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이곳에서 이렇게 놀고 있어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야, 너 움직였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꽃망울이 터지듯 활짝 터져 나옵니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이할 때 가장 아이다운 아이들. 이렇게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을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는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것은 물론 놀이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아동의 놀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놀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일단 접근이 쉽고 안전하며 아동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놀이공간이 필수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놀이공간’에서부터 아이들의 놀 권리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우리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듣고, 공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놀이공간이 놀 권리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동네는 어떤가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우리, 이곳에서 이렇게 놀고 있어요! - 도시와 농어촌지역 아이들의 놀이공간
현재 우리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놀고 있는지 도시와 농어촌지역을 각각 한 곳씩 선택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놀이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무릎을 낮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도시와 농어촌지역에는 모두 아무 걱정 없이 원할 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놀이가 간절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놀거나, 그냥 집에서 노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놀이공간-불안하거나, 또는 위험하거나
서울 영등포구에 살고 있는 단짝 친구 하지윤(8), 변여민(7), 이학선(8), 김현조(8) 어린이가 학원에 가기 전, 집 근처 근린공원에 있는 자그마한 놀이터에 모였습니다. 주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대형마트가 있고 산책하는 주민들이 많아 으슥하지 않은 이 놀이터는 아이들이 편히 모이기 좋은 장소입니다. 놀이터의 놀이기구는 시소, 그네, 미끄럼틀이 전부.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놀이터, 평범한 놀이기구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평범하게 노는 법이 없습니다. 시시각각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 움직입니다. 둘씩 매달려 그네를 타고 그넷줄을 배배 꼬아 빙글빙글 돌기도 하다 갑자기 우르르 잡기놀이를 하러 뛰어갑니다. 잠자리를 잡은 친구 주변에 모여 한참이나 구경하더니 이번에는 시소를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용수철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가 있고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도 있는 이 놀이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놀이터마저도 오롯이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시소 옆에는 어른들을 위한 운동기구나 놀이기구 수만큼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안전사고나 낯선 이들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늘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트인 공간이지만 낯선 어른은 아이들에게 두려운 존재입니다. 아이들은 놀다 마주친 낯선 어른, 특히 술을 마시고 배회하는 어른들을 보며 느꼈던 공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시선이 닿는 거리 안에서 노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윤 양의 어머니 김수정 씨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저학년이다 보니 밖에서 놀 때는 항상 나와서 지켜보고 있는 편”이라며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맞춰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아이들 주변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놀이터까지 오기 어려울 때는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오피스텔 단지 안에서 놉니다. 하지만 마땅한 놀이기구도 없고 차들이 항상 주차돼 있어 할 수 있는 건 술래잡기나 자전거 타기 정도입니다. 술래잡기가 시작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 건물 기둥 뒤나 지형지물을 활용해 숨는 아이들. 그러나 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이 공간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신나게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기에는 부적합해 보였습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와 어디든 보이는 자동차, 어른들만을 위한 기구들. 이것은 비단 서울 특정 지역만의 모습이 아닌 우리나라 대도시 아이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대도시의 아이들이지만 넓은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들의 꿈과 바람이 담긴 안전한 놀이공간을 찾기란 아직 사막 속 오아시스 찾기처럼 힘들어 보였습니다.
농어촌지역의 놀이공간-정작 놀 곳이 없어요! 전라북도의 한 면 단위 지역. 여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입니다. ‘농어촌지역 아이들’ 하면 흔히 자연을 벗 삼아 푸른 숲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 지역 아이들은 놀이공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잠시 뛰어놀기도 하지만 금세 통학버스를 타고 각자 마을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가장 자주 노는 장소는 다름 아닌 각자 살고 있는 마을의 마을회관 근처입니다. 집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농촌 지역의 특성상 마을회관이 가장 모이기 쉬운 장소이기도 하지만 막상 모여서 놀 만한 다른 공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을회관에서 아이들은 주로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고 놉니다. 간신히 모인 장소지만 그나마도 완전히 마음을 놓고 놀기는 어렵습니다. 마을 회관에 주로 마을 어르신들이 계시다 보니 시끄럽다며 놀지 말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얌전히 놀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자구책으로 집에 딸린 창고 앞 빈 공간에서 축구를 하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껏 뛰어 놀 자신들만의 공간이 절실한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인근에 천문대가 있지만 늘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본 적이 없고, 물가에 풀이 키보다 높이 자라 물놀이를 하지 못한다는 아이들. 12살 문현호(가명)군은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 데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중에는 학교가 끝나면 ‘혼자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에서 놀기’란 보통 텔레비전 시청이나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 게임하기입니다. 어른들에게 공기 좋고 인심 좋은 마을. 하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마을은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도시와 농어촌지역의 놀이공간은 각각 다른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의 시작은 비슷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된 놀이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의 공간 속 아이들의 놀이공간은 ‘덤’으로 주어진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른들의 구상으로 만들어졌거나 아이들이 간신히 찾아낸 공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완전히 마음을 놓고 불안과 걱정 없이 놀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글 신은정(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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