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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인권 침해를 보는 눈높이
보도자료
2016.09.30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는 동네의 작은 가전부품 공장에 다니셨다. 난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공장에 가곤 했는데 입구에 들어가기 전 항상 고민을 해야 했다. 어머니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나만 보면 “아이고, 충만이 많이 컸네. 고추 한번 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난 어머니 뒤에 숨어 한사코 거절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500원 줄게. 고추 한번 보여줘”라며 회유를 했다. 여느 때처럼 거절하려는데 “너 여자구나. 고추 없어서 그러는구나”라며 도발을 해왔다. 결국 나는 남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500원이 탐이 나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상태로 바지를 내렸고, 500원을 손에 꼭 쥐고 울먹이며 공장을 나왔다. 얼마 전 어머니와 이 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며 “그 할머니가 짓궂어서 그래. 어르신들 애정 표현이지 뭐”라며 웃었다.
남아 선호 사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일은 생긴다. 직장 동료 중 한 분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이모가 자주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고 한다. “가슴 좀 컸어? 어른 다 됐네” 하며 가슴을 만지는데 자기는 그게 너무 싫었고, 또 한창 성장기여서 실제로 아프기도 했다고 한다. 괜히 내가 예민한 건가 싶고 이모가 서운해할까 봐 말도 못 하고 한동안 끙끙 앓다가 결국 어머니에게 울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모가 너 좋아해서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했고, 이모에게 “애 가슴 좀 그만 만져라. 싫다잖아”라고 웃으며 넘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여전히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싫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애가 귀여워서 그랬다”며 애정 표현을 빙자해 벌어지는 이러한 행태는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기억으로 끝나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에 아이의 나체 사진을 보란 듯이 올리고, 영화나 방송에서 아역 배우의 성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우리 장손 고추 따먹어 보자”는 대사가 나오질 않나, 백일 기념으로 아이의 성기를 본떠 조형물을 남기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심지어 한 국회의원은 장애아동을 목욕시키며 언론에서 사진을 찍게 내버려 두는 일도 있었다.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이모 뽀뽀해줘”, “삼촌 뽀뽀”라며 아이가 싫다는데도 억지로 볼을 들이미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무척 힘이 센 상대가 나에게 억지로 뽀뽀를 하려고 하거나 귀여워서 그렇다며 내 성기 사진을 강제로 인터넷에 올린다고 생각해 보자. 당장 고발감이다. 아이가 말을 잘 못하고 자신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내 감정과 욕구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것은 분명 폭력적인 것이다. 또한 아이를 한 인간으로 온전히 대해주지 않고 소유물로 생각해서 내 맘대로 하려는 것은 아동인권 침해다.
문제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법부가 오히려 이런 행태를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기사에 따르면 한 야구부 코치가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갑자기 끌어안고 어깨를 주무르게 하거나 여러 차례 강제로 뽀뽀를 시도했는데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지난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성이 남자아이의 가슴을 주무른 사건도 우리 사회의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받았고, 아동학대 전력이 있는 아버지가 지적장애가 있는 열한 살 아들의 성기를 강제로 수차례 만진 사건도 애정 표현이라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5년 여성변호사회 조사에 따르면 아동 성추행범 10명 중 8명은 항소심 재판에서 형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내가 싫은 건 아이도 싫은 거다’라는 마음으로 애정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끝내야 한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