해요.
베트남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는 홍수에 강한 수세식 화장실도 설치합니다. 구식 화장실은 홍수로 물이 넘치면 오물이 그대로 식수와 상수도로 유입돼 콜레라나 장티푸스처럼 오염된 물을 통해 옮는 수인성 전염병 창궐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에요.
3. 비상용품 키트 및 재난대비 물자 배분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물품도 지원해요.
건전지가 필요 없는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비닐 백, 성냥, 양초, 비누, 호루라기, 다용도 칼, 건전지 등이 들어있는 비상용품 키트를 주민들에게 배포하죠. 평범해 보이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전부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들이에요.
비상 식량을 비축하고 개인용 식수 필터도 갖춰 놓습니다.
긴급 상황을 마을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확성기와 워키토키도 마을에 배분해요.
오늘 우리가 도운 사람이 내일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재난위험경감사업은 매년 반복되는 재난에 주민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피해 규모를 줄이는데 1차적인 목적이 있어요.
접근이 어려운 외딴 마을이나 재난으로 도로가 유실돼 마을이 고립되더라도 주민 개개인이 스스로 주변 이웃을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특히 재난 상황에 취약한 아동도 재난위험경감 과정에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스스로 재난의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인도적 지원 사업에 아동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립에 대한 욕구도 생기게 돼요. ‘우리가 지금보다 더 좋은 마을을 만들 수 있다, 한번 힘을 모아보자’는 희망과 의욕은 어떤 지원보다도 큰 원동력이 되죠.
"우리가 일시적으로 도와준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인도적 지원은 일시적으로 식량과 물자를 배분하고 끝나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기금을 지원해 당장의 피해만 복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자립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 세이브더칠드런이 진행하는 인도적 지원이 가진 힘이죠.
따라서 당장 지역사회나 국가에 큰 변화가 있지 않더라도 인도적 지원 활동으로 인해 소소하게 나마 변화를 경험한 주민들, 특히 아동들은 크게 달라진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세이브더칠드런이 가진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꾸준한 관심과 응원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도운 사람이 내일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We can be sure that those whom we help today will help us tomorrow.)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
글 이나미(커뮤니케이션부)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