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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학생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인문학으로 바라본 체벌이야기'②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아동 대상 폭력을 심리, 여성, 역사, 문학, 종교 다섯 카테고리로 깊게 풀어내는 자리인 ’인문학으로 바라본 '체벌’ 이야기' 두 번째 시간,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가 '아이들은 어떻게 사회구성원이 되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아동을 어떻게 바라봤고, 우리 사회에서 아동을 어떤 존재로 생각해야 하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대중강연은 국내 아동보호 ‘한 아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했습니다.
‘피터팬’과 ‘어린왕자’
‘피터팬’과 ‘어린왕자’. 어린이를 보는 두 가지 관점입니다. 두 어린이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시나요?
네버랜드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사는 ‘피터팬’은 자라지 않는 어린이입니다. 자라면 이해관계를 따지는 세속적인 어른의 세계에 물들게 돼요. 이 관점에서 어린이는 자라지 않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어린왕자’는 외계의 별에서 왔죠. 자기가 경험하고 접한 존재들과 스스로 선택해서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본인이 세상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오랫동안 우리가 어린이를 보는 관점은 전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린이는 순수한 존재고 세상에 물들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바탕에는 어린이 스스로 결정을 하지 않아야 하고, 어른들이 잘 가르치고 지도해야 한다는 관점이 깔렸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이라는 존재를 역사에서는 어떻게 바라봤고, (앞으로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해요. 근본적으로 체벌이라는 문제의 논의가 조금 확대돼야 합니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어떤 사람이건 간에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구성원이고 같은 사람인 거죠. 실제로 아동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했느냐는 그 사회가 살아가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체벌이 없었던 수렵채집사회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자유롭게 자기 힘으로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산을 해야 하는데, 아동은 그게 어려우니까 사회에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요. 이때는 사냥한다든지 채집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교육이었고, 학교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체벌의 문제도 없었어요. 사냥이나 채집 활동에서 배제하는 것 자체가 벌이었습니다. 일종의 성년식도 있었습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과 같은 제천행사를 통해서 아동이 한 사람의 자기 사회구성원의 몫을 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죠.
그러다가 국가체제가 만들어지고 문명이 생기면서 학교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역사 기록인 점토판을 보면 학교생활이 나오는데, 학생이 노트 필기를 잘 못 했다고 해서 체벌을 당합니다. 상대 중국의 갑골문자에서도 학교교육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구려에서 처음 학교기록이 나옵니다.
고려에도 ‘스파르타식’ 학원이 있었다?
그러다가 교육이 국가에서 시스템, 제도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육의 효과를 따지게 됩니다. 고려 때 과거제도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교육의 초점은 과거에 합격하느냐였습니다. 고려사회에서도 오늘날의 스파르타식 학원 같은 것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사학’인데요. 사학에서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데 문제는 이 사학이 굉장히 엄격한 통제와 훈육의 방식으로 운영이 된 겁니다. 체벌이 처음으로 등장한 거죠.
만들어진 어른 VS 독립된 사회적 존재
해방 이후 학교교육이 급속히 확대되는데, 이때 아이들의 존재는 세 가지 인간상들이 중첩돼있습니다. 첫 번째,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한 인적자원인 ‘국민’으로 보았습니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 학교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가족을 지키는 존재인 ‘가족구성원’으로 보았습니다. 1970년대 부모들, 혹은 농촌에서 도시로 온 젊은 여성들은 ‘나는 힘들게 살아도 내 자식은, 내 남동생은 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왜냐면 내 자식이, 그 남동생이 공부해서 지금부터 더 나은 그런 사회적 위치에 올라서는 게 바로 우리 집안이 사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런데 세 번째도 있었습니다. 3·1운동, 광주학생운동, 6·10 만세운동 그리고 4·19 혁명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그 주체였는데요. 이때 학생들은 위 두 가지와는 다른, 그냥 독립된 사회적 존재입니다.
이 세 번째 경우를 제외하고 첫 번째, 두 번째는 ‘만들어진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본인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너는 이런 존재’라고 규정된 거죠. 그리고 이런 교육에는 그 이전부터 내려왔던 학교 시스템이 이용되었습니다.
지금 보면 지금도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 교사가 들어오면 반장이 일어나서 ‘차렷, 경례’ 하나요? 등교할 때 교문에서 교사하고 같이 복장검사를 하는 선도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 이후 자연스럽게 유지된 학교 시스템 상당 부분은 일본에서 진행됐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이 일본에서는 이미 없어졌습니다.
유치원 학생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작년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의 참여가 굉장히 많았죠. 지금 만약에 촛불집회에 내 초등학생 자녀가 거리로 나가겠다고 하면 여러분은 말리실까요, 아니면 권할까요? 아니면 ‘그래, 가긴 가라. 그 대신 나하고 같이 가자’ 이렇게 얘기할까요? 조금 주저하는 마음은 있을 겁니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이렇게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도 되나?'하고요.
체벌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기준은 모두 다른데, 결과만을 놓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칭찬 혹은 벌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는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이고, 사회구성원으로 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심지어 유치원 학생들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는 기회와 경험을 주어야 합니다. 그 결과가 일반적인 사회통념으로 볼 때 부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연습이 누적되면, 결과도 바람직해질 가능성은 크겠죠. 어떤 행위가 바람직한지,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건가도 생각해 볼 기회를 더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거는 머릿속으로만 되는 것들이 아닐 겁니다. 누적이 쌓여야 하겠죠.
* 위 콘텐츠는 <세이브더칠드런 인문학으로 바라본 '체벌'이야기>강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정리 안나연(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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