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8월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습니다. 115년 만의 큰비에 곳곳이 물에 잠겼고 물살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습니다. 폭우가 남긴 상흔은 유독 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에 더 깊이 파인 것 같았습니다. 삐끗하고 넘어진 듯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막막한 마음에 한참을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폭우로 물에 잠긴 강남역 지하철 앞 (사진=시민 김현철 씨 제공)
여기저기에서 피해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가 들려왔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자체와 협력하여 피해가정을 살피고 무너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긴급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아동이 생존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함께 지켜주시는 후원자님 덕분입니다.
세탁기 하나만 건진 영우네
영우네(15세, 가명) 집이 순식간에 물에 잠긴 건 8월 8일 밤 10시쯤이었습니다. 갑자기 집안에 물이 차오르자 아빠는 식구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우선 몸부터 피하자고 했죠. 처음에는 물이 발목 정도 차겠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물이 1m 넘게 올라오고 냉장고가 쿵 떠서 엎어져 버리더라고요. 바로 옆에 교회가 있는데 거기 지대가 좀 높아요. 애들 데리고 나와서 교회에서 한 이틀 지냈죠. 이후에는 구청에서 임시로 모텔을 잡아주더라고요. 며칠은 구청에서 숙박비를 내주고 나머지는 저희가 부담했어요.”
▲물에 잠긴 영우네 집
폭우가 내리고 사흘이 지나서야 물이 빠져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물이 쓸고 간 잔해 속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전들은 거의 다 못 쓰게 됐죠. 세탁기만 수리받아서 그거 하나 살렸어요. 다시 언제 고장이 날지 모르겠지만요. 그걸로 우선 옷가지 몇 벌 빨고 그랬어요. 나머지는 다 꺼내서 버렸고요. 냉장고니, 장롱이니, 애들 책상이니 컴퓨터 다 전혀 쓸 수 없었어요. 이불도 다 버리고.”
▲물에 잠긴 영우네 집
모텔을 거쳐 구청에서 마련한 임시거주지에서 몇 달간 살게 되어 당장 몸을 누일 수는 있었지만 영우네는 살림살이를 전부 새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 집에 30년 살았어요. 20년 전에 교회가 땅을 매입했는데 제가 형편이 어려우니까 교회에서 그냥 살아도 된다고 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그런데 이렇게 집이 물에 잠겨버려서 어디 살 집이라도 하나 얻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게 좀 막막하더라고요. 제가 노가다(막노동) 일을 하는데 몸 건강하니까 벌어서 생활은 되거든요. 밥은 먹고 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모아놓은 돈이 없으니까 큰 부담이었어요. 이것저것 다시 사야 할 게 많아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영우와 동생 영준이(가명)의 가정환경이 안정되고 학교에 가거나 일상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긴급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원한 긴급생계비로 마련한 냉장고와 세탁기
“갑갑한 상황에서 크게 도움 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국가에서 긴급생계비라고 딱 100만원 받았어요. 그걸로 애들 책상이나 컴퓨터를 다시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큰돈이 들어왔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정신없는 상황에서 누가 왔다 갔는지도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세이브더칠드런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애들 일에 조금 도움을 줄 거라고. 아주 고마웠죠.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지원해 준 걸로 냉장고도 사고, 애들 책상이랑 컴퓨터, 이불도 좀 샀어요. 밥통도 샀고요. 중고거래로 쓸만한 것들 살 수 있게 현금으로 지원해줘서 너무 좋았어요. 필요한 것들을 사고 나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됐네요.”
영우와 영준이는 물난리를 겪으며 당황하긴 했지만 다행히 새로운 집에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요샌 좀 안정이 된 것 같아요. 임시로 살고 있긴 해도 이사하고 나니까 애들은 내심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 집은 축사식으로 되어있어서 환경이 안 좋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이사를 못 갔거든요. 지금은 조금 더 깨끗해지고 그러니까 아이들 키우기에 더 나은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진작 옮겼어야 했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원한 긴급생계비로 임시거주지에 마련한 생활용품과 컴퓨터, 컴퓨터책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후원해온 아빠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는 힘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소액을 후원하면서도 좀 삐딱하게 봤었어요. 후원금이 제대로 쓰이는 게 맞나 해서요. 그런데 상황이 닥치고 이렇게 지원을 받으니까 진짜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더라고요. 저한테는 꼭 필요한 지원이었어요. 너무 고마워서 제 생활이 조금 안정되고 나면 세이브더칠드런에 나도 후원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짜 고맙습니다.”
산사태로 무너진 집을 고치는 일
주희네(17세, 가명) 삼 남매는 요새도 비가 오면 차례로 농사일을 하는 엄마, 아빠에게 전화합니다. 여든이 넘은 이웃집 할아버지도 생전 처음 볼 만큼 쏟아져 내린 비에 주희네 집 뒷산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주희 아빠는 그날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합니다.
“천둥 번개가 엄청났어요. 계속 잠을 설쳤는데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즈음에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집 뒤쪽으로 뭔가 냄새가 나는 거예요. 불을 켜봤더니 물이 막 들어와요. 집 바로 뒤가 산이거든요. 뒷문이 잘 안 열리길래 심상치 않다 싶어 다들 깨워서 휴대폰만 들고 나가자고 했어요. 휴대폰 불빛만 가지고 걷는데 무릎 정도까지 물이 찼다가, 허벅지까지 차더라고요. 제가 한번 빠지기도 해서 식구들한테 조심하라고 얘기하려고 뒤를 돌아보는데 산사태가 나더라고요. 조금만 늦었으면 다 휩쓸렸을 거예요.”
▲폭우로 뒷산의 흙이 집까지 내려온 주희네
한밤중 오갈 데 없는 주희네 다섯 식구는 한참을 방황하다가 비 피해가 없는 이웃집에 피신했습니다. 열흘 정도 마을회관에서 지내다 200톤에 달하는 흙을 치우고 나서야 겨우 집에 들어갔지만 한 달 넘게 집을 복구하는 중입니다.
“마을회관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디 도움을 청할 데가 없는 거예요. 제가 귀농했거든요. 외지인이고 크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막막했어요. 다행히 농장은 큰 피해가 없었지만, 제가 집 복구에 치중하면서 농장 일을 한 달 넘게 못 하고 있어요.”
▲산사태가 덮친 주희네 집 보일러실과 세탁실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방에 쌓인 흙을 치우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보니 흙더미에 무너진 세탁실과 보일러실을 고치는 데에 드는 큰돈이 적잖은 부담이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주희와 동생들이 폭우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무너진 집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흙을 치우고 집을 복구하는 주희네
“저는 매주 농산물 작업을 해서 벌어야 하는데, 추석 맞춰서 생산하려던 것도 못하고....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마이너스로 쓰고 있거든요. 보일러실이랑 세탁실 때문에 그나마 나머지 집이 버틴 거라서 거길 복구해야 하는데 큰돈이 들어가요. 당장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지원해 주신다고 하니까 진짜 큰 도움이었죠.”
▲호우 피해로 고장난 보일러 (왼쪽), 새로 산 보일러(오른쪽)
집을 고치는 건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복구하는 것을 넘어 호우가 남긴 두려움의 잔해를 몰아내는 일이자 한 인간으로서 안전한 공간에서 먹고 자는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이번 긴급생계비 지원은 평소 아동의 권리를 위해 후원으로 함께해 주신 분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주희 아빠의 인사와 함께 세이브더칠드런도 후원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원해주신 분들께 직접 인사드리지 못하는 사정이라 죄송하고 무척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희 애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잘 키우겠습니다.”
※지원내역
세이브더칠드런은 영우네와 주희네를 포함해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에서 집중호우로 위기상황에 처한 아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총 72가구에 긴급 생계비를 지원했습니다.
항 목 | 세부내역 | 총 지원금 |
긴급생계비 | 집중호우피해 아동 가정 72가구에 | 179,500,000원 |
글 한국화(커뮤니케이션부) 사진 김현철, 집중호우 피해가정,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