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디를 갈 때든 마스크를 챙깁니다. 긴급재난문자 알림 소리도 익숙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열이 나면 혹시 코로나19에 감염된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어느 나라 확진자가 몇 명이 나왔다는 소식으로는 그 나라 상황이 어떤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생생한 현지 상황을 알고 싶어서, 최근 방글라데시 파견을 마치고 귀국한 임창섭 대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자가격리 중이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자가격리 후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 중 오른쪽) 방글라데시 정부관계자와 회의 중인 임창섭 대리. 코로나19 발생 전 2019년 사진입니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코로나19 때문에 자가격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원래 파견 일정이 1년이었죠?
네. 그런데 저는 더 있고 싶어서 2020년 5월 초에 파견 연장했다가 방글라데시 코로나19 상황이 계속 안 좋아져서 한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방글라데시 코로나19 상황이 얼마만큼 심각한가요?
6월 18일 기준으로 확진자가 10만 명이 넘었어요. 사망자도 1,300명이 넘었고요. 여전히 정점을 못 찍은 것 같아요. 최근에는 매일 3,000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고 있거든요.
언제부터 상황이 안 좋아진 건가요?
방글라데시에서는 3월 둘째 주 즈음에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3명이 나왔어요. 그전까지는 세이브더칠드런 방글라데시 직원들이 저보고 위험하니까 한국으로 휴가 갈 생각하지 말라고 했죠. 방글라데시가 제일 안전하다고요(웃음). 그런데 확진자가 나온 후에는 엄청 빠르게 확산 될 거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었어요.
왜 방글라데시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방글라데시 인구 밀도가 엄청 높아요. 땅 크기를 비교하면 남한보다 약 1.5배 큰데, 인구가 3배 이상 많거든요. 보건 시스템도 취약하고요. 방글라데시에는 손으로 밥을 먹는 문화가 있는데, 위생관념이 약한 곳에서는 손을 잘 씻지 않고 먹기도 해요.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지역도 있고요.
▲ 세이브더칠드런은 코로나19 예방 수칙과 손 씻는 방법을 안내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계실 때 많이 걱정되지 않았나요? 타지에서 아픈 게 무섭잖아요. 코로나19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기도 하고요.
아마 파견 가는 분들은 저랑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코로나19가 아니어도 뎅기열이나 풍토병이 유행하는 지역으로 가는 거잖아요. 파견 중에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고 가기 때문에 코로나19라고 특별히 더 걱정되거나 무섭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데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파견 연장 신청을 하셨던 거군요.
제가 담당하는 모자보건 사업이 2020년 말에 끝나요. 끝까지 마무리를 잘하고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어요. 함께 고생한 방글라데시 직원들을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도망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기도 했고요. 3월 26일에 방글라데시 정부가 락다운(lock down, 봉쇄) 조치를 해서 어느 정도 코로나19가 통제될 수도 있다는 작은 기대도 있었어요. 그래서 끝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한국(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서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들어오라고 했고, 마침 한인회랑 대사관에서 전세기를 마련해주셔서 들어왔습니다.
락다운이 뭐예요?
약국이나 일부 마트를 제외하고 상점, 식당 모두 문을 닫는 강력한 봉쇄 조치입니다. 비행기도 안 뜨고, 학교도 닫았어요. 거리에 거의 사람이 없었죠. 낮에 돌아다닌다고 처벌하지는 않지만 생필품을 사는 게 아니면 돌아다니지 말라고 권고했거든요.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는 응급상황이 아니면 돌아다니지 못했어요. 경찰 단속에 걸리면 처벌받고요.
당연히 사업장에는 못 가셨겠어요.
코로나가 확산되면서부터 회의나 출장을 전부 취소했어요. 락다운 이후에는 세이브더칠드런 방글라데시 사무소 직원 전부가 재택근무를 했어요. 평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업장에 갔는데, 코로나 확산 이후에는 갈 수가 없었어요. 사업장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도 운행하지 않았고요. 5월 31일부터 방글라데시 정부가 임시로 락다운을 풀어서 지금은 교통편이 생겼지만, 지역주민이나 아이들을 만나는 건 자제하고 있습니다.
▲ 보건소에 오는 모든 사람이 손을 씻도록 개수대를 마련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
진행하는 사업마다 다 다를 텐데요. 제가 관리하는 모자보건 사업을 중심으로 말씀드릴게요. 정식 이름은 ‘임산부 및 신생아 건강관리 개선사업’이고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와 세이브더칠드런이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어요. 먼저 사업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임산부가 보건소에서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인데요. 집에서 아이를 낳다가 산모와 아이가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임산부가 아이를 낳기 전, 낳을 때, 낳은 후에 전문 의료진에게 관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코이카와 논의를 통해 신속하게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사업이 보건소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만큼 우선 보건소와 지역병원에 손 씻는 개수대를 설치했어요. 지역 주민을 만날 일이 많은 보건소 근무자에게는 개인 보호장비 세트를 지급했고요. 코로나19에 관한 안내문을 부착하기도 하고, 종교 행사에서 코로나 관련 메시지를 전파하도록 했습니다. 개인위생도 철저하게 교육했어요.
▲ 산모와 신생아를 대하는 보건인력에게 보호장비를 지원하고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안내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될 무렵에 마스크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방글라데시는 어떤가요?
아까 말씀드렸던 락다운 초반에는 마스크를 구하기 조금 힘들었는데, 락다운 조치 2주 정도 후부터는 약국에 가면 마스크가 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력이 되니까 마스크를 많이 구매할 수 있는데,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마스크가 비싸서 열 개 백 개씩 사두지 않아요. 소량으로만 구입하고 그걸 계속 사용하다 보니까, 마스크 공급 수량 자체가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에서는 마스크를 사는 게 부담되니까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요.
대리님은 마스크 어떻게 구하셨나요?
저는 비자 문제로 겨울에 잠깐 한국에 들어갔을 때 마스크를 미리 사뒀어요. 방글라데시가 겨울에 워낙 공기가 안 좋아서 쓰려고 한 건데 코로나19 확산될 때 요긴하게 사용했죠.
락다운 조치 후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수업은 어떻게 하나요?
5월 31일에 임시로 락다운 조치가 풀리긴 했는데, 아직 학교는 열지 않았어요. 다들 9월이나 되어야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은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있는데, 수도에 있는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지방에 있는 일부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제공할 역량도 부족하고, 온라인 수업을 제공하더라도 지역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아이들이 수업을 못 듣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코로나19 이전에 배웠던 내용을 복습하는 정도로 공부한다고 들었어요. 교육 쪽에서도 어려움이 많이 있죠.
교육에 격차가 있는 부분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지는 않나요?
네. 교육 문제로 논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것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커서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아서 경제적인 문제가 큰 화두였어요.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정부에서도 우선 5월 31일에 락다운을 해제한 거거든요.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요.
▲ (왼쪽) 난민캠프에서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이 위생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세이브더칠드런 자원봉사자가 난민캠프 안을 소독 방역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는 난민캠프도 있잖아요. 최근에 난민캠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망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봤어요.
6월 초에 난민캠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확진자는 서른 명 정도 나온 걸로 알고 있고어요. 그런데 정확한 통계인지, 잘 관리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좁은 공간에 다수의 사람들이 따닥따닥 모여있고, 캠프 내 의료시설이 충분히 있지도 않고 위생상태도 좋지 않아서요. 확진자 통제가 잘 안 되면 큰 난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방글라데시 정부 규정으로 난민캠프를 관리하는 모든 NGO와 국제기구 직원은 해가 지기 전에 철수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NGO와 국제기구 직원 철수 이후부터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요. 방글라데시 정부에서는 난민캠프 지역인 콕스바자르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병원을 지정했대요. 그런데 지정 병원에는 산소호흡기 같은 장비를 갖춘 집중 치료실이 아직 없어서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적절히 대응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걱정이 많이 돼요.
여러모로 상황이 참 어렵네요. 대리님 이야기에서 방글라데시에 대한 애정과 파견 현장에서 일찍 돌아온 아쉬움이 많이 느껴져요.
중간에 들어오게 되어서 진짜 너무 아쉬워요. 제가 담당하는 모자보건 사업이 2012년부터 계속해온 사업이거든요. 함께한 직원들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것도 아쉽고요. 사업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고생한 동료들 얼굴도 못 보고 왔거든요. 현지 지역주민분들, 정부 관계자분들도 생각나요. 갈 때마다 반겨주시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과 함께한 일을 끝까지 못하고 돌아온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래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역 없이 들으려고 현지어도 배우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도 아쉬워요.
방글라데시 파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보건소에서 출산하고 산후관리를 받으러 시어머니와 함께 온 산모가 있었어요. 시어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전에는 다들 집에서 낳으니까 으레 그런줄 알았지만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보건시설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서 너무 기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외에도, 보건소에서 아이를 출산한 분들이 제 손을 붙잡고 너무 고맙다고 얘기해주셨던 것도 기억나요. 저희가 사업을 오래 하기도 했고 잘 해 와서 그런지 정부 관계자들도 고압적이거나 무관심하지 않고 엄청 반겨주시고….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런 사례들이 사업 지역 전체의 변화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변화가 이루어지는 긍정적인 부분이니까요.
▲ 모자보건 사업으로 개보수한 보건소의 분만실(왼쪽)과 수유실(오른쪽)
그럼 이제 한국에서 사업을 마무리하시는 거죠?
마무리 해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계획대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사업이 뚝 끊기는 게 아니라서요. 저희 사업이 방글라데시에 없던 걸 새롭게 하는 게 아니라 기존 보건 시스템과 규정의 공백을 메우는 형태예요. 방글라데시 보건 정책을 보면, 보건소가 있고, 보건인력 몇 명이 일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정부 예산이 없거나 관심이 부족해서 보건시설이 방치되거나 규정과 다르게 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이런 공백을 메웠을 때 지역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부와 지역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계속 이 사업을 이어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세이브더칠드런이 사업을 하는 국가들은 열악한 보건 시스템으로 코로나19 확산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세이브더칠드런 직원들은 마스크 쓰고, 보호장비 입고 최대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고 있어요.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직접 현장에서 지역주민들을 만날 수 없지만 지역 이해관계자들이나 정부에 회의를 요청하고,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많이 응원해주시고, 후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 한국화(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