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를 지켜라’의 출발, 놀이 스터디 UNCRC31 ②: 놀이터를 지키는 UNCRC31 구성원 인터뷰 | 작성일 : 2015-04-28 조회수 : 7251 | ||||||||||
‘놀이터를 지켜라’의 출발, 놀이 스터디 UNCRC31 ② 밥 먹다 시작한 사내 놀이 스터디 ‘UNCRC31’이 2014년을 보내는 동안 세이브더칠드런 안팎에서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담론들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UNCRC31 구성원들도 국토교통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중랑구 어린이공원 개선사업과 농어촌 놀이공간 조성사업을 기획하는 등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를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키는 옹호활동과 현장에서 아이들의 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련 글: 놀이터를 지켜라의 출발, 놀이 스터디 UNCRC31 ①: 사내 스터디에서 프로젝트까지 ▶ ‘놀이터를 지켜라’ 프로젝트를 국내사업부와 권리옹호부에서 각각 이끌어나가는 실무자는 당연하게도 UNCRC31 구성원들입니다. ‘작정하고’ 스터디를 꾸렸던 권리옹호부 제충만 대리와 ‘풍문으로 듣고’ 합류한 국내사업부 최선아 과장에게 놀이 스터디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놀이터를 지켜라’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공부해도 어려운 놀이 Q 아이들의 놀이 혹은 놀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충만(이하 제) 개인적으로 10년 동안 교회에서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을 가르쳐왔어요. 종종 그 아이들과 근처 놀이터로 놀러 가는데 아이들이 잘 못 노는 거예요. ‘마음껏 놀아’라고 말해도 ‘뭐하고 놀아요?’, ‘이거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하고 계속 묻고 주춤거려서 답답했어요. 그러다 스터디 얘기가 나왔으니 반가웠죠. 우리나라 아이들이 못 노는 현실을 아동권리 측면에서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선아(이하 최) 농어촌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동료들에게 ‘아이들이 뭘 하면 좋을까?’하고 물어보다가 스터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프로그램 기획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 들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모임에 참여할 수록 놀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죠. 사실 저의 출발점은 ‘아이들이 못 논다’는 점이 아니라 기존 프로그램이 거의 한결같이 교육 또는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아이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줄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놀이라는 주제에 닿은 거죠. Q 스터디를 하면서 놀이에 대한 관점이 새로 생기거나 바뀌었나요? 최 생각보다 놀이의 범주가 넓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터디 때 제가 발제했던 주제와도 상통하는데, 전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여가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는 놀이라고 하면 조금 단정적으로 ‘어떤 것이다’라고 그리는 게 있었다면 지금은 놀이의 정의나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놓게 된 것 같아요. 제 세상을 놀이로 보기 시작했어요. 학교 폭력처럼 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줄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면 ‘아이가 친구들과 충분히 잘 놀았을까? 그렇지 못했다면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아이들이 정답만 찾으려는 모습에서도 놀이의 경험이 부족한 탓은 아닐지 짐작해보기도 하고요. 놀이라는 게 완성된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과정이잖아요. 놀이의 결핍이 아이들이 궁리하지 않으려는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즐거웠던 만남, 부러웠던 놀이 공간 Q 스터디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기도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은 언제였나요? 제 놀이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도록 도와주신 편해문 선생님을 만나 뵈어서 좋았어요. 그냥 사내 스터디일 뿐인데 애써 시간 내어 와주신 점도 감사했고요. 그리고 서울시 마을공동체 산별아에서 아이들과 놀이 모임을 꾸려가시는 놀이활동가 오명화 어머니를 만난 것도 뜻 깊었어요.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과 놀고 계신지 느낄 수 있었거든요. 남편 분이신 최재훈 님도 인위적으로 놀아 ‘주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아이들과 어울리시고 그 공간을 아이들의 것으로 지켜주시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어요.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도 물론 기억에 남고요. 최 직접 인근 놀이터를 찾아가서 아이들 노는 모습 혹은 놀지 않는 모습도 보고 부모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이 기억 나요. 놀이터 별로 아이들의 이용 빈도나 반응에서 차이가 났던 점이 흥미로웠어요. 우리 나라 놀이터가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그런데 어디는 아이들이 많고 어디는 별로 없는 게 신기하고 궁금했어요. 어떤 곳은 주민들끼리 커뮤니티가 조성되어 있기도 했고요. 제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어디가 편안한 지 아는 것 같아요. 어느 한 요인 때문에 놀이터가 잘 되기는 어렵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요소들이 있는 게 아닐까요? Q 우리가 다루었던 주제 중에는 어떤 게 가장 흥미로웠나요? 제 ‘프로젝트 와일드 씽(Project Wild Thing)’이라고 해서 영국의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본드(David Bond)가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안겨주었던 마케팅 기법을 역으로 이용해, 자연 공간을 되돌려주려고 한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아요. 위험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 수위를 조절해가며 놀 수 있는 영국의 모험놀이터 ‘더 랜드(The Land)’도 재미있었고 그곳 영상을 통해 놀이활동가(Playworker)의 역할을 배울 수 있던 점도 무척 좋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전까지만 해도 ‘놀이터에 어른은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고수했거든요. 아이들이 알아서 놀 수 있게 해야 한다고요. 그랬는데 영국의 놀이정책을 담당하는 플레이잉글랜드(Play England)에서 낸 놀이활동가 사례 연구 보고서 <사람이 놀이를 만든다(People Make Play)>를 공부하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 그 자료에서 아이들이 놀이활동가가 있을 때 더 재미있어 했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우리는 놀이 공간에 어른이 있으면 아이를 보호하고 통제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보호자를 뺀 놀이만 강조했던 것 같은데 안전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 갈등 조정을 해줄 보호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사람이 놀이를 만든다>에서 놀이활동가의 역할에 대해 ‘Setting a setting’라고 표현한 게 참 와 닿았어요. 아이들이 놀 판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랄까요? ‘이거구나’ 했어요. Q 놀이 정책이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자료는 무엇인가요? 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와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이란 책이요. 전자가 놀이의 결핍으로 인해 현대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보여주면서 놀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라면, 후자는 한 가족이 집에서 6개월 간 디지털 기기를 차단하면서 달라진 생활을 담은 이야기예요. 새로운 여가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덕에 저도 그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놀아보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제 저는 책은 아니고 197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이들이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차도를 막아 시위하고 관계당국 사람들을 만나러 다녀서 결국 변화를 이끌어낸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1972 차에 맞선 암스테르담 아이들(Armsterdam Children Fighting Cars in 1972)>을 추천하고 싶어요. 아동 참여의 가장 극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어 감동적이었고 또 우리 역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거든요. 우리가 그리는 놀이공간 Q 두 분은 각각 ‘놀이터를 지켜라’ 프로젝트의 농어촌 놀이공간 조성사업과 중랑구 놀이개선 및 정책 개선활동을 맡고 계신데요. UNCRC31 스터디가 두 분이 하고 계신 업무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최 저는 처음에는 스터디와 업무를 별개로 생각했어요. 스터디가 이미 저녁 6시에 시작했잖아요!(웃음) 제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최 그때는 이렇게 스터디가 업무에 녹아 들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지난 여름 농어촌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서울경기지부, 대구지부, 전북지부와 함께 포천과 의성, 장수, 영월을 방문해서 아이들 86명과 성인 98명을 만났어요. 농어촌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는지, 지역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등을 물었죠. 그 활동 중에 하나로 아이들이 원하는 지역사회를 그리는 게 있었는데 주로 놀 수 있는 곳을 그리더라고요. 친구들과 함께 놀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스터디와 사업이 이어졌어요. 제 저는 스터디를 할 때부터 놀이를 옹호활동의 주제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스터디를 통해 발견한 문제가 많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냥 스터디로만 끝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국토교통부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려고 했을 때나, 아동 삶의 질 연구조사에서 아이들이 놀이터와 자신의 행복 또는 안전을 결부 짓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했어요. 스터디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나 보다’하고 넘겼을 지도 모르는데 그게 동력이 된 것 같아요. 덕분에 최소한의 놀이공간을 지켜낼 수 있게 대처할 수 있었고요. 간접적으로는 같이 스터디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데서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이 주제에 대해 물어보고 함께 고민하고 오히려 나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일을 진행하는 데 무척 든든했거든요. Q 놀이공간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어떤 곳에서 놀았으면 좋겠나요? 제 ‘더 랜드’같은 모험 놀이터가 아이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놀이터 같아요. 그러면서도 놀이활동가가 있으니 저도 마음이 놓일 것이고요. 우리 나라에서 그런 놀이 공간이 불가능하다면 지금 저희가 고치고 있는 중랑구의 상봉어린이공원도 좋을 것 같아요. 그곳은 주변에 아이들이 많고 그 어린이공원이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놀이기구가 전혀 없는데도 아이들이 많이 오거든요. 그런 데면 잘 놀 수 있지 않을까요? 또래도 있고 동생 누나 형 언니 오빠들도 있고. 도심에서라면 그나마 이런 곳이나 놀이활동가들이 만든 공간들이 좋을 것 같아요. 최 저는 어떤 구체적인 공간을 상상하지는 않아요. 저희는 조그만 아파트 주차장 공간에서도 다 놀았잖아요. 어쨌든 모일 수 있는 공간이라면 다 장단이 있을 거예요. 그보다는 놀지 못하게 하는 구속이 없는 공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놀이터여야 한다기 보다는. Q UNCRC31와 ‘놀이터를 지켜라’를 통해 얻은 놀이의 원칙 또는 철학이라면 무엇인가요? 제 함께 놀기, 실컷 놀기, 맘껏 놀기! 진짜 그것 같아요. 최 맞아요. 놀이의 필수 요건이죠. 저는 ‘아이들이 정해서 하는 놀이’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결국 자발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이 좋아서, 재미있어서 하는 활동이라면 그 무엇도 놀이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어떤 유희라도 아이들이 억지로 하는 일은 결국 아이들에게 놀이가 아닌 숙제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놀 권리를 이야기할 때는 아이들의 시각, 아이들의 목소리, 아이들의 행동을 꼭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 관련 글 · ‘놀이터를 지켜라’의 출발, 놀이 스터디 UNCRC31 ①: 사내 스터디에서 프로젝트까지 ▶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키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