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놀이터 개선사업 설계팀을 만나다 | 작성일 : 2015-06-01 조회수 : 9458 | ||||||||||||
도시 놀이터 개선사업 설계팀을 만나다 아동 놀 권리 회복 프로젝트 ‘놀이터를 지켜라’를 진행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함께 도심 속 놀이터인 중랑구 상봉어린이공원과 세화어린이공원을 개선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시행 이후로 폐쇄된 놀이터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지만 세이브더칠드런의 목표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에 놀이터의 주인이 될 지역 아이들과 부모, 주민,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때문에 도시 놀이터 개선사업을 맡을 설계팀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놀이터 설계뿐 아니라 아이들과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역량이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계팀을 선정하는 데는 100곳이 넘는 목록을 두고 고민했고 한 달 동안 조경 전문가 단체를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세이브더칠드런의 파트너로 선정된 이후 3개월 동안 아이들과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이 과정을 통해 놀이터 설계를 완성한 두 대표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영범 교수가 이끄는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는 2007년에도 수원 영통에 놀이터를 만들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한 경험이 있는 곳입니다.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 소장 역시 주민 참여 방식으로 소형 도심공원 ‘한평공원’을 비롯한 공공 공간을 설계해온 전문가입니다.
참여 디자인, 생활밀착형 디자인을 실현하는 방법 Q. 아이들의 놀이 혹은 놀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연금(이하 김) 이전부터 놀이터를 한 번 설계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세이브더칠드런이 제안해주셔서 저희가 기회를 잡은 거죠. 이영범(이하 이) 저희는 김연금 소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조경작업소 울에서 두 어린이공원을 한 번에 맡기는 힘들 것 같으니 한 곳을 저희가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저희가 2007년 수원 영통 놀이터를 참여 디자인으로 만든 적이 있거든요. Q. 두 분이 이전부터 알고 지내셨던 건가요? 김 이영범 교수와는 도시의 보행권 확보나 마을만들기 운동, 생활문화 운동을 하는 ‘걷고싶은도시만들기 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알아왔어요. 이 도시연대 활동을 하면서 2002년부터 김연금 소장을 비롯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참여 디자인을 주제로 모임을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커뮤니티디자인센터도 만들고 주민 참여가 무엇인지, 참여 디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했어요. 당시 김연금 소장이 처음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소형 도심공원 ‘한평공원’을 약 3년 동안 진행했어요. 그러면서 배운 점을 함께 나누었고 2007년에는 저희가 수원 영통 놀이터에서 참여 디자인으로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을 토대로 2009년 커뮤니티디자인센터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라는 책도 냈죠. Q. 참여 디자인이란 게 무엇이고, 왜 주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참여 디자인은 현장을 기반으로 나온 디자인 방법론 또는 가치지향이라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참여 디자인은 사적 공간이 아닌 공공 영역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어요. 공공 영역은 사용자가 익명의 다수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자신의 지식이나 감성, 직관에 따라 답을 내리면 사용자의 욕구와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주민과 같은 이해 당사자들이 디자인 과정에 참여해 공간이 어땠으면 좋겠다든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그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야기해주면 디자인이 생활밀착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죠. 김 참여 디자인은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때문에 ‘참여 디자인으로 진행하면 결과가 반드시 빼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정말 뛰어난 디자이너는 현장에 오래 있지 않고도 주민에게 적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는 아무리 현장에 있어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를 낼 수도 있죠.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시설을 만드는 일에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요? 분명 현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 있을 테고 전문가가 읽어낼 수 없는 요소를 주민들이 알려줄 수도 있고요. 주민참여? 그곳 사람들과 복닦이는 것 Q 참여 과정 중에 주민들의 변화도 목격하셨다고요? 이 참여 과정이란 게 방관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기도 해요. 주민들이 훈수 놓듯 한 두 마디 하다가 협력자가 되는 거죠. 이렇게 주민을 변화시키는 과정까지도 참여 디자인의 한 과정이에요. 김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지역 어머니들이 놀이 프로그램 자원활동가를 하시겠다고 나선 것이에요. 세화어린이공원 옆에 있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도 매우 적극적으로 자원활동가로 나서고 계시고 놀이터마다 주민협의체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생겼어요. 지난번 주민설명회에 오신 주민들도 어린이공원 개장식 때 직접 부스를 하나씩 운영하시겠다고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마을 공동체 주민들은 저희 보고 ‘지역 일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나서 주어서 고맙다’고 해주시니 저희도 고마웠죠. Q. 아이들을 비롯해 여러 주민들이 참여하는 만큼 참여 과정에는 갈등도 있었을 텐데요? 이 우리는 자유롭게 뛰어 놀 공간을 최대한 만들고 싶어서 놀이기구를 줄이고 싶었는데 실제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아이들은 미끄럼틀과 그네를 좋아해요. 미끄럼틀은 높은 놀이기구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니까 고민 거리가 아니었는데 그네는 끝까지 토론 대상이었어요. 어머니나 선생님들께서는 “그네를 누구 한 명이 독점해버리면 싸움이 나고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못 타고 속상해하며 집에 가니까 없애달라”고 하시고 아이들은 놀이터 모형을 보자마자 그네부터 찾아요. 참여라는 것은 결국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의 욕구가 상충할 수밖에 없죠. 김 바닥재도 고민 거리였어요. 서울시는 자연소재인 모래를 추천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만나보면 모래를 꺼려해요. 신발에 들어가고 뛰면 발이 자꾸 빠진다고요. 아무 고민 없이 탄성포장재로 바닥을 까는 것도 문제지만 마찬가지로 무조건 모래만 고집하는 것도 답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화어린이공원에서는 울타리를 두고 갈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어요. 공원의 삼면이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이용 시간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죠. 조금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에 불만이 컸지만 공원을 바로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심야에 생기는 소음에 매우 민감했죠.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가장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울타리를 바라는 욕구는 공원에서 떨어져 살아서 소음 피해를 겪지 않는 주민들이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와서 음악을 틀고 떠들기 때문에 나온 것이거든요. 찬반은 계속되었지만 주민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놀이터를 그리며 고민에 휩싸이다 Q. 디자인 과정 중에 주로 고민하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 보통 미끄럼틀과 오르막, 2층 공간 등으로 이루어지는 조합놀이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조합놀이대가 놀이의 전부가 아님에도 놀이터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큰 편이고, 그렇다고 없애자니 조합놀이대가 놀이 공간을 수직적으로 확산해주는 순기능도 있는데...... 아이들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거든요. 고민이 깊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놀이터를 철거하고 생긴 빈터에서 아이들의 다른 놀이 형태가 나타났다는 점이에요. 빈 공간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하던데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한다는 점은 좋지만 영유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지거나 소수의 아이들이 놀이 공간을 독점하는 상황이 우려되기도 했어요. 이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캠페인 이름이 ‘놀이터를 지켜라’이다 보니 놀이라는 것, 놀이가 이루어지는 터라는 곳이 무엇일지 고민했죠. 놀이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지금의 놀이터가 놀이기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빈 터에 바닥에 그림을 그려 만든 바닥 놀이터나 그물망을 설치해 아이들이 놀 수 있게끔 해본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놀이기구 없는 놀이를 실험했던 거고요. ‘터’에 대한 질문은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질문 같아요. 터란 것은 곧 현장인데 세화어린이공원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그곳에서 답을 찾았어요. 그 중 하나가 나무였어요. 처음 공원을 찾았을 때는 나무가 울창해서 음침하고 습하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첫 번째 놀이워크숍을 진행했던 놀이 활동가 편해문 씨로부터 ‘그곳은 나무가 좋아서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적극적으로 다시 검토했고 덕분에 미니 숲 놀이터라는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었죠. 이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나무를 다른 눈높이에서 보며 놀 수 있어요. 놀이터: 어울렸던 공간, 어울릴 공간 Q. 놀이터나 참여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아이들 중 기억나는 아이가 있나요? 김 2주에 한 번씩 놀이터를 찾아가 아이들과 놀았던 시간이 무척 즐거웠고 그러면서 눈에 밟히는 아이들도 생겼어요. 재민이(가명)는 우리가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합류하지는 못하고 한쪽에서 바라만 보던 아이였는데 세 번째 찾아가니까 같이 놀더라고요. 어떤 자매는 친구들이랑은 안 놀고 저희를 쫓아다니며 관심을 바랐어요. 또 다른 아이는 거의 늘 청결하지 못한 상태여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되었고요. 제가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놀이터를 만들면서 함께 어울렸던 시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그곳 놀이터에서나마 존중 받는 기분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 제가 만난 아이들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이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청소년들이 마음에 남아요. 비단 중랑구만이 아니라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어린이공원을 찾으면서 주민들과 갈등이 생겨요. 지역사회가 청소년을 지금처럼 공공의 적으로 보는 게 안타깝죠. 기회가 된다면 청소년이 공존하는 놀이터를 고민해보고 싶어요. 놀이터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그곳 청소년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청소년을 수용하고 뒷받침해 줄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Q. 앞으로 도시 놀이터 개선 사업으로 놀이터 개장과 놀이 운영 프로그램 운영이 남았습니다. 어떤 점을 기대하시나요? 이 나중에 놀이터가 완성되면 그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놀지 저희도 참 궁금해요. 기구 의존도가 달라질지, 그에 따라 놀이터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질지도 궁금하고요. 일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만들고 끝내는 게 마음 편하기는 하지만 디자인 이후 과정이 있어서 사람들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되기도 해요. 세이브더칠드런과 경기대 건축학과, 조경작업소 울이 중랑구 아이들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울리면서 함께 만든 상봉어린이공원과 세화어린이공원은 오는 6월 12일 개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10회의 아동 참여 과정과 9회의 주민 참여 과정, 놀이워크숍을 통해 세이브더칠드런이 중랑구 아이들과 주민들을 배워가고, 중랑구민들이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배워가며 함께 만들어온 공간입니다. 그리고 놀이 프로그램 자원활동가가 된 지역 주민과 이곳의 주인공 아이들이 꾸려나갈 공간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곳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함께, 실컷, 맘껏 자신의 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글·사진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 관련글 · [뉴스펀딩] 3화. 'PC방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놀이터' ▶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키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