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 인생의 ‘모자’ 이야기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20대 취업준비생부터 70대 모자 수선의 달인까지,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 10주년을 맞아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기부테이너’(기부+엔터테이너)들이 1월 14~21일 잠비아에 모자 전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잊을 새라 삶은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내밀곤 합니다. 연령대가 다른 기부테이너들에게도 저마다 한가지씩 물음표는 있었습니다. 이 모자여행이 그들 인생에선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그 세 번째 이야기는 30대 직장인 김익순 씨입니다.
"내가 행복한 순간은...."
- 잠비아 아이들과 '인생뜨기’ 03-30대 김익순 씨 '불안을 이기는 방법'
▲ 김익순 씨가 잠비아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모습.
목청이 기차 화통입니다. 동요도 그가 부르면 아리아 같습니다. 웃음도 성악가 발성입니다. 잠비아 루프완야마 지역 학교 교실에 그 웃음으로 쩌렁쩌렁했습니다. GS 샵 5년차 직원인 김익순 (34)씨는 이 ‘재능’을 잠비아 아이들과 나눴습니다. 동요 ‘머리어깨무릎발’ ‘모자송’ 등 노래 불렀습니다. ‘기부테이너’ 예두열 씨가 하모니카로 반주를 넣었죠.
‘불안의 시대’입니다. 대기업 대리인 익순 씨도 이 고민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하는 일이 좋지만, 이 일이 정년까지 보장해 줄까,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내가 부모님께 받은 만큼 내 아이들을 지원해 줄 수 없을 것 같고,... 그런 고민 많죠. 행복하게 살자. 후회하지 말자. 그렇게 좌우명을 정했어요. 무엇이 저에게 행복인지 찾고 있어요.” 이번 잠비아 모자 전달 여행도 그 ‘행복 찾기’ 여정이었습니다.
익순 씨가 ‘모자뜨기’와 인연을 맺은 건 첫 입사 때입니다.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을 처음부터 10년간 후원해온 GS 샵에서 준 입사 선물이 모자뜨기 키트였습니다. “첫 해에 코까지는 만들었는데 완성하지는 못했어요. 키트는 매년 샀는데 끝까지 짠 건 올해가 처음이에요. 모자 뜨기 보조도구를 쓰니까 쉽더라고요. 여섯 개를 완성했어요.” 이번에 만든 모자는 잠비아 루프완야마 보건소에서 어머니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처음엔 좀 ‘뻘쭘’하더라고요.(하하)”
▲ 털모자를 쓰고 있는 잠비아 아기, 졸음이 오나 봅니다.
‘기부테이너’가 된 데는 그의 목청이 큰 몫 했습니다. 학창 시절 중창단, 합창단 활동을 하며 발성을 배웠습니다. 대학 때는 청소년 방과후 교사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잠비아 아이들이 재미없어 할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기부테이너들은 잠비아로 떠나기 전 다섯 차례 만나 프로그램을 고쳐갔습니다. 퇴근 뒤 모이니 밤 10시를 넘어서야 끝나기도 했죠.
▲ 잠비아로 떠나기 전 아이들과 해볼 활동 '실전 연습'을 하고 있는 김익순 씨
“아이들이 (노래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미친 듯이 좋아하지는 않았어요(하하) 역시 율동으로 몸을 쓰니까 더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축구공을 가져갔는데 그냥 서로 공차고 놀 줄 알았더니 인원수 딱 맞게 선정해 심판까지 두고 정식으로 경기하던데요.”
▲ 김익순 씨 노래를 들으며 박수 치는 아이들.
“직접 보는 거랑 머리로만 아는 거랑은 정말 달랐어요.” 어머니들에게 모자를 전달하고 난 뒤였습니다. “보건소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그래도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인데 먼지가 날리는 방에 갓 태어난 아이가 누워 있어요.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애가 더 어린 애를 안고 가기도 하고요. 녹 냄새가 나는 물을 마시고...온도차가 심해 털모자가 필요한 걸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가 보니 밤에 정말 춥더라고요. 털 옷이 필요할 거 같았어요.” 그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이 익순 씨 일행이 떠나는 날 환송 세리모니를 해줬습니다. “‘우리는 괜찮으니 너희는 걱정 말아라’라는 노랫말에 감동했어요. ‘저런 미소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했죠. 그런데 또 한국 돌아오니 꿈 꿨던 거 같고, 그 효과가 잠깐이던데요.(하하)”
▲ 아이들과 함께 한 '자기만의 티셔츠 그리기'
그를 불안하게 하는 말은 이겁니다. “열심히 하는 걸론 안 된다. 잘 해야 한다.” 그럴 때 그에게 나침반이 되어주는 건 ‘나에게 무엇이 행복한가’란 질문입니다. “입사 뒤 첫 1~2년 해 떠 있을 때 퇴근하는 날이 드물었어요. 회사에서 하는 봉사활동 말고는 점점 안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활동하면서 ‘좋은 느낌’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잠비아에서 만난 아이들이 종종 생각날 거예요. 그 아이들 덕분에 더 나누게 될 거 같아요.”
글 김소민(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박세미(기부테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