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돌아온다 | 작성일 : 2015-12-15 조회수 : 13394 |
놀이터가 돌아온다
땅, 땅, 땅. 국회에서 의장이 의사봉을 내리칠 때마다 법안이 통과되거나 폐기되곤 합니다. 19대 국회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지난 9일 의사봉의 울림과 함께 통과된 법안이 총 114건. 그 중 하나가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하 ‘안전관리법’) 개정안>이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1월부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던 안전관리법이 드디어 더 나은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인데요, 우리 나라 곳곳 어린이공원과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등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법이 다시 국회에 상정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정된 법은 이전과 어떤 점이 다른 걸까요? 금지만 하고 고쳐서 돌려주지 않는 것, 놀이터 2015년 1월 안전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놀이터 중 무려 1,600여 곳이 폐쇄되었습니다. 거의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약 800곳의 놀이터가 출입금지 구역으로 방치돼 있습니다. 안전 기준에 미치지 않는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안전관리법은 사용을 금지할 뿐, 안전하게 고쳐서 아이들에게 돌려줄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봉쇄 테이프가 감긴 채 방치된 놀이터는 오히려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할 뿐입니다. 법대로 했을 뿐? 그렇다면 법을 바꾸자!
안전관리법에 따라 폐쇄된 놀이터가 흉물로 오래 남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는 법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것이니 주민들의 분담금으로 고쳐야 하는데, 영세한 주택단지의 경우 그 비용을 주민들이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이브더칠드런은 전국 16개 시도 의회 의원들에게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놀이터 개선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전라남도에서는 놀이터가 폐쇄를 앞두고 김상배 의원이 조례안을 내놓아 올해 4월에 법안이 마련되었고 예산까지 확보했습니다. 서울시의회의 김인제 의원도 세이브더칠드런의 제안에 따라 폐쇄된 놀이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례안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국회에서도 신상진 의원과 진선미 의원도 영세한 주택단지의 놀이터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안전관리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습니다. 폐쇄된 놀이터가 흉물로 계속 남아있는 두 번째는 ‘법대로 놀이터를 폐쇄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며 손을 놓는 놀이터 운영 주체입니다. 기존 법에는 이러한 배짱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없었습니다. 이 같은 허점을 막기 위해 박남춘, 임수경, 전병헌 의원도 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냈는데요, 여기에는 폐쇄된 놀이터를 방치만 해두는 곳에 과태료를 물어 놀이터 수리를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놀이터를 그리는 목소리, 국회로 향하다
5개나 되는 법안이 국회에 나왔지만 한동안 이 법안들은 국회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2015년 말까지 19대 국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전관리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1년 가까이가 지나도록 여전히 ‘출입금지’ 딱지가 붙은 놀이터 800곳이 내년이라고 달라질 거란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11월 3일 세이브더칠드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국회를 향해 ‘놀이터 폐쇄 장기화는 올해로 끝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이 기사로 발표된 이후 여러 단체와 전문가, 개인이 ‘우리도 같은 생각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 뜻을 모아 23일 36개 단체와 126명의 개인이 공동으로 다시 한 번 성명을 냈습니다. 여기에는 굿네이버스와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국제아동인권센터와 같은 대표적인 아동 단체와 김지환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의원, 편해문 놀이터 운동가도 참여했습니다. 돌아온 놀이터를 맞이하는 방법 12월 9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뜻이 담긴 안전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개정될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이제 놀이터 운영 책임자는 폐쇄된 놀이터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안전검사를 받지 않거나 통과하지 못해 폐쇄가 되면 책임자는 2개월 안에 어떻게 놀이터를 고쳐서 아이들에게 돌려줄 것인지 밝혀야 합니다. 만약 영세 아파트 단지처럼 주민들의 분담금만으로 놀이터를 고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이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만으로 놀이터가 온전하게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은 놀이터라는 물리적 공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 이를 가꾸어 가는 주인공은 결국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놀이터가 오래도록 아이들 곁에 남으려면 놀이터뿐 아니라 그곳을 오가는 길까지 아이들에게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관심과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신나게 놀며 추억을 담아가는 애정이 놀이터를 진정한 ‘놀이의 터’로 만들 것입니다. 글 |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 놀이터가 아이들 곁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을 응원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