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4월 10일, 예멘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올해로 6년 차에 접어든 내전으로 예멘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절반가량 멈춰선 상태. 유엔과 국제 구호기관은 지난 3년간 콜레라, 디프테리아 등의 질병에 걸린 예멘 아동이 120만 명에 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저질환자에 특히 위협적인 질병인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예멘에 퍼질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와중에 내전 당사자들은 휴전을 번복하여 지난 2주간 민간인 38명이 사망하거나 다쳤습니다. 이 중 아동 다섯 명이 사망하고 여섯 명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예멘에는 아동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어머니입니다.
코로나19가 닥친 세계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예멘 사무소의 직원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인 슈케이나가 코로나19의 두려움을 맞닥뜨린 예멘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기적에 가까운 예멘 여성의 회복력과 코로나19 바이러스
슈케이나 샤라후딘
(원문: The legendary resilience of Yemen's women faces a new test - the Coronavirus)
하늘에서 폭탄이 쏟아지던 4년 전 어느 날, 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날부터 제 소원은 오직 살아남아 전쟁이 끝난 예멘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입니다.
저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쟁으로 집을 잃거나 심하게 다친 아동과 가족을 만나 왔습니다. 아이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고, 폭격으로 집을 잃은 뒤 물과 음식이 사치가 되어버린 가족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집에 마른 빵 한 조각, 생수 한 병을 가져가기 위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생계를 돕는 수백 명의 아이들도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장난감처럼 생긴 폭발물이 터져 장애를 입은 아동도 있었습니다.
▲ 이야드(14살, 가명)는 가족들과 예멘 북서부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집 근처에서 발생한 공중 폭격으로 도망치던 중 3개월 된 조카가 집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하러 돌아갔다가 파편에 맞았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눈 한쪽을 잃은 이야드가 병원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교통비를 지원하고 심리치료와 스쿨키트, 식료품을 지원했습니다.
이 혼란한 상황에서, 예멘 여성들이 삶을 추스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인함과 회복력을 목격했습니다. 단 두 칸으로 나뉜 난민 텐트에 10~15명 가까이 되는 온 가족이 모여 살거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기의 영양실조 진단을 받아 든 여성이 과연 살아갈 의지가 남아있을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에게 “어떻게 지내세요?”하고 물으니 한결같이 “알함둘라”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아랍어로 “신께 감사합니다”라는 뜻인데,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일까? 저는 늘 의구심을 품어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예멘에서 가장의 역할을 하는 여성의 21%가 열여덟 살 이하입니다. 아직 스스로도 아이들이지요. 자녀를 충분히 먹이려고 자신의 끼니는 건너뛰기 일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밥상에 먹을 것을 올리기 위해 패물, 토지, 가축을 팔아 치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빚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 예멘 스쿨버스 폭격으로 다리와 눈을 다친 칼레드(가명, 12세) 를 만난 슈케이나
“알함둘라”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된 건 항구 도시 호데이다에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된 뒤였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인 이 여성은 끼닛거리를 구하기 위해 잠시 외출한 사이 집이 공중 폭격을 당했습니다. 남편, 딸, 손주가 죽고 아이 두 명은 크게 다치는 비극이 일어났죠.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지만, 인터뷰를 하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알함둘라. 신께 감사해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슬픈 일을 멈출 방법은 제 손에 없었어요.
가족들은 그저 안전하리라 생각했던 집에 있었을 뿐이에요. 운 좋게도 다른 두 아이가 아직 살아있어요. 잠든 사이에 온 가족을 잃은 사람도 봤는걸요.
집을 잃게 됐지만 저는 당장 지낼 친척집이 있고, 어린 아이들은 새 학교에 등록시킬 거에요. 삶은 계속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저는 예멘 여성들이 마음을 약하게 먹을 형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굶주림, 폭격, 질병이라는 삼중고에 삶이 벼랑 끝까지 몰릴지언정 밑바닥에서부터 힘을 끌어 올려야 했던 것입니다.
▲ 세이브더칠드런의 의료진이 다우드(15개월, 가명)의 영양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팔 둘레를 재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예멘 실향민 캠프에서 외래진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영양실조에 걸린 아동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예멘에 첫 번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조기에 막지 못한다면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될 거예요. 예멘 전역의 보건 시설 중 절반만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구 3천만 명이 넘는 국가이지만 중환자실 병상은 고작 700개뿐이고 산소호흡기는 500개밖에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 엄마 하니파(21살, 가명)과 아기 나빌(8개월, 가명)는 예멘의 항구도시 호데이다에 살던 중 피난을 떠났고 현재 예멘 라히즈(Lahj)지역의 실향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나빌은 심각한 급성영양실조에 걸려 8개월임에도 몸무게가 4kg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나빌의 아빠는 직업을 구할 수 없어 아이의 치료에 필요한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팔아야 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여성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상황입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요리하고, 청소하며 가정의 안전을 책임지는 와중에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당국, 공여국, 구호 단체, 지역 사회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예멘은 의료 지원과 인력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엄마 하니파(21살, 가명)과 아기 나빌(8개월, 가명)
밤마다 평온하게 잠들어있는 아이 얼굴을 보면서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을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뛰어넘는 여성들을 보며 마음을 굳게 먹으리라 다짐해봅니다. 제가 만나 온 여성들은 매일 아이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줄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합니다” 라 말하는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국민과 국제 사회의 도움에 힘입어 예멘의 아이들과 가족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아이들이 건강히 자라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 신지은(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