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와 아비장 아이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코트디부아르 슬럼가 아이들과 함께 올린 아동권리 연극 <꿈을 파는 마술가게>
아이들이 울었습니다. 문소리 배우가 떠나는 날, 아이들은 문 배우를 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단 5일이었습니다. 단 5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정말 행복했다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문 배우는 오히려 자신이 더 고맙다고 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갖게 해줘서. 지난 9월, 문 배우는 희망TV SBS 촬영 차, 코트디부아르에 머물며 아비장 시 슬럼가 아이들과 함께 아동권리 연극 <꿈을 파는 마술가게>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누가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코트디부아르까지 가서 왜 연극인가?’ 이 연극은 ‘행복’이라는 낱말에서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기근을 겪는 나라에서 웬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문 배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떠올리면 메마른 땅에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란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와서 보니 굉장히 험한 환경에 있지만 건강한 아이들이구나, 힘 있고 많은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한국 아이들이 더 풍족할 진 몰라도 한국 아이들과 코트디부아르 아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아이들 표정 보셨잖아요. 얼마나 밝고 순수한 얼굴인지.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은 정말 큰 박수를 받을 만한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거, 너희는 빛나는 존재들이라는 걸 무대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이들이 느꼈으면 했어요.”
꿈을 꿀 수 없는 아이들의 환경
다시 반문해 봅니다. 사회적인 차별과 내전, 기근 같은 상황들 탓에 아이들이 웃지 못하는 상황인 건 사실 아니냐고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여건에서 살 수는 없죠. 그래도 사람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행복을 찾잖아요. 찾으려고 노력하고. 다만 주어진 여건이 꿈을 꿀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이니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났던 아이샤를 보면, 하루 종일 엄마를 도와 생선을 굽고 팔지만 그 아이 얼굴이 매일 울상은 아니잖아요. 문제는 그 아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나서 한번도 학교를 가보지 못했다는 거죠. 저는 그 점이 속상한 거예요.”
연극의 발단
문 배우는 쓰레기 더미에서 고물을 줍던 제하를 보고 연극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전교에서 5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11살 제하. 하지만 아빠가 집을 나간 후, 집안형편이 어려워지자 제하는 육성회비를 낼 수 없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고물을 팔아 얼마 벌지 못하면서도, 제하는 그 중 일부를 엄마 몰래 모으고 있었습니다.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해섭니다. “제하가 똑똑하더라고요. 의젓하고. 그런데 의기소침해졌나 봐요. 학교에 못 가서. 정말로 아이가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친구도 없는것 같고. 저 친구가 마음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연기이니까 연극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아이 입장에서도 단순히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갔어, 그렇게 기억하지 않고 외국에서 어떤 사람이 왔는데 우리랑 여러 가지 재미있는 걸 많이 하고 갔어, 이런 생각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재발견
“처음엔 ‘무대에 서는 거를 두려워하면 어떡하지?’, ‘연극 연습하는걸 싫어하면 어떡하지?’ 걱정했어요. 그런데 같이 게임도 하고, 춤도 추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니까 애들 얼굴이 점점 밝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놀랐어요. 여기 아이들 정말 연기 잘해요. 솔직히 이렇게 잘할 줄 몰랐어요. 액션도 자유분방하고, 표현력이 좋더라고요. 그만큼 솔직한 거예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렇게 기회만 있으면 충분히 멋진 걸 할 수 있는 친구들인데, 지금 형편이 안 되고 기회가 없어서 못했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수 받아 마땅한 아이들
문 배우, 밤새 머리를 쥐어 짰습니다. 두 번째 연습 날, 문 배우는 고심 끝에 준비한 ‘마술 가게’ 연극 수업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일 싫은 기억, 고통스러운 기억을 팔면, 가장 원하는 꿈을 살 수 있다는 콘셉트의 마술 가게. 이 수업, 흥행했습니다. 아이들은 차례로 자신의 슬픈 기억을 꺼내 놓았고, 또 이루고 싶은 꿈을 소리 높여 외쳐보았습니다. 문 배우, 아이들 손을 꼭 잡아주더니, 일필휘지로 극본을 써내려 갔습니다. “정말 대견하잖아요, 이 아이들. 집안일도 잘 하지, 손도 야무지지, 하물며 연기도 잘해요. 요한은 내전으로 부모님을 잃었는데, 그렇게 밝고 예쁠 수가 없어요. 삶의 태도에 있어서도 이 아이들, 정말 박수 받아야 해요. 그런 생각으로 대본을 적어보았어요. 너희는 빛나는 존재다.”
연극에 푹 빠진 아이들
세 아이가 나쁜 기억을 팔면 꿈을 이뤄주는 마술가게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 그 극본이 완성되자 본격적으로 연극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다듬어가며 연기 연습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특히 제하는 처음엔 어색해 하더니 나중엔 자발적으로 손동작을 추가하고, 동선을 새로 바꾸고, 아주 연극에 푹 빠졌습니다.
생애 첫 번째 박수
연극 당일, 비가 내렸습니다. 요푸공 촌장님 댁 마당엔 사람들이 가득 모였는데, 비는 우리 사정 따윈 안중에 없었습니다. 잠시 비가 잠잠해졌을 때, 문 배우는 더 이상 관객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며, 아이들의 동의를 구하고, 연극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비 때문에 대사나 잘 할 수 있을까, 안무를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기우였단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아이들
의 연기는 몸에 착 달라붙는 옷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비 따윈 안중에 없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아이들의 진심을 관객들도 느꼈던 모양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 별빛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생애 첫 번째 박수를 받은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잘 했어요. 안무도 안 틀리고. 비도 오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대견스럽고, 예쁘고, 자랑스럽고…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했더니 이렇게 박수 받을 수 있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과 좋은 걸 나눌 수 있구나, 서로 마음을 모으니까 멋진 걸 만들 수 있구나, 그런 걸 느끼
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이 연극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골똘히 생각하던 문 배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이 연극 한 번으로 아이들의 삶이 완전히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오만한 거죠.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건 아이들과 제가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는 거.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다는 거. 그 추억만이라도 아이들 마음 속에 남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제가 행복했던 것처럼.”
아이샤와 제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의 도움으로 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더 많은 코트디부아르의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여러분, 힘이 되어주세요!
글 ┃ 주순민(후원개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