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창립 100주년을 맞은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영화로 만나는 아동의 권리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위해 영화 <쁘디 아만다>로 스페셜 토크의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엄마를 잃은 일곱 살 아만다와 삼촌의 따뜻한 성장영화 <쁘띠 아만다>를 통해 상실을 극복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페셜 토크를 기획한 전주국제영화제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쁘띠 아만다>는 파리 총격 사건을 정치, 사회적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재난 이후 남겨진 7살 소녀와 삼촌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해내 이번 기획과 부합했다"고 영화를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영화 <쁘띠 아만다>는 실제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상을 처참히 뒤흔든 폭력과 상실이 지나간 후, 카메라는 조용히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아픔과 애도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누나를 잃은 다비드와 엄마를 떠나 보낸 아만다가 서로를 지탱하며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재난 앞에 선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스러져가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올해 20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 <쁘띠 아만다> 스페셜 토크 자리를 마련해, 단원고에서 2년 동안 스쿨닥터로 활동하고 그 후로도 3년째 상담을 지속하고 있는 김은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씨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영화 상연 전, 김은지 전문의와 다니엘 씨를 미리 만났습니다. 짧은 인터뷰 시간으로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스페셜토크 대화를 일부 포함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스페셜 토크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김은지: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아이들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이 제 최고 관심사예요. <쁘띠 아만다> 영화 상영과 스페셜 토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이브더칠드런이) ‘내가 하고 싶은 것, 이야기 하고 싶은 것과 정말 너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지금 되게 신나고, 감사해요.
다니엘: 세이브더칠드런은 유럽에서도 되게 유명한 기관이라 이번 제안이 너무 고마웠어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유럽인으로서 유럽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알리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영화는 어떻게 보셨어요?
다니엘: 영화라기 보다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어요. 유럽 어딘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많은 가정이 겪은 일을 대표하는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배경은 프랑스였지만 독일에서도 관련된 사건(테러)이 있었으니 너무 와 닿고 현실처럼 느껴졌어요.
김은지: 굉장히 슬프고 끔찍할 수 있는 소재를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으로 풀었다는 점이 좋았어요. 마지막에 큰 화해의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서 사회적으로 큰 아픔을 준 재난 앞에서도 인간이 무력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걸 영화가 보여준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은지: 삼촌에게 안 가고 고모할머니 집에서 있겠다고 아만다가 고집을 부리는 장면이요. 아이가 정말 너무 두려운 거죠. 아이가 그렇게 반응하기까지, 삼촌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모할머니 하고라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을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아이가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묵묵하게 학교를 가고 빵을 먹고…. 그 다음에 그 장면에서 빵 터져서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 동안 응축됐던 슬픔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사별했거나 이혼을 해서 떨어져 살아야 할 때 그런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요.
다니엘: 여러 장면이 있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에 아만다와 삼촌이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영화에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다’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이 장면에서도 그 대사가 나오면서, 인생이 절망과 희망 사이에 있다는 것, 절망 속에서 살지만 희망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아만다에게 준 것 같아요.
영화가 테러를 배경으로 하고 있잖아요. 유럽에서도 최근 테러가 자주 일어났는데, 사회적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다니엘: 테러와 같은 재난이 일어나도 일상생활을 하게 돼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테러가 일어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지 않아요. 영화에서 히잡 쓴 여성을 차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특정 사람들을 낙인 찍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해요.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낙인이 찍히면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게 된다고 이야기 해요. 선택권이 없다고요. 낙인을 찍지 않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죠.
세월호 참사 5주년을 맞았습니다. 김은지 선생님은 그동안 단원고 학생들 심리상담을 주도적으로 많이 하셨는데요.
김은지: 다니엘 씨가 트라우마 전문가 같으세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우선 일상이 계속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큰 일을 겪고 나면 ‘저 사람은 이제 일상생활을 못 할거야, 고통뿐일 거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재난을 경험하고 나서도 학교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식사를 하죠. 그러면 주변에서 ‘친구랑 웃네, 저렇게 영화 보러 다니네, 멀쩡한가봐’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재난을 겪으면 슬픔으로 갔다, 일상으로 갔다가 또 약간은 즐거움도 있다가 다시 슬픔으로 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자들, 혹은 생존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일반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지 않나 하고요. 그런데 조금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인생은 진행되는 거기 때문에 아픔이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갑니다. 그게 조화로운 거죠. ‘트라우마’라는 것이 치료될 수 있는 건 그런 부분들을 우리 삶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람들은 아이들 인생이 망가질 것처럼 걱정했죠. 하지만 생존 학생들을 5년 가까이 보면서 실제로는 이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리고 때로는 연애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있어요. ‘그래, 그래도 살아가는구나, 이런 어려움 앞에서도 한걸음 나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실에서 또 다른 아이들을 보는 힘이 됩니다.
마음을 다친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지원이 시급하게,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김은지: 사람은 몸만 다치는 것이 아니에요. 트라우마나 누군가를 잃는 상실, 그리고 학대와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하면 마음도 깨져요. 어른들은 트라우마를 경험하더라도 치료를 받으면 그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7살 때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10살쯤 좋아졌다고 하면 3년이라는 발달의 공백이 생겨요. 아이의 심리정서적 발달이 7살에 멈추게 되는 거예요. 심리적인 상처가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훨씬 더 큰 문제가 되는 거고, 그래서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는 거죠. 심리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에게 심리치료는 다리를 다친 사람이 깁스를 하고 수술을 하고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너무 필요하고, 제때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 뒤에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거든요.
다니엘: 유럽이나 독일에서는 돌고래 치료 같은 것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심리적인 타격이 있는 아이를 대상으로 돌고래와 같이 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면 아이들이 엄청 행복해지고 치료도 잘 된다고 하더라고요.
김은지: 돌고래 치료와 같이 동물과 함께하는 치료가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좋은 방법이 돼요. 특히 테러와 같은 것을 경험하고 나면 제일 힘든 것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잖아요. 사람으로 상처를 받고 세상의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된 순간에 동물을 통해 다시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힘으로 해서 또 다른 관계로 확장을 해 나가는 거죠.
다니엘: 세상에 대한 신뢰를 다시 심어주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영화 속 아만다처럼 사회적인 재난이나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요?
다니엘: 우리도 2년 전에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도 어렸을 때 기억은 평생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른들이 어려서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할 거 같아요. 아이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평생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최근 독일 방송국에서는 아이들이 나와서 시사 문제, 예를 들어 시리아 내전과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뉴스 토론쇼가 생겼어요. 자연재해나 사회적인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걸 아이들에게 감추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목소리를 어른들이 충분히 인정해야 하는 거죠
김은지: 큰 일을 겪고 나면 어른들은 걱정을 되게 많이 해요. 걱정을 넘어 아이들을 대신해 판단하고 통제하려고 하기도 있죠. 세월호 참사 때 아아들을 친구들 장례식장에 가지 못 하게 한 것처럼요. 어른들로서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지만 그게 늘 옳은 것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고요.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야 해요. 의외로 많은 어른들이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될까봐 사건 자체를 언급하는 것을 피해요. 그런데 회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엄마를 잃은 아이가 있다면, ‘이모가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으니?’ 하고 물어보는 식으로요. 엄마가 보고 싶은데, 엄마의 사진이나 영상을 못 보게 하고 감춘다면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 받지 못하는 경험이 되고 더 큰 상처가 되거든요. 아이들의 마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중요해요.
글 박영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