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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의 만남] 생화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작성일 : 2015-07-14 조회수 : 8611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저서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과학하고 앉아있네>(공저), <해리포터 사이언스>(공저) 등

<인간 이력서>, <모두를 위한 물리학> 등 번역

중앙선데이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한국일보 [이정모 칼럼] 기고



Q. 진화이론 측면에서 아이들의 놀이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놀이는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놀이는 사람이 처음 출연했을 때부터 있었던 거에요. 사람뿐만 아니라 웬만한 동물들도 다 놀이를 하고 있죠. 사람들 같은 경우는 놀이가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마지막에 몇 만년 전까지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같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키가 좀 작긴 했지만, 몸은 더 다부졌고 뇌도 더 크기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빙하기를 네안데르탈인은 견뎌내지 못했고 호모사피엔스는 견뎌냈잖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저는 놀이라고 보죠. 왜냐하면 노는 동안에 사회성과 창의성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호모사피엔스 같은 경우에는 부모들이 애를 하나 낳고 오랜 시간 동안 정성껏 키워줘요. 그 아이는 그 시간에 남자들은 나가서 사냥하고 있고 엄마들은 뭘 캐고 있는 동안에 아이들은 그냥 놀았어요. 놀 때 보면 노는 아이들의 집단이 있잖아요 작은 아이들도 있고 큰 아이들도 같이 섞여 있죠. 태어나가지고 아장아장 걸은 다음부터 어떤 놀이집단의 가장 밑바닥이 되는 거에요. 거기선 깍두기로 시작하다가 조금 조금씩 커가면서 나중에는 어떤 작은 놀이집단에 우두머리가 되는 거죠. 근데 또 제일 커진 애들은 조금 큰 아이들의 그룹으로 또 옮겨가거든요 그땐 다시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에요. 그니까 이런 사회화의 경험을 여러 번 겪은 다음에 그 다음에 성인으로서의 세상살이를 하는 거죠. 그니까 사회성을 충분히 갖출 수가 있었고.


또 하나가 창의성인데 창의성이라는 건 결국에 (이미)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으로 편집해내는 것이거든요.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하나 가지고 있어요. 내 또래 애들도 똑같은 비슷한 수준의 생각을 해요. 그래도 나보다 조금 큰 애들은 조금 더 깊고 넓은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그걸 배우는 거죠. 누구한테 배우냐 하면 자기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한테 그 생각을 배우는 거에요. 그러면서 내 생각을 더 확장시키고 더 넓히고 또 실용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거죠.


근데 이에 반해서 네안데르탈인은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없었어요. 그러니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당장 성인의 역할을 해야 되는 거에요. 유아기가 없는, 놀이, 놀면서 지내는 시간이 없다 보니까 사회성도 갖지 못했고 창의성도 갖지 못했죠. 기후가 좋을 때는 어떻게든지 버텨낼 수 있었는데 기후가 나빠졌어요. 빙하기가 왔어, 이때 창의성과 사회성이 있는 호모사피엔스는 살아 남았고, 네안데르탈인은 그게 없다 보니까 멸종하고 말았던 거죠. 그러니까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게 됐던 것은 놀이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놀이였는데, 우린 그 놀이를 잃어버리고 있는 거에요. 또 일부가 놀더라도 문제가 있는 게 예전에는 위계질서가 있는 그룹에서 놀았잖아요. 위와 아래가 있었어요 그 안에서. 지금은 아이들을 놀게 할 때도 어때요? 또래만 놀게 하잖아요. 같은 나이 기껏해야 한 살 차이 나는 애들끼리 있어요. 놀이에서 학습이 가능했던 이유는, 놀이에서도 놀이 집단에 계층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아주 조금 놀게 해주면서도 그 안에서의 계층구조를 다 없애버렸어요.



Q. 놀이는 아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놀이는 기본적으로 위험을 감수 하는 거에요. 길을 가다 보면 길을 갈 때, 부모님들은 그냥 넓은 길로 가는데 애들은 굳이 어떤 난간 같은 데 위에 올라가서 다니잖아요. 기본적으로 구석기 시대 때부터 (사람에게) 어린 시절은 위험을 감수하는 시절이라고 각인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능력을 시험할 수 있거든요. 어릴 때 보면 뛰어내려요. 정글짐 같은 데서 뛰어내리잖아요. 처음에는 낮은 데서 뛰어내렸어요, 조금 크면 위에서 뛰어 내릴 수 있고. 그러면서 점점 뛰어내릴 수 있는 내 위치가 어디까진지, 내 능력이 어디까진 지 계속 시험해볼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아주 안전한 놀이들을 하잖아요. 그런 놀이에서는 자기의 한계를 배우지도 못하니 어디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죠.


자기 주도적으로 놀고, 자기가 놀고 싶은 규칙을 따라서 놀고. 그게 해가 있는 곳에서 비타민D를 막 만들어 가면서 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아이들에게 무척 좋은 기회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우리는 그렇게 자랐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게 안타까운 거죠.



Q.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어떤 곳일까요?


A. 놀이터라는 것은 새로운 사회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돼요. 놀이터는 공유 공간이잖아요. 거기서 사람을 사귀어 나가고 새로운 놀이와 규칙을 배울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 진출한다고 해도 무수히 하는 게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계속 사람을 만나야 되거든요. 아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가지고 그 사귐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나가야 되는데, (그러려면) 반복해서 만나야 되잖아요. 반복해서 만나려면 가까운 곳에 있어야 되죠. 학교보다도 가까운 곳. 얼른 밥 먹고 와서 가고, 급한 일이 있을 때 엄마가 부르러 올 수 있는 거리, 엄마도 안심할 수 있고, 자기가 부모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거리에 (놀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Q. 누구나 갈 수 있는 놀이공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교육은 공공성이 있잖아요. 공공성이 있으니까 그걸 인정해서 나라가 책임지고 교육을 맡고 있죠. 놀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호모사피엔스는 놀이를 통해서 호모사피엔스로 성장을 했고, 지구를 지배하고 있고, 이 사회를 만들었거든요. 놀이를 계속 유지해야지만 이 사회가 계속 유지된다고 했을 때, 그런 점에서는 당연히 놀이도 공공성이 있으니까 놀이터도 공공에서 책임을 져야 되죠.


나라가 안 해주고, 공공이 안 해주고 개인이 하라고 한다면 그럼 어떡해요. 거기서 수익이란 게 필요할 수 밖에 없거든요. 이윤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버리게 되죠. 그럼 사설 놀이터를 운영하는 분들의 시선은 누구한테 가냐 하면 돈을 내는 엄마한테 가요. 엄마가 노느게 아니라 애가 노는 건데. 아이의 놀이 요구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모습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놀이가 아닌 거죠. 




우리 아이는 충분히 놀고 있을까요?

여러분 자녀는 친구와 함께, 실컷, 맘껏 놀 수 있는 환경인지 지금 아이의 놀이 상태를 테스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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