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 사진이 말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입니다 | 작성일 : 2015-06-08 조회수 : 6804 |
시와 그림, 사진이 말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입니다 “아이들은 1m를 가도 걸어가는 법이 없어요, 뛰어 다니죠.” ‘아이들은 어떻게 노나요?’라는 질문에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이자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아버지 유용선 씨가 들려준 답입니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에게는 일상을 놀이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놀 거리를 찾아내고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놀이를 찾아내는 곳은 놀이터일 수도 있고 집이나 학교, 마을 길, 주차장일 수도 있습니다. 1650년 네덜란드 민속화가 피터 부루겔(Peter Bruegel)이 ‘아이들의 놀이’라는 작품에 담아낸 아이들의 모습은 이러한 놀이의 다양한 예를 보여줍니다. 360년 전 네덜란드에서 찾은 닮은 꼴 놀이 이 작품에서 눈이 어지러울 만큼 마을 공터를 가득 메운 아이들이 보여주는 놀이는 무척 다양합니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 보면 360년 전 네덜란드에서 했던 놀이 중에 우리에게 낯익은 놀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굴렁쇠 굴리기, 나무 말 타기, 인형 놀이, 공기 놀이, 팽이 치기 등이 그렇습니다. 딱히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도 난간에 매달리고, 친구 한 명의 팔 다리를 붙잡아 그네를 태우는 장난 역시 우리도 한 번쯤 했음직한 놀이입니다.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도 비슷한 놀이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놀이가 아이들의 본능이라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아이들의 특성은 17세기 일본의 시인 요시다 류스이의 짧은 시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길을 잃은 아이는 울면서도 계속 반딧불이를 잡는다. 놀이를 통해 ‘오늘’을 사는 아이들 길을 잃었던 아이만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겪은 아이들 역시 놀이를 그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집이나 가족을 잃은 충격에 말을 하지 않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지만, 놀이는 이 아이들이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지난해 전쟁 속에 갇혀있다 겨우 살아남은 남수단의 추올(13, 가명) 역시 놀이를 통해 다시 아이다움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총알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추올은 실향민 캠프에 도착했을 때 무기력하게 앉아있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축 늘어져 있곤 했습니다. 추올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때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세이브더칠드런이 마련한 아동친화공간에 다니면서부터입니다. 추올은 이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실컷 축구를 하고 나무 그늘에서 함께 숨을 고르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공을 차는 동안 추올은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저 한 아이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놀이하는 아이들에게는 되돌이킬 수 없는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바로 그 순간을 온전히 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때문에 중남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페루의 작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은 그의 시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이다’에서 아이들의 현재성에 주목했습니다. (생략) 아이들에게 “내일!”이라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이다. 놀 권리 회복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우리나라 아이들 3명 중 1명은 ‘놀 시간이 부족해 고민’이고 절반이 넘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시간이 나도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실컷, 맘껏 놀면서 ‘오늘’을 풍성하게 살 수 있도록 놀 권리 회복 프로젝트 '놀이터를 지켜라'를 시작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놀이터를 고치고 농어촌에서는 방과후 놀이공간을 만들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놀 권리가 정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 역시 ‘오늘’이 될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의 ‘놀이터를 지켜라’에 함께해주세요. 글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__ 관련글 __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키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