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020 국제어린이마라톤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함께 모이는 대신, 원하는 시간에 나만의 코스를 달리는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런택트(R:untact)여서 집 앞 산책로에서도,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서도 마라톤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개막식이나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곳곳에서 전 세계 아동을 위해 달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섭지코지 달리기
멀리 바다가 보이는 마라톤 코스 풍경이 남다릅니다. 또 다른 사진을 자세히 보니 까만 돌과 풀을 뜯는 말이 있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문지영 씨는 두 아이 이예은(6살), 이영은(10살) 아동과 함께 올해 처음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뛰기 위해 경치도 좋고 안전한 곳을 찾다 보니 섭지코지를 마라톤 코스로 정했다고 합니다.
▲제주도 섭지코지를 달린 이예은, 이영은 아동
“저희 가족만 마라톤 티셔츠를 입고 뛰어서 초반에는 아이들이 조금 쑥스럽다고 했어요. 그런데 뛰다 보니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고요. 다같이 뛰는 마라톤의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비대면이어서 제주도에서도 국제어린이마라톤을 신청할 수 있었어요.”
작은 학교의 축제 같은 마라톤
정읍의 작은 학교, 능교초등학교에서는 병설유치원을 포함해 전교생 30명 중 24명과 교사 6명이 마라톤에 참여했습니다. 이슬기 선생님은 코로나19로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갈 수 없었던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는 소규모여서 한 학년에 한 학급이 있어요. 한 반에 평균 다섯 명 정도 아이들이 있고요. 처음엔 학급별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선생님들과 의논하다 보니 몸이 아픈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참여하게 됐어요”
▲구절초 공원을 달린 능교초등학교 아이들
체육 업무를 맡고 있는 3학년 이상은 선생님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근처 구절초 공원을 코스로 선정했습니다. “정읍 산내면에 구절초 축제가 열리거든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축제가 취소됐지만, 아이들과 꽃이 만발한 구절초 공원을 함께 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국제어린이마라톤의 사진 미션을 하고 있는 능교초등학교 아이들
마라톤 옷을 입고 번호표를 단 아이들은 1km마다 미션을 수행하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먼 나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물이 부족한 나라의 상황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힘들어하는 어린 동생들의 손을 잡아주고 가방도 대신 들었습니다. 마라톤에 참여하지 않은 선생님들은 코스 반환점에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결승 테이프를 들고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열심히 뛴 아이들에게 직접 메달을 걸어주셨답니다.
▲서로 도우며 함께 달리는 능교초등학교 아이들
전교어린이 회장을 맡고 있는 6학년 조은서 아동은 “친구들이랑 같이 달려서 조금 덜 힘들었어요. 구절초 공원 근처 낙엽이 예뻤어요”라며 어려운 상황의 친구들을 위해 달려서 뿌듯했다고 합니다.
마라톤과 함께 자라가요
13살 김민채 아동이 처음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여했을 때는 4살이었습니다. 김민채 아동의 어머니 권성현 씨는 10년 전, 딸을 낳아 감사한 마음에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아이들을 후원하고, 민채와 함께 국제어린이마라톤에도 매년 빠짐없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엄마 손을 잡고 마라톤을 시작했던 민채는 어느새 강아지를 안고 뛸 정도로 컸습니다. 어렸을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4km 마라톤 코스도 민채의 키가 자라가면서 뛸만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10년간 꾸준히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여한 권성현 씨, 김민채 아동(왼쪽부터)
민채는 “혼자 뛰니까 약간 쓸쓸하기도 했지만, 강아지랑 같이 뛰어서 좋았어요. 강아지는 중간에 힘든지 안아달라고 하길래 안고 뛰었지만요. 평소에는 산책하던 공원인데 마라톤 코스가 되니까 더 의미 있는 곳이 된 것 같아요”라며 나중에 커서 후원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마라톤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자라가는 만큼, 전 세계 아동을 위한 국제어린이마라톤의 의미도 선명해집니다.
뛰다가 놀다가
장세정 씨는 아이들과 주말에 마라톤 연습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7살, 4살 두 아이에게 4km는 조금 먼 거리였을까요? 씽씽카를 타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면서 마라톤을 완주한 아이들은 점심을 먹다가 꾸벅꾸벅 졸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메달을 건 순간을 가장 좋아했지만, 장세정 씨는 연습부터 미션까지, 아이들과 보내는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고요.
▲마라톤에 참여한 장세정 씨, 김재민 씨, 4살 김소이 아동, 7살 김헌이 아동(왼쪽부터)
“다 같이 모여서 마라톤을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아이들이 잘 집중하지 못했는데요. 런택트로 마라톤이 진행되니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이들이 달리다가도 궁금한 게 많잖아요. 땅에 떨어진 뭔가를 구경하려고 쪼그려 앉아있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른 아이들을 돕는 의미 있는 일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곳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이 모여 국내외 아동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가도록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글 한국화(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