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018년 3월, 군대에 간 큰아들과 고3 수험생인 둘째 아들을 두고 있는 부산의 최은미 씨(가명)에게 막내딸이 생겼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전문가정위탁시범사업에 참여해서 만나게 된 두 살, 진하(가명)입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기회가 된다면 입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최은미 씨는 남편의 제안으로 전문가정위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정위탁은 학대피해아동과 같이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원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보호하는 제도로, 세이브더칠드런에서 2017년~2018년 시범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전문가정위탁에 대해 알아보기: 학대받은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요?)
“남편도 고아원(아동양육시설)에 관심이 많았고, 저도 간호사를 하면서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저도 오케이를 했죠. 고3 아들이 처음에 좀 걱정을 하긴 했어요. 8년 전에 갓난쟁이 여자애를 3개월간 위탁했거든요. 그때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또 하려고 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다른 게 아니라 헤어지는 게 힘들었어요. 잠깐 맡았다가 보내야 하니까. 그땐 저희 애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여동생이 예쁘고 그래서 정이 많이 들었던 거죠. 저도 안 힘들 줄 알았는데, 자식을 보내는 마음이더라고요.”
하지만 진하가 집에 온 이후 가족들은 헤어짐을 미리 걱정할 겨를도 없이 진하에게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워낙 이쁜 짓도 하고, 와서 안기고. 아빠(남편)한테도 그렇게 해요. 딸이 없으니까 우리 남편이 너무 좋아하고. 남편은 애를 위해서 어항도 만들고, 화단을 나무로 짜가지고 쪼끄만 꽃도 심어 놨어요. 진하도 그걸 아는지 ‘아빠가 꽃 심었어!’라고 말해요.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관심 없는 것처럼 그러더니 학교 갔다 와서 지나가면서 슥 한 번 보고. 인형 뽑아가지고 애한테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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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부터 진하가 밝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하가 위탁가정으로 오게 된 이유는 친아빠의 잦은 폭력으로 이혼하게 된 친엄마가 진하를 기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걸 목격하며 정서적 학대를 당한 진하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우리 집에 오고 난 후 6개월은 애가 잠을 잘 안 잤어요. 어른도 그래 하기 어려운데 걔는 새벽에도 금방 눈을 떠요. 제 뒤만 졸졸졸졸 따라다녔어요. 잘 먹지도 않고."
친아빠는 종종 진하에게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진하는 불안할 때면 크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투정부리는 것과는 다르게 진하의 짜증에는 적개심과 분노가 섞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미 씨는 그런 진하를 달래고 받아줬습니다. "진하를 데려올 때, 학대받은 아이라고 하니까 문제를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특별한 건 없지만 잘 받아주고 잘 먹여주고 잘 입혀주고 이렇게 해야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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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씨와 가족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통해 처음에는 ‘엄마’라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진하는 이제 자기 생각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하고 내가 사랑해 사랑해 말 많이 해주거든요. 그렇게 하면 애 표정이 확 밝아져요. 처음에는 그 말에 대해 공감을 못 했는지 안 하다가 요즘은 막 이렇게 이렇게 사랑한다고 하고.” 진하의 작은 몸짓을 따라 하는 은미 씨의 표정도 확 밝아졌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진하는 집에서 곧잘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어린이집에도 다니고, 영어와 미술도 배우면서 나쁜 기억들을 지워가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밀어내는 성향이 있지만, 주변에 사는 동생들과 함께 놀면서 조금씩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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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의 변화를 위해 은미 씨와 함께 진하를 돕는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은미 씨는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학대받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위탁부모로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위탁부모 자조 모임을 통해서는 오랜 기간 위탁부모를 해온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고 위로도 얻었습니다.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보도 공유하고요. 세이브더칠드런의 전문가정위탁사업을 통해 진하에게 지원되는 심리치료와 사례관리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심리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어떤 때는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라고 하더라고요. 진하가 소리 지를 때 ‘마음이 안 좋구나’ 이렇게요. 그러면 진하가 조용해져요."
은미 씨는 언젠가 진하가 다시 친엄마에게 돌아가야 할 때를 생각하면서 친엄마와 몇 개월에 한 번이라도 만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진하는 친엄마의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은미 씨에게서 잘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옛날 기억을 안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요. 두 번째 만남에서도 혹시 진하가 불안해 할까 봐 은미 씨는 미리 진하에게 말했습니다. “만나기 이틀 전에 진하한테 ‘엄마가 두 명 있다, 나는 부산엄마고, 그 엄마는 울산 엄마다. 너는 엄마가 두 사람이니까 더 좋지 않냐’ 이렇게 말했어요. 아직 어리니까 전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데, 두 번째는 자기가 즐겁게 잘 놀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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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씨는 잠시 가족이 된 진하가 조금 더 큰 이후에 원가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애가 어려움이 있으니까 좀 커서 같이 얘기도 해주고, 아이가 충분하게 사랑을 확인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심리적으로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면 좋겠다 싶어요. 언젠가 만나게 될 부모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를 잘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요.”
진하가 아주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 학대와 폭력의 기억을 내버려두었다면 잔뜩 곪아서 진하의 삶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문가정위탁을 통해 만난 은미 씨 가정에서 진하의 상처에도 조금씩 딱지가 앉기 시작했습니다. 진하가 나중에 이 시간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진하의 행동과 말, 표정에 은미 씨 가족의 사랑이 묻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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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처럼 부모의 학대로 원가정에서 성장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진하의 경우에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문가정위탁사업이 민간에서 시행되어 모든 학대피해아동을 가정위탁에서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미 씨와 인터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정부의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전문가정위탁 법제화가 명시되었습니다. 전문가정위탁이 제도적으로 잘 정착되어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은미 씨 가정과 같은 따뜻한 위탁가정을 만나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글 한국화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