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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난민의 생생한 증언… ‘결코 잊지 못할 공포(Horrors I will never forget)’ 보고서
긴급구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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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이후 미얀마 북부 라카인주(州)에서 일어난 학살을 피해 로힝야족 약 60만 명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습니다.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미얀마에서 잔악 행위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난 온 로힝야 난민을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 <결코 잊지 못할 공포(Horrors I will never forget)>를 펴냈습니다. 로힝야 난민이 모여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서 2주에 걸쳐 2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코 잊지 못할 공포> 보고서는 지난 8월 이후 방글라데시로 피난 온 60만 로힝야 난민이 겪은 폭력과 강간, 강제 추방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60만 난민 가운데 60%는 18세 미만 아동입니다.


한 군인이 만삭인 임신부한테 가솔린을 붓더니 불을 붙였어요. 한 군인은 엄마 팔에서 아기를 빼앗더니 불에 던져 넣었어요. 그 아기 이름은 사합,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기예요. 저는 그 비명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 방글라데시로 피난 온 로힝야족 레헤마(24)


군인들이 저랑 다른 소녀들을 끌고 가더니 총으로 제 얼굴을 때리고 가슴을 발로 차고 팔과 다리를 짓밟았어요. 그리고 군인 세 명이 저를 강간했어요. 저는 중간에 기절했어요. 갈비뼈가 부러져 숨쉬기가 어려웠어요. 지금도 숨쉬기가 어려워요.”
- 방글라데시로 피난 온 로힝야족 사디바비란(16)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더니 집에 머물라고 하고 그 말에 따르지 않으면 때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 부인과 함께 집 안에 머물렀는데 그들은 그사이 우리 집에 불을 붙였어요. 모든 게 갑작스러웠죠. 6살 딸 치맛자락에 불이 붙는 걸 보고 그 애를 안고 집 밖으로 뛰었습니다. 제 아내와 12살 아들도 탈출에 성공했지만 두 아들은 이 혼란 속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 애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알지 못하고 아이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산 채로 집에서 타 죽었을까 두렵습니다. 군인들이 마체타 칼을 들고 공격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도망쳤습니다. 방글라데시까지 오는 데 15일이 걸렸어요. 허벅지와 하복부에 심한 화상을 입은 딸이 아파서 계속 울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큰 고통을 겪었어요.”
- 두 아들 카비르(9)와 하디(11)를 잃은 아버지 하킴(41)


마을로 들어온 군인들은 총을 쏴 댔어요. 엄마는 발목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청소년 여자애들은 다 줄 서라고 하더니 부모님이 어디 있냐고 물었어요. 아버지는 15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답했지만 군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은 나와 다른 여자아이들을 어떤 집으로 데려가 총으로 얼굴을 때리고 제 가슴에 발길질을 하고 팔과 다리를 짓밟았습니다. 군인 세 명에게 강간당했습니다. 군인들이 가슴을 찼을 때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숨을 쉬기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의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 사디바비란(16, 여)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오더니 청소년 여자아이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마을이 다 보는 앞에서 그 아이를 윤간했습니다. 여자아이를 도우려는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얻어맞았고 군인들은 사람들한테 총을 쏴 댔습니다. 그 애 부모들은 애를 구하려다 사살당했습니다. 여자아이는 살아남아 우리가 도망쳐 온 다른 마을까지 와 제가 아이를 씻기고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습니다. 출혈이 심했던 아이는 4일 뒤에 숨졌습니다. 그 애는 겨우 14살이었어요.”
- 쿠시다(40, 여)


“군인들이 와서 17살 된 제 아들과 다른 젊은이들을 데려갔습니다. 매일 아이가 돌아오길 바랐지만 아이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로힝야 해방군의) 경찰서 공격이 있었고 그 뒤에 모든 게 파괴됐습니다. 경찰서 공격 이후에 군인들이 마을로 와 젊은이들을 잡아갔는데 14살 밖에 안 된 아이도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남편도 데려갔고 나는 딸 다섯을 홀로 돌보게 됐어요. 밤에 군인들이 또 들이닥치더니 총을 쏘고 집을 불태웠습니다. 우리 집도 타버렸죠. 제 조카는 집에 갇혀 버렸는데 다음 날 와보니 그 애 주검 잔해만 남아있었습니다. 타버린 주검의 냄새는 우리가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어요. 15일 걸어 국경에 도착했는데 우리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걷는 동안 나뭇잎이나 생 야채로 허기를 채웠어요. 국경에 도착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아이 두 명은 제가 데려올 수 있었는데 세 아이는 다른 배를 타야 했습니다. 10살, 11살, 12살 아이들인데 국경을 넘어보니 아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소문해보니 배가 뒤집혀 버렸다고 했어요. 아이들 주검을 찾을 수 없었고 이제 두 딸만 남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여기 있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안전해 지면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과 남편을 찾고 싶습니다.”
- 세니라(35, 여)


“6주 전쯤에 군인들이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쏴 죽였어요. 나는 형제, 이웃들과 도망쳤고 엄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요. 맨발로 4일을 걸어 발은 상처투성이가 됐어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고 몸이 너무 약해져 두 다리로 서지도 못하고 때때로 기어야 했습니다. 방글라데시로 넘어오면서 국경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통에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세이브더칠드런 24시간 쉼터에 살고 있어요. 너무 외롭고 형이 그리워요. 형이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요.”
- 라히몰(10, 남)


열두 살 호산은 군인들이 마체테 칼로 사람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하자 마을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피난 길에 호산은 한 버려진 마을에 들어가 물과 음식을 찾다 저수지를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최소 주검 50구가 저수지에 떠 있었어요. 집이 타는 냄새와 부패해 부풀어 오른 주검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런 공포는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어요.”


참혹한 폭력을 피해 맨발로 미얀마를 탈출해 국경을 넘더라도 로힝야 난민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 있는 5세 미만 로힝야 난민 아동 4명 가운데 1명이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또한, 위생 시설이 열악하고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워 질병 확산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지 못한 로힝야족의 상황은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미얀마 북부 라카인주로는 국제 구호의 접근이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21일 미얀마 ASEM에 참석하는 각국 외교부 장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북부 라카인주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폭력 전면 중단.
-라카인주에 인도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호단체 접근 보장.
-UN이 미얀마 상황을 조사할 수 있도록 보장.
-로힝야 난민들이 존엄하고 자발적이며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
-가해자들을 국제법, 국내법에 따라 사법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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