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것 같더니 어느새 한 해가 거의 지나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시간도 그렇습니다. 학교에 가는 대신 온라인 수업을 듣고, 밖에서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아이들은 계속 자라갑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권리영화제 단편영화 공모전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섯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단편영화 공모전의 전문가 심사위원으로, 제5회 아동권리영화제에서 상영한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과 2019년부터 아동권리영화제 시네마토크 패널로 참여한 '씨네21'의 이다혜 기자가 함께했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청소년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요. 두 전문가 심사위원과 함께 이번 아동권리영화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21 아동권리영화제 포스터 [영화제 자세히 보기]
두 분 모두 전에 아동권리영화제 시네마토크 패널로 참여해 주셨는데요. 심사위원으로 다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어떤 마음으로 심사에 함께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윤가은 올해는 작업하는 것들이 좀 있어서 시간이 부족할까 봐 처음에 연락받았을 때 조금 주저했어요. 그런데 어떤 작품이 모이는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청소년 감독님이 보내주는 작품도 있다고 들어서 그 작품들을 먼저 보고싶고, 아동권리영화제 취지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해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이다혜 일단은 좋은 영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상업영화라는 진영에서 공개된 영화가 아니라 처음 아이디어가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생각을 하는 작품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동권리영화제가 대중과 패널이 함께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에서, 직접 아동권리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는 공모전 형태로 바뀌었어요. 공모전 형태로 바뀌면서 어떤 점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세요?
이다혜 그동안 아동권리영화제에서 본 영화들도 굉장히 좋은 작품들이어서 시네마토크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자리가 무척 좋았는데요. 공모전으로 바뀌면서는 한국에서 지금 아동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청소년 감독님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 특히 더 좋았고요.
윤가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공모전을 볼 때 ‘아동권리라는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그리고 ‘이런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서 상영할 수도 있구나’라는 인식이 생겨서, 영화제 취지에 맞는 컨셉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부터) 전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윤가은 감독, 이다혜 기자
공모전에 청소년 감독의 작품이 많이 있었는데요. 청소년 감독이 만든 영화와 성인 감독이만든 영화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이다혜 '최초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완성된 영화로 표현하는가'에서 차이가 있기는 있죠. 자기 생각을 영화로 만들어낼 때 추상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청소년 감독님들은 아이디어를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윤가은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와 완성도의 약간의 차이 말고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진심을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되게 똑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청소년 감독님들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려 말하지 않고 굉장히 강력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저한테는 자극이 되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아요. 숙련도는 성인에 비해 조금 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굉장히 용감무쌍한 어떤 목소리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이번 아동권리영화제에서 청소년 감독의 수상이 두드러졌는데요. 혹시 심사할 때 청소년 감독 작품에 더 많은 점수를 주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다혜 감독님들의 정보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심사했기 때문에 나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어요. 제가 심사하면서 <최선의 삶>과 <토마토의 정원> 두 작품을 제일 재미있게 봤거든요. <최선의 삶>이 청소년 감독 작품이라고 해서 ‘아직은 서투르지만 재미있게 보았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영화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연출하는 분들이 표현 방식에 관해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가은 저도 특별히 청소년이라고 해서 점수를 더 주지는 않았어요. 기술적인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매끈하게 만들어지거나 화려한 기술이 들어갔다고 해서 심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요. 오히려 조금 낯설게 표현하더라도 진심이 느껴질 때 더 많이 마음이 가게 되더라고요.
▲아동권리영화제 단편영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영화 <최선의 삶> 스틸컷
심사할 때 어떤 부분을 주목해서 보셨나요?
이다혜 우선 아동권리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봤어요. 작품이 재미있어도 아동권리영화제의 취지와 잘 맞아떨어지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만듦새가 좋아도 점수를 잘 주기는 어려워요.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세계를 독창적으로 표현해내는 방식이 잘 구현되어 있는 작품에 더 좋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윤가은 일단 주제에 관한 생각을 잘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봤어요. 사실 처음으로 이런 영화제의 심사를 시작할 때는 평가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저도 창작의 과정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때 저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해주신 해외영화제의 위원장님께서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내 동료로서 많아지면 좋겠다, 이 감독을 지지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손을 들어주면 된다’고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이 말이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동권리영화제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나에게 정확히 다가오는지를 봤어요.
이번 영화제에서 청소년 감독이 만든 <최선의 삶>이 대상을 받았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셨나요?
이다혜 <최선의 삶>에서 애니메이션 부분과 실제 촬영한 부분이 의미적으로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잘 표현했더라고요.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형식과 인물을 통해 잘 구현되는 것들이 재미있고 눈길을 끈다고 생각했어요.
윤가은 저도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가 교차되면서 구성한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굉장히 긴 시간의 어려운 이야기를 선별하고 정제해서 담아냈더라고요. 완성도도 높고요. 아주 많이 고민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아동에 관한 사건이나 드러나는 폭력이 아니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일과 관계를 아동이 어떻게 느끼는지 세심하게 다루려고 한 점이 좋았어요.
▲아동권리영화제 단편영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영화 <토마토의 정원> 스틸컷
그 외에도 최우수상을 받은 <토마토의 정원>을 비롯해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다혜 <토마토의 정원>을 보면서 왜 이야기의 무대가 학교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청소년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까 더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였어요. 더 긴 버전의 이야기라든가, 같은 연출자가 만든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번 아동권리영화제에 출품한 작품들을 보면서 굉장히 좋았던 점은 문제의식이나 해결책을 단순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작품이 많았다는 거예요. 작품들을 보면서 영상을 만드는 쪽에서도, 소비하는 쪽에서도 다양하게 시도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가은 <토마토의 정원>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 속에서 친구의 죽음이라는 큰 주제를 무리하지 않고 풀어내려고 노력한 게 좋았어요. 그리고 진짜 청소년의 모습이 담긴 것 같아서 그 순간 자체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도 심사한 모든 작품들이 오랫동안 생각났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비슷한 부분을 굉장히 예리하게 포착해서 전개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있었어요. 제가 괜히 뿌듯해지고, 박수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윤가은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영화감독으로서 청소년 감독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윤가은 조급해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당장, 빨리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대신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는 게 좋은 감독이 되는 데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되는대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두면서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고, 어떤 걸 잘 하는지 알게 되는 것 같거든요. 걱정하지 말고 자유롭게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동권리영화제의 관전포인트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이다혜 어느 영화제보다 아동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작품을 보실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제와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른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좋음’과 ‘나쁨’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아동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배워갈 수 있는 자리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영화제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걸 미리 생각하지 마시고 영화를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영화들이 10분 안팎의 분량이기 때문에 아주 길지 않거든요.
윤가은 ‘아동권리’라는 주제가 무겁거나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이들의 삶에 관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산책을 다녀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산책하다 보면 동네 사람도 만나 수다를 떨 수도 있고, 갑자기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잖아요. 영화를 보고 주변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아동권리영화제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이다혜 한국 독립영화 진영에서 이렇게 아동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그런 작품들의 연장선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이 쭉 쌓여가면 점점 더 풍성한 이야기들과 새로운 문제의식을 다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윤가은 아동권리영화제 심사위원 중에 청소년 심사위원이 있는데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함께 모이지 못했지만,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청소년 심사위원과 영화에 관해 토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얘기하다 보면 서로 의견에 설득되고 생각이 바뀌는 시간이 있는데 그게 또 심사의 묘미거든요.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과 성인이 같이 만나서 어울리는 시간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글 한국화 (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윤가은, 이다혜,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