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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반년 정도 지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결혼 전에는 약간 환상이 있었다. 대학 시절 읽었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에 나온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동반자이면서 동지였다. 같은 관심과 목표를 추구하며 문학과 음악, 사회를 논하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공동체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 부부의 모습은 나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결혼 생활을 하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하지만 실제 결혼 생활은 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첫 부부 싸움부터 그랬다. 어느 주말 마트 쇼핑을 마치고 나와 아내는 목이 말랐다. 아내는 콜라가 마시고 싶다고 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짐을 정리하는 사이 내가 근처 편의점에 갔다. 음료 매대를 둘러보다 1+1 행사를 하는 다른 탄산음료를 발견했다. 싼 가격에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구매를 했다. 난 아내에게 내가 얼마를 아꼈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의 표정은 이내 굳었다. 콜라가 마시고 싶다면서 왜 그걸 사지 않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같은 탄산음료인데 절반 가격에 샀으면 잘한 거 아니냐며 먹으면 다 똑같다고 말했다. 다음 이야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너절한 부부 싸움이다. 왜 결혼한 선배들이 양말 벗는 거나 치약 짜는 걸로 싸운다고 하는지 새삼 이해가 됐다.
나와 아내는 참 다른 사람이다. 난 취향이 강하지 않아 사고 싶었던 것과 좀 달라도 저렴한 가격에 성능이 좋은 게 있으면 그걸 산다. 하고 싶은 일보다 될 법한 일에 매달린다. 이런 나의 행태는 너무나 오래된 것이라 이제는 나 자신을 속이는 수준이다. 치킨을 시켜 먹기로 하면 그날 할인을 해주는 브랜드의 치킨이 갑자기 먹고 싶어지는 정도랄까.
반면 아내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먹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걸 하는 사람이다. 과소비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1+1이라고 해서 본인이 먹고 싶었던 것과 타협하지는 않는다. 돌아가야 하거나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아내도 워낙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니어링 부부는 젊은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동류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나 다른데 말이다. 하루키는 24세가 지나면 자신을 바꾸기를 포기하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을 공고히 해온 나와 아내는 비슷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늦게 만난 건 아닐까.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서점에 갔다가 ‘부루마블’이라는 말판게임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초호화 말판과 플라스틱 건물이 완비된 최고급 제품을 쓰다듬으며 “난 어릴 때 이걸 갖는 게 꿈이었어요. 가정 형편상 말할 엄두는 못 냈지만 매일 문방구에 가서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곤 여느 때처럼 지나가려는 내게 “그럼 사요 이제는 어른이니까 사고 싶은 걸 사도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사면 1만 원이나 싸게 살 수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내도 완강했다. 아내의 부추김 때문일까. 나는 나 자신을 깨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갈 힘이 생겼다. 어느새 내 몸만큼 큰 말판 게임을 손에 든 나는 그 순간만큼은 꿈을 이룬 아이가 됐다.
가을방학의 ‘오래된 커플’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번져가고 물이 들고 서로의 시간 속으로… 너흰 정말 아주 많이 닮아 있단 사실을 아니. 가족사진 속 엄마 아빠처럼.’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아내와 나는 그렇게 서서히 번져가고 물이 들어간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