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가 추천하는
아이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인문학으로 바라본 체벌이야기'①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
"이게 실화냐?"
"팩트폭력"
요즘 어린이가 하는 많이 하는 말인데요. 팩트(사실) + 폭력을 합친 말이에요.
팩트폭력이라는 게 맥락을 제거하는 활동이에요.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그 사람의 고민,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가해자들의 팩트 입증만으로 계속 자신들의 행위를 구축해 나가는 게 어린이들 사이에서 많다는 거죠.
‘자, 쟤가 필통 만지는 거 본 사람?’
‘아, 2교시 끝날 때 내가 봤어.’
‘또 본 사람 없어?’
‘3교시 때도 쟤가 만지는 거 봤어.'
'너 필통 만졌어, 안 만졌어?’
‘만지긴 했는데.’
‘야, 만졌다는 사람 3명이 있어.’
‘그러면 너 도둑이지? 넌 좀 혼나야겠다.’
‘아니, 근데 만지긴 했는데.’
‘팩트가 있는데 네가 지금 거부해?’
이렇게 얘기하면서 공격하는 거죠.
아이들 사이에 이처럼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혐오의 문화가 퍼지고 있는데요.
진지한 이야기나 서사가 제공되지 않았던 결과라고 생각해요.
아동문학이 제대로 창작되지도 않았지만 보급되는 길을 막아왔던 지난 10년. 우리는 계속 학습 연계 도서만 읽혔죠. 정보가 제일 중요하고 신지식인이 되어야 하고...
이제 어린이들에게 상상의 위력을 알려주고 이야기의 비판적 힘을 돌려줘야 합니다. 서사화된 폭력들을 제공함으로써 이 아이들이 실제 폭력 앞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건지 결정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날의 주제,
동화 속 맞고 때리는 아이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가 선정한 책들을 살펴볼까요?
동화 속 맞는 아이들
체벌
"우리 아이들이 매 맞는 아이가 됐다"
중세 유럽의 귀족 가정에서는 대부분 매 맞는 아이를 고용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 아이를 훈육하려면 마음에 깃든 악마를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일 잘 쫓을 수 있는 방법은 때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기 아이가 고통받는 건 싫으니까 귀족 가정에서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를 사요. 자기 아이 옆에다 세워놓고 자기 아이가 잘못을 할 때마다 그 아이를 때립니다. 매 맞지 않은 아이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죠. 내가 잘못을 하면 누가 날 대신해서 맞는다는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의 시간, 그것도 체벌의 일부라는 거죠.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서 매 맞는 아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 오늘 잘 걸렸다, 네가 좀 맞아야겠다.'(본보기 체벌)
'00이가 책을 안 가져왔네,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단체 기합)
'너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널 때릴 수밖에 없다.
지금 너를 때리지 않고 참고 있는 거야'(체벌 위협)
'내가 얼마나 널 위해 노력했는데
네가 잘 되지 않으면 끝이다.’
'아이를 조용히 시킬 수 있으면 들어오고 안 그러면 오지 마.
자꾸 그러면 너희 아이를 못 들어오게 하겠다'(노키즈존)
<털뭉치>라는 단편집 안에 <멸치>라는 작품이 있는데, 폭력의 가해자가 아버지라는 내용이에요. 독재에 분노하고 생태주의자이자 민주적 시민인 아버지가 '너희는 이 세상의 폭력적인 모습에 물들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호되게 훈육하며 키웁니다. 아이들을 칭찬할 때는 멸치를 줍니다. 사탕이나 캐러멜을 주면 아이가 이도 썩고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길들여진다는 거죠. 아버지는 분노할 것이 있으면 집에 와서 아이들을 혼냅니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도망쳐요. 시장까지 도망친 아이들은 슬픈 마음을 달래려고 눈앞에 멸치를 집어먹는데, 손버릇 나쁜 애들이라고 혼쭐나서 도망치죠. 이 작품에서 체벌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데
나를 왜 이렇게 때릴까?"
학교폭력
학교폭력 현장에서 친구들을 총살하고 자기가 총기자살했던 학생 살인범 동생이 주인공이에요. 동생이 형의 가해행위가 어떤 데서 비롯됐는지 일기를 추적하는 얘기입니다. 파헤치다 보니 형이 결국은 학교폭력의 오랜 피해자였던 걸 알게 됐어요. 그렇지만 자신은 살인범의 동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배반적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이렇게 말해요.
"형이 나는 꼭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내가 형을 죽일 수 있게."
참 가슴 아픈 얘기죠? 이 이야기에서 폭력이 얼마나 연쇄적이고 또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얼마나 쉽게 뒤바뀌는지 알게 됩니다.
동화 속 때리는 아이들
폭력에 대항하는 아이
남의 돈 떼먹고 머리를 다 깨트려 버렸잖아"
<상계동 아이들>에서는 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아이들이 폭력으로 자기를 방어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줍니다. 1997년 작품인데, IMF 시기로 경기 침체가 심했던 시기죠. 그런데 이때 나왔던 이 작품을 보면 어른들은 계속 아이 앞에서 ‘내가 죽어버리겠다.’ 이렇게 협박을 하고 다락문을 뻥뻥 차고 벽에 자신의 머리를 쾅쾅 쳐대면서 자학을 하고요. 아이들은 직접 두들겨 맞은 것보다 훨씬 큰 상처를 겪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불을 가진 아이>는 동배가 성냥을 손에 넣게 되고 성냥 개수만큼 불을 지르고 다니는 얘기예요. 동배는 집에서 아버지에게 심하게 체벌 당하고 학교에 가서 태도 불량으로 야단을 맞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멍든 동배와 같이 놀지 말라고 합니다. 갈 곳 없는 동배가 처음에는 종이를 태우고 두 번째 성냥으로 좀 더 큰 걸 태우고 마지막에 산에 불을 질러요. 이 아이의 방화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면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아이에게 불이라는 힘이 세상의 폭력성에 눈뜨게 하고 자기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단서가 됐죠.
"나는 공부도 잘하고
좋은 냄새를 풍기는 아이가 되고 싶어"
학교폭력
<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은 학교폭력 현장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기술해서 충격을 줬던 작품이에요. 수술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나오는데요. 한 아이를 환자 삼아서 차가운 돌의자에 눕혀놓고 샤프와 칼등 같은 걸 들고 수건을 덮어 놓고 수술 놀이를 해요. 작가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본인이 교사를 하면서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합니다. 실화 속 아이들 가정환경을 들어보니, 부모님들이 엄정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분이었던 거죠.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가하는 부모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아이들이 교실의 가장 약자인 어린이에게 연쇄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양파의 왕따 일기>는 집단따돌림을 얘기했던 당시 베스트셀러인데요. 어른들로부터 폭력과 체벌을 겪은 어린이들이 동기, 또래 간의 폭력을 저지르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폭력적 행위를 할 때마다 대부분 ‘아이들이 요즘 참 문제다.’라고 하는데요. 그 폭력이 어디로부터 연쇄적으로 전이되었을지는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과연 그 아이들이 누구를 통해서 폭력을 배웠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짜장 짬뽕 탕수육>은 어린이들의 서열화를 다룬 작품이에요. 왕거지 게임이라고 해서 남자아이들이 소변을 볼 때 왕이 먼저 소변을 보는 식으로 폭력의 서열화를 구축하는데요. 주인공이 왕거지라는 계급을 다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바꿔버리죠. 어떤 누구도 다른 이에게 가해할 권리는 없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짜장이 짬뽕 때릴 수 있냐?
짬뽕이 탕수육 못 때리지."
아동 성폭력
<안녕, 그림자>는 어린이가 성폭력을 당하는 현장을 가장 적나라하게 먼저 보여줬던 우리나라 동화입니다. 동네 책가게 주인이 가게에 드나들던 아이들을 성추행, 성폭행하는데요. 폭행당한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다가 두 명의 피해자가 연대를 하면서 사건이 달라집니다. 아이들이 가해자를 밝혀내고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을 다루었어요.
어린이들이 성폭력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요. 피해자의 시선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 읽으면서 '이것이 피해자의 느낌이구나' 알 수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방안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동화책 속에서 봤어.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어.’라는 경험을 하면서 추후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다른 이에게 이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
<동화 없는 동화책> 안에 <날아라, 장수풍뎅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주인공이 사랑하는 장수풍뎅이가 있는데요. 그 장수풍뎅이가 사고를 당해서 수박씨처럼 뿌려져있는 모습을 발견해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게 장수풍뎅이가 흩뿌려지는 것처럼 온 전신과 존재가 파괴당하는 경험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동문학에서는 폭력을 묘사할 때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고통받는 동물을 등장시켜서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방식을 많이 씁니다.
보이지 않는 폭력의 배후자를 공격
<귓속말 금지 구역>, <나리초등학교 스캔들> 두 작품은 학교에 어떤 교육제도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기능하는지, 어른을 모방해서 내세운 아이들의 권력관계가 사실은 그 아이들이 목격했던 어른들의 권력관계와 체벌과 폭력의 누적이었다는 걸 구조적으로 분석했습니다.
Q 어른들은 왜 읽어야 하나요?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 여러 아동문학에서 보셨듯이, 어른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맞는 어린이'들이 '때리는 어린이'가 되었잖아요. 폭력을 경험하며 성장한 어른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데에서 오는 여러 갈등이 있을 텐데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어린 시절 그 체벌들, 매 맞는 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하나의 가공의 믿음이에요. ‘저들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라는 믿음인데 그 믿음은 철저하게 허위의 것이고 거짓이라는 거죠.
또,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동문학에서 어떻게 기술되고 있는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독자로서 활발하게 비평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숙하나마 자신이 가진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도록 돕는 거죠. 그러다 보면 앞으로 더욱 어린이의 시선을 이해하고 반영한 아동문학작품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Q 맞지 않는 어린이도 읽어야 할까요?
아동문학은 폭력의 내면을 고백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래서 난폭한 행위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어린이들과 이야기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공감할 수 있죠. ‘가해자의 상태를 왜 공감해야 되냐.’ 하실 수 있는데요, 가해자의 상태에 공감해야만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알 수 있고,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성인인 아동문학 작가는 어린이 독자가 이 사회의 잔인한 현상들에 질겁해서 속수무책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사건의 실체를 가장 어린이에게 알맞은 언어로 전달하는 사람이에요. 현실의 폭력을 압도할 수 있는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함으로써 어린이가 자신의 행위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죠. 문학은 반폭력의 방식으로 폭력에 대응하는 정신적 투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가장 아동문학 속에서 폭력의 이야기들은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위 콘텐츠는 <세이브더칠드런 인문학으로 바라본 '체벌'이야기>강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정리 김하윤(커뮤니케이션부)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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