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놀이터를 위해 걸어온 길을 기록합니다 | 작성일 : 2015-06-18 조회수 : 7655 |
앞으로의 놀이터를 위해 걸어온 길을 기록합니다 “이전에도 주민 참여 디자인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과정을 관찰하고 분석해주는 팀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참여 디자인의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서울 중랑구 세화어린이공원을 새로 단장한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가 주민과 아동의 디자인 워크숍, 디자인 위원화 등 참여 프로그램과 설계 과정을 되짚으며 남다르다고 꼽은 점입니다. 그의 말처럼 놀 권리 회복 프로젝트 ‘놀이터를 지켜라’의 도시 놀이공간 개선사업에는 사업 전 과정을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아이들의 행동을 분석한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용자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 이하 UX 디자인) 그룹 pxd입니다. 지난 5월 놀이터 개선사업의 전 과정을 정리하는 매뉴얼을 작성하기 위해 pxd가 세이브더칠드런을 찾았습니다. 이들에게 ‘놀이터를 지켜라’와 함께해온 여정과 앞으로의 방향을 물었습니다. 놀이터와 아이들을 ‘관찰’하는 디자이너들 Q. 우선 UX 디자인이란 말이 생소한데요. 이것이 무엇인가요? 조준희(이하 조)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든지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희가 하는 UX디자인이란 사용자가 어떤 걸 원하는지 사용자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찾는 거예요.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사용자를 관찰하고, 인터뷰도 하고, 직접 사용자가 되어서 체험해보기도 하죠. 예로 저희가 병원 침상용 기기 '스마트베드'를 개발할 때는 직접 환자와 보호자가 되어 입원해보았고 다른 보호자와 인터뷰하고 간호사들의 일하는 모습도 관찰했어요.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의사가 언제 회진을 오는지 몰라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막상 의사가 회진을 오면 물어보려던 걸 깜빡하는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간호사들도 전문 간호 업무뿐 아니라 식단 신청 같은 일까지 맡느라 업무가 많았고요. 그래서 의사와 환자 개인의 일정을 확인하고 식단 신청을 하거나 의사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는 기능을 기기에 담았어요. 저희가 환자나 보호자, 간호사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다면 이런 기기를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Q. 그렇다면 UX 디자인이 놀이터를 개선하는 활동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요? 최준원(이하 최) 놀이터에서 UX디자이너의 역할은 사용자가 될 아이들과 주민들이 놀이터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경험을 더욱 좋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다영(이하 정)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놀이터에서 이들의 행동과 그 주변 상황을 관찰하죠. 저희에게 관찰은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행동의 목표나 동기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이에요.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까지 관찰을 통해서 이끌어내는 거죠. 인터뷰를 할 때도 이렇게 관찰한 행동을 바탕으로 물어보면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 있어요 체조 선수, 방망이 깎는 노인... pxd가 만난 아이들 Q. 그런 만남과 관찰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요? 박세원(이하 박) 저는 중랑구의 한 놀이터에서 두 차례 정도 관찰한 적이 있어요. 그때 만난 혜림(가명)이는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였어요. 이전에는 막연하게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몸을 써서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노는 걸 더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혜림이는 미끄럼틀에서 친구들과 탈출 놀이를 하며 신나게 노는 거예요. 그래서 ‘내 생각이 틀렸나?’했는데 다음 번에 오니 그날은 뛰어 놀지 않고 벤치에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고학년이면 이렇게 놀 거다’, ‘이 아이는 이렇게 노는 아이다’라고 너무 단순하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 저희끼리 ‘체조 선수’라고 부르던 아이가 있었어요. 처음 놀이터를 관찰하러 중랑구 열매어린이공원에 갔을 때 만난 10살 내외의 여자 아이였는데 친구를 기다린다며 혼자 놀이터에서 놀더라고요. 꽤 오랜 시간을 놀았어요. 몸이 날렵하고 높은 곳도 잘 올라가서 처음에는 마음을 졸이며 보았는데 아이는 처음 해보는 게 아닌 듯 무척 능숙하고 자연스럽더라고요. 그 아이를 보면서 ‘저 아이가 만약 부모님과 함께 놀이터에 왔더라면 저런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거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의지가 있는데 부모의 과도한 보호가 그러한 가능성을 잠재우는 건 아닐까요? 정 세화어린이공원의 놀이기구가 철거되어 아무 것도 없을 때도 주말마다 오는 남자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 중에 재희(가명)라는 아이는 만드는 걸 좋아해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다 깎는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집에서부터 아예 도구를 챙겨 나오기도 했고요. 마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한참을 공들여 창을 만들더니 그걸 던지고 놀더라고요. 박 제가 만난 또 다른 아이는 10살쯤 된 남자 아이였어요. 이제 1학년인 동생이 있는데 어머니가 아직 동생 혼자는 놀이터로 안 내보낸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직 어려서 그렇구나?”라고 했더니 “’아직’이 아니죠!”라며 발끈하더라고요. ‘아이와 어른의 시각이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 역시 인터뷰 상대를 동등한 상대가 아닌 아이로 보고 있었구나’하는 반성도 들었어요. 놀이터 만들기의 교재를 만드는 이들, 놀이에 대해 말하다 Q. pxd가 조사하고 관찰한 결과는 어떤 형태로 나올 예정인가요? 정 매뉴얼로 나올 거예요. 나중에 세이브더칠드런처럼 놀이터를 짓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과 설계팀이 밟아왔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려고요.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는 방법 등 실무자들이 궁금해할 부분도 들어갈 거고, 저희가 관찰했던 내용도 포함될 거예요. 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것 같아요. 하나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알려주는 것이에요. 앞에서 말한 부분은 막연하게 ‘놀이터를 짓는 게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난 아이들이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왜 놀이터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거죠. 그리고 나면 ‘놀이터를 만들 때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구나’하는 청사진을 그려볼 만한 선례로 도시 놀이공간 개선사업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물론 놀이터를 선행 연구나 참여 프로그램 없이도 만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와 놀이 모습, 주민들의 의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이 매뉴얼로 나온다면 앞으로 아이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놀이터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Q. 참여형 놀이터 만들기의 교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 매뉴얼을 만드시는 여러분은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정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놀 권리라는 게 한 두 부모가 ‘내 아이의 놀 권리를 보장해주겠다’고 해서 보장되는 게 아니라 온 사회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부모가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해도 주변의 또래 친구들이 놀 수 없다면 그 아이의 놀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거잖아요. 최 놀 권리라는 말을 써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안타까웠어요. 아이들이 바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이 있는 아이도 놀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다면 놀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없겠더라고요. 비는 시간이 노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할 일이 없는 시간이 되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친구와 어울릴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이런 고민은 이번 ‘놀이터를 지켜라’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 해보았어요. 박 특히 아이들은 놀 권리를 비롯한 자신의 권리가 침해 받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안다고 해도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는 게 어렵고요.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약자이고, 그만큼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Q. 놀이란 [ ]다? 정 평생 하는 일.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원들과 많이 했던 말이에요. 놀이라는 게 정해진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도,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놀지 않을까요? 조 목적이요. 노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박 규칙이 있는 자유로움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디에선가 읽은 구절이에요. 우리가 하고 싶은 활동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움이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놀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이든 친구들과의 소통이든 어떤 규칙이 작용하는 게 그냥 쉬는 것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 즐거운 고민의 시작이요. 세원 씨와 비슷한 생각인데 멍하니 앉아 있는 걸 놀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오늘 뭐 할까?’, ‘어디에서 놀까?’하는 즐거운 고민으로 시작한다는 게 놀이의 특징 같아요. pxd는 ‘놀이터를 지켜라’의 도시 놀이공간 개선사업이 중랑구 놀이터 2곳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곳에 아이들이 목소리가 가득 담긴 놀이터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사업 과정과 아이들의 놀이 유형을 꼼꼼하게 기록한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아이들의 놀 권리가 중랑구 어린이공원 2곳을 넘어 대한민국 곳곳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농어촌에서의 방과후 놀이터 조성 사업과 정책 개선 활동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글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 관련글 · [뉴스펀딩] 8화. 놀이터 생태학: 눈 뜨고 꿈 꾸는 아이들 ▶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키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