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흔히 ‘집’에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어떤 것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 씻지 않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곳, 그래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입니다. ‘집’이라 불리기도 하는 ‘가정’을 ‘안식처’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가정’은 ‘괴로움’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는 감옥 같은 곳, 빨리 탈출하고 싶은 곳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작년까지 윤호(가명)와 윤지(가명)에게 ‘가정’은 ‘안식처’가 아닌 ‘괴로운 곳’이었습니다. 윤남매는 신생아 때부터 아빠에게 맞았습니다. 눈에 핏줄이 터지고 머리가 부어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해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이 가족에게 ‘집’은 ‘지옥’이었습니다. 지옥에서 겨우 탈출한 가족을 기다린 건 행복이 아닌 생계유지라는 현실이었습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은 윤남매와 엄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찾은 윤남매의 ‘집’은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안식처’가 돼 있었습니다.
▲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지원받은 생계비로 구입한 윤호와 윤지의 의복
훨씬 더 어렵고 수고스러운 선택?
“전 괜찮은데, 우리 애들한테 미안했죠... 생계가 막막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윤남매 엄마는 처음 홀로서기 하던 때를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시작할 땐 모든 게 막막했고, 잘한 선택인지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의지할 곳이라곤 친정밖에 없는데 부모님 연세를 생각하면 또 막막해졌습니다. 위로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진 지금 엄마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 셋, 이제 행복을 알아갑니다
▲ 신생아 때부터 아빠에게 폭행을 당한 윤호(왼쪽)와 윤지(오른쪽)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아동심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윤호는 심리치료를 받으며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찾았습니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바뀌어 적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지만, 그저 삶의 한 과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올가을 윤지도 미술 심리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올해 4살인 윤지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말이 늘었습니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옆에서 ABC 노래를 부릅니다. 그 목소리가 정말 사랑스럽고 고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엄마 옆에서 익히지 않은 양파도 잘 먹는 윤지를 보며 아직 아기인데 양파도 잘 먹는다고 놀라자,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어요. 애들이 고기를 진짜 좋아하는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지원해주신 거로 먹고 싶다는 고기도 실컷 먹였어요”
윤지도 내년에 어린이집에 갑니다. 엄마는 더 곁에 두고 싶은데 오빠 따라 어린이집에 몇 번 가 본 윤지는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 안달입니다. 윤지 교육비도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을 받아 똑 부러지게 해결했습니다.
“어린이집은 원래 달에 15만 원씩인데 제가 사정 말씀드렸더니 4만 원 정도 내려주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11만 원씩 내고 있어요. 수급 전에 미리 2018년 어린이집 비용을 전부 지급해서 다 해결했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 윤호가 끌어안고 있는 새 전기밥솥(왼쪽)과 뜨거운 여름 윤남매 가족을 살려준 에어컨(오른쪽).
윤남매 방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벽에 걸린 하얀색 에어컨이 보였습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윤남매 엄마가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진짜, 진짜, (세이브더칠드런) 덕분에 살았죠. 너무 더워서 잠도 못 잤어요. (친정) 엄마네로 피신 갔는데 거긴 벌레가 많아요. 애들이 피부가 약해서 벌레 물리면 엄청나게 붓거든요. 진짜,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선물해주신 에어컨 덕에 살아났어요”
새 밥솥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밥솥도 아는 언니한테 받아서 쓰고 있었는데 거의 작동 안 했거든요. 그런데 밥솥도 해주셔서 저희 세 식구, (세이브더칠드런) 덕분에 살아났어요. 정말 잘 쓰고 있어요”
추억이 있어야 자립 의지도 생긴다
▲ 가족여행을 다녀온 윤남매와 엄마가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윤호와 윤지는 물놀이를 다녀온 뒤 한동안 계속 물놀이 또 가자고 엄마를 졸라댔습니다.
인터뷰 전 담당자에게 지원내용을 받았을 땐 살짝 당황했습니다. 여행비를 지원하다니… 이 부분에 관해 얘기를 하는 게 맞을까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순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윤남매 가족에게 찾아온 변화를 보니 여행은 이 가족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물놀이 다녀온 뒤로 애들이 맨날 물놀이 가자고 해서 한동안 엄청 고생했어요. 맨날 놀러 가자고, 물놀이 가자고. 물놀이도 다녀온 뒤로 뭔지 모르게 계속 에너지가 넘쳐요. 이랬던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활기찬 적은) 처음이에요. 정말 좋았나 봐요”
안산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는 여행 이후 180도 달라진 가족을 보며 자신도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여행 다녀온 뒤로 윤남매 가족이 정말 많이 달라졌거든요. 어머니는 지난 주에 직업체험하고 오셨대요. 이제 본인이 가장이니 빨리 일 시작해서 애들 돌봐야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더라고요. 예전에 저희 팀장님께서 ‘추억이 있어야 자립 의지도 생긴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었어요”
아파도 다시 일어납니다
윤남매 엄마는 10월 초 좋은 일거리를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건물 몇 곳을 돌며 계단과 복도 등을 청소하는 일입니다. 직장에 다녀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빠르면 11월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파열된 양쪽 발목 인대였습니다. 전 남편에게 폭행당해 파열된 무릎인대가 거의 다 붙어갈 때쯤 윤지를 안고 계단을 내려오다 굴렀습니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꼭 수술해야만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병원 7곳을 더 돌았습니다. 수술하지 않아도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끝내 이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전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하고 싶거든요. 이 일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제가 직접 애들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든 살아야죠. 언제까지 이렇게 남의 도움만 받을 순 없잖아요. 제가 벌어서 애들 먹고 싶은 거 실컷 사주고, 가고 싶다는 곳에 데려가고 싶어요”
▲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지원받은 생계비로 구입한 생필품들.
엄마의 덧난 상처… 그리고 위로
윤남매 엄마는 학대피해 상황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왜 진작 말 안 했어?”, “네가 그런 상황인 줄 몰랐어”라며 위로합니다. 때론 이 말들이 가시가 돼 가슴에 박힙니다. 어머니의 상처가 덧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도 들었다며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아픈 곳이 더 아파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힘들어 보니 다른 힘든 사람들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저도 지금 저를 도와주신 분들처럼 힘든 분들 돕고 싶어요.”
위로 받기도 힘들어하던 윤남매 엄마는 가정에 찾아온 변화를 경험하며 힘든 누군가를 위로했습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윤호와 윤지, 엄마는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애쓰는 만큼 훨씬 나은 삶이 될 것이라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가족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진심으로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후원자님들의 응원으로 이 가족에게 찾아온 행복한 변화처럼 이 가족의 삶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윤남매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찾아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이렇게 지원했습니다! 총 지원비 4,500,000원 |
학대피해아동가정 지원사업
◼ 세이브더칠드런은 학대와 방임 등으로 위기상황에 처한 국내 아동이 언제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학대피해아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연계해 학대 상황에 놓인 아동을 찾아 보호하고 놀이치료 등 피해 아동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합니다. 또 갑작스런 위기로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학대피해아동과 그 가정에는 생계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지원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글 이정림(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