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5월 1일,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에 1년 전 대규모 산불 피해가 떠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인명피해도 없고, 피해규모도 작년보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합니다. 작년 4월, 나무뿐만 아니라 집, 건물, 논밭을 태워 삶의 많은 부분을 빼앗아 간 강원도 산불은 당장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과 가정에도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지갑과 통장이 다 타버린 탓에 현금이 없어 옷, 교복, 가방, 학용품 등 가장 기본적인 물품을 구입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가정도 있었습니다.
▲ 현지 네트워크(어린이집연합회, 지역아동센터, 초등학교, 교육지원청 등 아동관련 기관)를 통해 피해 아동과 가정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지원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집이 전소된 가정에는 300만 원, 반전소 및 기타피해 가정에는 100만 원~200만 원을 지급하여 77가정(아동 132명)에 총 1억 9천만 원의 긴급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재난 상황에 아동이 배제되지 않도록 아이들이 직접 재난대응 정책을 이야기하는 강원 어린이옹호활동가캠프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방법을 알려주는 ‘재난 후 아동·청소년 심리 이해와 대처 방안’ 강연도 열었습니다. 산불피해에 대응하고 앞으로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함께해주신 후원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긴급생계비가 큰 힘이 되었어요.
1년이 지난 후, 산불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어느 정도 피해 복구가 되어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전히 바람이 불면 까만 재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주변에는 다 타버린 집들이 남아있기도 하지만요.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가정에서는 후원자님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 큰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을 다 데리고 대피했던 지연(가명) 씨는 학원에서 돌아오던 첫째가 산불에 길이 막혀서 발을 동동 굴렀던 시간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9살짜리 막내는 산불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고요. “아직 애들은 불난다고 하면 좀 무서워해요. 그때 불나는 걸 다 봐서요. 집에 오다가 못 들어오고 그랬거든요. 지원해주신 긴급생계비는 아이들 심리치료 병원비로 썼어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죠.”
은미(가명) 씨 가족은 다행히 산불 현장에는 없었지만 아이 물품이 들어있는 창고가 타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불이 진화된 후에도 매캐한 냄새가 나고 집안을 쓸고 닦아도 계속 재가 남아있어서 집에서 지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이 물건이 들어있는 창고가 다 타고, 남은 옷들도 냄새가 너무 나서 입을 수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도 조금씩 지원을 받았는데, 피해 상황에 맞춰서 하긴 해도 아이들을 위한 지원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이들을 위한 긴급생계비를 지원해주셔서 감동받았어요. 유아웨건이랑, 옷, 내복, 책…. 아이한테 꼭 필요한 물건을 샀어요. 후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어요. 저와 아이도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싶더라고요.”
재난은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아이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에 당황한 나머지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난은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재난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성인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재난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아이들에게 적합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여러 대응이 이루어진 후 세이브더칠드런은 <재난으로부터 어린이가 안전한 동네 만들기>를 주제로 강원 어린이옹호활동가캠프를 열었습니다. 더 빠르게 캠프를 열 수도 있었지만 산불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아이들의 마음이 안정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2019년 12월 13일~14일 진행된 캠프에는 산불 재난 후 대피소로 운영되었던 영랑초등학교의 학생 58명이 참여했습니다.
▲강원 어린이옹호활동가캠프에서 토론하는 아이들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산불을 비롯한 여러 재난의 종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후 기존의 구호물품, 미디어, 피해복구, 대피소에 관해 토론하며 재난 대응 방안 개선을 위해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은 구호물품에 아동 전용 물품(아동복, 장난감 등)과 휴대폰 배터리를 추가해달라고 했습니다. 뉴스(미디어)를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영상에 자막을 넣어달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대피소에 어린이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강원 어린이옹호활동가캠프에서 아이들이 직접 작성한 정책제안문
아이들은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8개 정책제안문을 직접 작성한 뒤 강원도 속초시 유혜정 의원에게 전달했습니다. 유혜정 의원은 “대피소 내 아동친화공간, 아동구호키트, 아동을 고려한 보도규정, 재난 중 교육의 권리, 연락을 위한 배터리 지원 등 재난 시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제안을 주셨습니다”라며 제안문을 바탕으로 재난 시 아동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작성한 정책제안문 [자세히보기] 1. 화재(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과 처벌을 강화해주세요. 2. 피해자에게 보상을 확대해 주세요. 3. 아동전용의 구호물품이 필요해요. 4.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터리 등을 지원해 주세요. 5. 가짜뉴스를 퍼트리지 않도록 처벌을 강화해주세요. 6. 어린이를 위한 보도 규정을 만들어 주세요. 7.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에 보도해 주세요. 8. 대피소에 아동을 위한 전용공간(CFS)을 만들어 주세요. |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이 워낙 큰 규모여서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아이들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재난 상황에 있었다는 이유로 꼭 치료나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오히려 일상생활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재난 후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어떻게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세이브더칠드런은 강원도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11월 26일 속초, 11월 28일 양양에서 ‘재난 후 아동·청소년 심리 이해와 대처 방안’ 강연을 열었습니다.
▲재난 후 아동·청소년 심리 이해와 대처방안 강연을 듣는 선생님들
강의를 맡은 강원도 재난심리자문위원이자 전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희국 교수는 재난 후 피해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질문은 오히려 아이들의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심각하게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다면 상담이나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지만요. 아이들이 충격적인 사건을 자꾸 말한다면, 말하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이 사건으로 앞으로 재난에 더 잘 대비할 수 있게 된다거나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속초양양위센터 이보람 실장은 “이렇게 지원해주시는 곳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 지금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것 같아요”라며 강의 내용을 통해 재난 경과에 따라 아동에게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알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번 산불피해 대응 때는 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이런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 대비해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재난 발생 시 아동 최우선의 원칙으로 대응하겠습니다. 단순히 인도적 위기 상황에 놓인 아동을 구조하고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긴급구호에서 끝내지 않고, 또다시 재난을 겪더라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지원하겠습니다. 국내외에서 이루어지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인도적지원 활동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한국화(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