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뉴스
세이브더칠드런의 새로운 공지와 언론에 보도된
소식을 만나 보세요.
소식을 만나 보세요.
[왜냐면]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사태가 던진 질문
보도자료
2014.02.24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분노와 관심이 뜨겁다. 지난 10일 열린 ‘노예노동’ 고발 기자회견으로 세상에 알려진 짐바브웨와 부르키나파소 출신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는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다. 박물관 노동자들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곰팡이 찌든 방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법정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인 월 60만원 남짓한 임금을 받으며 지내왔다. 일부에서는 이런 열악한 처우를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에 견줘 표현할 정도다.
다행히 이번 사태는 기자회견 이틀 만인 12일 박물관 쪽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안에 따라 체불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로 하면서 타결의 물꼬를 텄지만,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을 곱씹어 보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문제가 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자연 속의 박물관으로, <한국방송>의 <1박2일> 촬영지, 지구촌 문화를 배우기 위한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박물관 쪽이 소개한 사업 목적도 “기근과 편견의 블랙 아프리카가 아닌 그들의 문화와 실상을 정확하고 바르게 인식하고 배우는 공연과 전시”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사태가 던지는 당혹감은 어린이집부터 초·중등학교까지 아이들이 즐겨 찾던 다문화 이해 및 세계시민교육의 견학 코스가 실제로는 인권유린과 인종차별의 현장이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박물관 쪽은 1인당 하루 3끼 식비로 4000원을 지급하면서 “아프리카 사람이니까 1달러면 하루 종일 살 수 있지 않냐”라고 일축하는가 하면, 창문도 없는 1인용 침실에 3명이 함께 살도록 하고는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같이 자지 않냐”는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무릎 부상으로 춤을 출 수 없는 무용수에게는 전시장에 있는 조각상 밑에서 살아 있는 거북이를 안고 앉아 있게 하는 업무 지시로 모욕감을 주는가 하면, 박물관 노동자들이 아이들과 어울려 진행한 악기 체험 활동도 근로계약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불법노동이었다. 요컨대 노동에 대한 존중과 같은 세계 보편의 가치를 가르쳐야 할 세계시민교육의 현장이 실제로는 ‘노예노동’의 현장이었던 셈이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털어내고자 만든 프로그램이 사실은 아프리카 사람에 대한 차별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이 한 대학에 의뢰하여 실시한 ‘한국 방송의 아프리카 재현 및 수용자 인식 조사’의 일환으로 초등학생들을 만난 자리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아프리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물었더니 가난·굶주림·질병·흙탕물과 같은 단어를 열거했다. ‘3초에 혹은 5초에 한 명의 아이들이 죽는 곳’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접하는지 물으니,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텔레비전 방송과 광고를 꼽았다. 그리고 가장 고학년인 나머지 한 명이 자랑스럽게 답한 곳이 아프리카박물관 견학이었다. 이 아이는 아프리카 사람을 보면 무서울 것 같다는 다른 아이들과는 반대로 “직접 보니 아프리카 사람도 똑같다”며 제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내내 또래에게 자랑스레 제 경험을 나눠주던 그 아이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그 아이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이 사태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른들이 “아프리카 사람도 우리와 똑같다”고 가르쳐 준 바로 그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본다면 말이다.
이국적인 조각과 민속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당일치기 세계시민교육이 아닌 노동에 대한 정당한 존중이 세계시민의 가치임을 가르치는 교육은 어디에 있을까. 이번 사태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김현주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국제개발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