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롤~ 액션!" 농촌 아이들이 만든 '착한 귀신'
-영월 놀이공간 '조물락' 아이들의 공포영화 제작기
농촌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면 되지 웬 놀이터가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요즘 농어촌 아이들, 학교 끝나면 친구 만나기 어렵습니다. 뚝뚝 떨어져 사니까요. 부모님은 농사일 등 맞벌이이거나, 조손가정도 많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영월 등 농촌 지역 어린이와 어른 180명에게 물어보니 가장 필요한 것으로 ‘놀 곳’과 ‘아이들을 돌봐줄 곳’을 꼽았습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상주 선생님이 있는 놀이공간입니다.
강원도 영월에 지난 2월 문을 연 놀이공간 ‘조물락’, 이번 여름 방학 그곳에서 ‘공포’의 기운이 흐릅니다. 그곳에 주로 오는 마차초등학교 아이들, 생애 첫 공포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행복한 하루’라네요. 그 제작 현장은, 이 영화 제목과 닮았습니다.
7월6일 장소 헌팅, 한낮에 동네 한 바퀴
“내 말이 원래 여기 있었잖아!” “무슨 소리야.” 강원도 영월 북면 마차리 놀이공간 조물락에서 한참 체스를 두던 박정훈(12) 군과 김소연(10) 양, 실랑이가 붙었습니다. 정훈이가 그럽니다. “조물락 생기기 전에는 보통 오후 4시에 학교 끝나고 집에서 컴퓨터밖에 할 게 없었어요. 유투브를 많이 봤어요. 엄마는 식당 일하고 아빠는 학교 관리인이라 저녁 7시나 돼야 집에 오시고 친구들은 다 집이 멀어요.” 소연이는 조물락에 안 올 때는 “농사짓는 엄마를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오후 3시께 영화 선생님 김한나(30) 씨가 조물락에 들어섰습니다. 마차초 전교생 21명 가운데 12명이 선생님 주변에 둘러앉았습니다. 공포 장르는 아이들이 정했습니다. 김 선생님은 “원래 이 또래 애들이 귀신, 살인사건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아 이런 걸 배웠다’ 그러게 우리가 뭘 줘야 하죠? 교 교 교로 시작하는 말~” 선생님이 답 50%는 다 말했습니다. 한 아이가 답합니다. “교실.” 답은 “교훈.” “이야기는 발단 그리고 그 다음에...” 선생님이 칠판에 ㅈㄱ을 썼습니다. 여기저기 답이 튀어나왔어요. “조개? 조기?” “우하하하.” 답은 “전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 발동 걸렸습니다. “현장학습을 갔는데 한 명씩 화장실에서 사라져. 그 애들이 귀신을 만나는 거지.” “그 다음에 귀신은 어떻게 되지” “죽는 거지.” “귀신이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또 죽냐.” “귀신이 천사가 되는 건 어때?” “그게 좋겠네.”
이제 로케이션 헌팅에 나섰습니다. 한여름 오후, 난데없는 동네 한 바퀴입니다. 아이들이 마을에서 무섭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꼽았습니다. 몸이 불편한 박진규(9) 군은 바퀴달린 보조기구를 밀며 쫓아갑니다. “같이 가.” “천천히 가.” 아이들은 진규가 부를 때마다 주춤 하는데 거리는 자꾸 벌어졌습니다. 진규 얼굴이 땀범벅입니다. 덩치 큰 정훈이가 업어주겠다니까 진규가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진규와 같은 학년인 친구가 그럽니다. “진규는 업어주는 거 싫어해.” 그때 정훈이가 진규를 보조기구에 걸터앉게 하고 뒤에서 밀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와와와~” 보조 기구는 놀이기구가 됐고, 트랙은 골목입니다. 진규, 정훈이 머리칼이 휘날렸습니다.
아이들의 ‘헌팅’ 동네 한 바퀴는 ‘메리’의 등장으로 한동안 옆길로 셌습니다. 메리는 이 동네 백구인데 인간만 보면 어떤 인간이건 좋아서 환장하는 개입니다. 메리랑 애들이 한바탕 상봉 하는 사이 선생님한테 힘들겠다니 “아이들이 착하고 잘 따라온다”고 말했습니다.
7월13일 시나리오 쓰기, 이 귀신은 왜 이리 착한가
김한나 선생님이 칠판에 ㅅㄴㄹo라고 씁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죠?” “감독이요.” “카메라요.” “이야기요!” 답은 시나리오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6명, 그중 한명은 귀신입니다.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 진지합니다. 이평화(10) 군은 구석으로 들어갑니다. “뭘 쓰냐”고 묻자 영감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지 자리를 옮기네요. 김민정(8) 양은 한줄 쓰고 선생님한테 달려가 또 한 줄 쓰고 달려갑니다.
이 귀신은 왜 이렇게 착한 걸까요? 소연이가 만든 귀신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한 아이가 귀신 꿈을 꿉니다. 학교 친구가 귀신으로 나왔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다른 친구들도 모두 같은 꿈을 꿨다는 군요. 꿈 속 친구가 교통사고로 숨진 날 밤이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친구는 꿈에서라도 친구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었답니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냐니까 소연이 “그냥 떠올랐다”고 합니다.
말없이 글 쓰는 이번영(12) 양에게 물어보니 “직접 내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게 재밌다”고 하네요. 벌써 세장이나 쓴 강재욱(12) 군이 원고를 선생님께 보여주고 한 번 더 고칩니다. “재욱아 게임이 재밌어? 시나리오 쓰는 게 재밌어.” 퇴고 중인 재욱이가 답하네요. “게임이요.” 거짓말은 못합니다. 김한나 선생님은 “사람을 귀신으로 바꾸는 것처럼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랐다”고 합니다.
7월20일 역할 정하기, “까아악” 비명과 함께 웃음
조물락 앞에 진규의 보조기구가 놓여있습니다. 김한나 선생님이 아이들 아이디어를 수렴해 완성한 시나리오를 아이들이 검토합니다. 한 아이에게 슬쩍 물어보니 “별로 안 무서운데 재미는 있다”고 합니다.
가장 치열했던 건 ‘귀신’ 역할, 두 명이 손 들었습니다. 프로 같이 ‘오디션’으로 결정합니다. 둘 다 대사를 읽어봅니다. 전찬빈(10) 양은 주인공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는 적극적이고 무대에 올라가는 거 좋아해요.” 따놓은 당상, 경쟁자 없이 결정됐습니다. “감독 하고 싶은 사람?” 진규는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촬영 날짜에 모두 나올 수 없어 진규가 나올 수 있는 날에만 감독을 하기로 합니다.
이날은 길었습니다. 리딩 연습이 두 바퀴나 돌았습니다. 아이들 등에 땀으로 옷이 늘러 붙었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빠진 게 역력합니다. 이 순간, 김한나 선생님 비장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화장실에서 귀신 피 묻은 손이 나오는 장면, 비명을 지르는 연습입니다. 어떤 아이는 작게 어떤 아이는 쇳소리가 나도록 지릅니다. “까악 까악~” 진규도 같이 지릅니다. 비명 뒤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두 시간여 영화 수업이 끝나자 보조기구를 끌고 진규는 집에 갈 채비를 합니다. “진규야, 조물락에 오는 게 왜 좋아?” “놀 수 있어서요.”
8월1일 첫 촬영, 이것이 매소드 연기!
솔직히 대충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7개 장면 찍는데 무려 4시간 촬영했습니다. 붐 마이크를 든 번영이 팔이 흔들렸습니다. “무거워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카메라를 든 촬영감독 김주선(10) 양 손도 흔들립니다. “아이들 하는 거 지켜보니까 좋아요.” 주선이는 그냥 말할 때랑 촬영감독일 때랑 표정이 다릅니다. 촬영하다 주변에서 누가 잡음을 내면 “조용히 해”라고 단칼에 상황을 정리하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여섯 친구 가운데 한 명이 화장실에 갔다 사라졌습니다. 귀신이 데려간 겁니다. 귀신의 제안은 한 가지, 숨바꼭질입니다. 마을에서 제일 복잡한 곳에 사라진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귀신은 왜 이러는 걸까요? 놀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놀이’ 한을 푼 귀신은 하늘나라로 가고 다섯 친구는 귀신이 엄마에게 남긴 말을 전합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사랑해요.”
한 테이크로 끝나는 경우 드뭅니다. 다빈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장실 급한 연기를 연습해봤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짜증나는 듯이 대꾸해야 합니다. “쟤는 만날 화장실이래, 아이 참.” 연기에 집중하더니 애드리브도 나오네요. 세 번째 데이크에서야 오케이가 떨어집니다.
화장실 위에서 피 묻은 손이 슬쩍 내려오는 장면도 두 번 찍었습니다. 전찬주(9) 양이 초록색으로 분장한 한 손씩 슬슬 내려놓는데 선생님이 “한쪽 손이 덜 내려왔다”고 합니다. 다시 헌 번 더. 거짓말 안보태고 아무도 불평을 안 합니다. 귀신을 연기한 찬주는 “분장이 끈적거려 짜증도 나지만 귀신이 제일 재미있는 역할인 거 같다”고 합니다. 정말 주인공 역할을 똑 부러지게 한 찬빈이는 좀 떨었다고 합니다. “그전에 뮤지컬 주인공도 해봤는데 여기는 진짜 방송 현장 같아요. 그래서 더 긴장했던 거 같아요.”
민정이는 “언니들이 연기를 잘 한다”고 합니다. 민정이 연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날 마지막 장면, 모두 지쳤습니다. 평화와 민정이 장면이 남았습니다. “어디지?” “가보자” 이 연기자가 인물과 하나가 되는 매소드 연기라니, 김한나 선생님이 “정말 잘했다”고 말합니다. 촬영 끝,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를 쳤습니다. 4시간 내내 슬래이트를 들었던 유다연(12) 양이 그러네요. “신기해요. 영화 수업이 없었다면,,, 방콕했을 거 같아요.”
9월7일 시사회 "엄청엄청엄청엄청 뿌듯해요."
‘행복한 하루...두둥’. 오후 3시 영월 마차초등학교 강당 앞에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민정이는 팔다리를 흔들며 “떨린다”고 합니다. 당찬 찬빈이도 그러네요. “배우들이 자기 게 나오면 부끄럽다고 하는데 제가 그 심정을 알 것 같아요.” 소연이는 엄마가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달려가 안겼습니다. 마차초 전교생 21명에 학부모, 선생님, 불이 꺼지니 조용합니다. 진규는 긴장했는지 윗몸을 곧추 세웁니다. “하하하..” 쑥스러운 웃음이 터졌습니다. ‘으으으’ 귀신 손이 올라올 땝니다. 시사회는 ‘대성공’, 왜냐면... 영화가 끝나자 학부모 진명순씨는 “아름다운 영화”라면서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민정이 어머니 신춘옥씨는 “아주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민정이가 엄마 허리를 껴안았습니다. 연기 때문에 걱정했던 찬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청엄청엄청엄청엄청 뿌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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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아이들 ‘놀권리’ 지키는 보금자리들
아이들에게 놀이는 권리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 등 그 권리를 지키려 뛰었습니다. 특히 농어촌 어린이들의 ‘박탈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상주 선생님이 평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세이브더칠드런이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경북 의성에 ‘도리터(한솔제지/한솔아트원제지 후원)’가 문을 열었습니다. 지난 2월 강원 영월군 ‘조물락(이니스프리 후원)’, 7월 전북 완주 ‘신기방기( 한솔제지/한솔아트원제지 후원)’가 농어촌 아이들의 놀이 ‘아지트’가 됐습니다. 부모님들 반응도 좋습니다. 아이가 ‘조물락’에 다니는 홍성순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상주 선생님이 계시면서 아이를 봐주니 좋다”고 말했습니다. 김영란 농어촌아동지원사업 담당자는 “농어민 비율이 높고 초등학생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놀이와 보호 두 기능을 갖춘 공간을 하반기에 1곳 더 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규모가 크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지역아동센터도 늘려가고 있습니다. 강원 영월 ‘연당별빛(롯데제과 후원)’, 전북 완주 ‘놀자(완주군 후원)’, 경북 의성 ‘안계(GSK-삼안-Ebay 후원)가 보금자리입니다.
글 김소민(커뮤니케이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