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어요” 로힝야 난민 캠프에 가다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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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호 현장은 밀물과 썰물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분쟁과 재난이 발생하면 전 세계의 관심과 지원의 손길이 몰려듭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기억은 옅어집니다. 벌써 5년, 미얀마군의 박해를 피해 탈출한 로힝야 난민이 캠프에 갇혀 지낸 시간입니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그곳을 직접 찾았습니다.
난민 캠프의 교육 시설을 나서는 순간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선물을 건넵니다. 정성껏 그린 그림입니다. 알록달록한 교실, 책가방 멘 학생, 햇빛을 머금은 빨간 꽃. 아이의 그림에는 꼭 제 눈 같은 맑은 것만 담겼습니다. 가파른 낭떠러지에 다닥다닥 붙어 방음조차 안 되는 대나무 집, 비가 오면 가축의 분변과 쓰레기가 나뒹구는 하수구 악취는 현실에만 남아있었죠. 불투명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위험천만한 바닷길로 탈출하거나, 형편이 나은 집으로 어린 딸들을 결혼시켜보지만, 국적도 시민권도 없는 로힝야 난민의 삶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높은 밀집도로 화재 사고가 빈번한 난민 캠프
로힝야 난민이 가질 수 없는 한 가지
3년 만에 로힝야 난민 캠프를 다시 찾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도시 전반에서 정돈된 인상을 받았습니다. 캠프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어느새 포장이 완료됐고 이동 시간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난민 캠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난민 캠프를 방문하고 시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좌판을 펼쳐놓고 거래하던 시장은 이제 지붕이 있는 단층 건물 안에 자리잡았습니다. 언뜻 보면 난민 캠프가 아닌 시골 마을 같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가 이런 풍경이었겠죠. 사람이 사는 정취가 느껴집니다. 손바닥만 한 땅에 씨앗을 심어 채소를 내다 팔면 아이들 먹일 간식을 살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돈을 모은 사람도 생겨납니다. 어쩌면, 이곳에도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현지 관계자들이 고개를 젓습니다. 로힝야 난민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단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국적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박해를 받은 이들은 세상에 기록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실 난민 캠프와 방글라데시 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낮은 울타리와 지키는 사람 없는 문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서류 하나 없는 로힝야 난민들에게 난민 캠프의 장벽은 높아만 보입니다.
여성 청소년을 위한 교육 공간
인도적지원 현장을 ‘YES 키즈존’으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매년 난민 캠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로힝야 아동은 약 3만명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집안에 있거나 유모차를 탈 법한 걸음마를 뗀 아기들이 흙바닥에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른이 살기에도 녹록지 않은 환경이지만, 세이브더칠드런은 인도적지원 현장을 ‘YES 키즈존’으로 만드는 전문가입니다.
수많은 구호단체의 깃발 속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권리를 바탕으로 교육과 보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식량배급소, 공용세면장, 기초보건센터 까지 아동의 대기 공간은 적절한지, 해로운 환경은 아닌지 철저한 기준에 따라 운영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수년간 인도적지원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활동가도 ‘교과서에서 본 듯한 환경이 현실에 펼쳐진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교육센터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아동
기초보건센터에서 진료를 받는 아동
촘촘한 그물망으로 아동을 지키다
세이브더칠드런 혼자 한 일은 아닙니다. 구호단체가 출입하지 못하는 밤에도 아동과 여성의 안전을 지키려면 현지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마을 촌장, 종교 지도자, 부모 등 로힝야 사회의 인정을 받은 구성원을 아동보호위원회로 구성한 이유입니다. 누구보다 마을의 사정을 가장 잘 알면서, 아동을 지키는 일에 시간을 들여 참여해주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직접 만난 로힝야 난민은 구호단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내 아이가 살기 좋은 미래’를 바라는 우리와 같은 이웃이었습니다. 아동보호위원회는 아동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세이브더칠드런에 도움을 요청하고, 세이브더칠드런은 전문성을 발휘해 최적의 지원을 제공합니다. 지역사회와 세이브더칠드런의 촘촘한 그물망 덕분에 도움이 필요한 로힝야 아동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탁가정으로 아동을 돌보는 파잘, 라지아(가명)씨 부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
따뜻한 마음으로 로힝야 난민을 받아들인 작은 해안 마을은 5년째 지속된 난민 사태와 코로나 19발 경제 위기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고 갈등을 예방할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이 난민 캠프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몇 년 전까지 난민에게 배급되는 식량은 쌀, 콩, 식용유에 불과했습니다. 현재는 채소, 과일, 육류 등 42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그 배경에는 현지 지역사회가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현지에서 식자재를 조달해 주변 지역의 경제 활동을 돕고 난민 가정에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합니다. 또한, 난민 캠프에 세운 기초보건센터를 로힝야 난민과 방글라데시 주민 모두에게 개방합니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했던 현지 지역사회도 응급실, 산부인과, 외과 등 향상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식량배급소를 살펴보는 직원
기초보건센터의 분만실을 둘러보는 직원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방글라데시 지역사회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교가 끝난 뒤에도 아동이 마음껏 뛰어놀도록 새로 지은 아동·청소년 다목적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본인을 아동클럽의 회장이라고 당당히 소개한 마리아(가명)는 조혼 방지 캠페인을 준비했던 경험을 반짝이는 눈으로 전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길에서 물건을 팔던 카말(가명)의 가정에는 생계 안정을 위한 창업 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카말의 어머니가 솜씨 좋게 튀겨낸 방글라데시 디저트 뿌리(puri)를 먹으니 장사가 잘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인터뷰 내내 바른 자세로 경청하는 명민한 아이를 보니 지원금의 절반을 학비에 썼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절로 이해가 됐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인 로힝야 난민 사태. 난민과 수용 국가 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외면할 수 없는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만난 아이들이 언젠가 지역사회를 돕는 어른으로 성장하리라는 겁니다. 세이브더칠드런 후원자님께 받은 도움을 마음 한편에 품고 말이죠. 그 씨앗을 함께 심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조혼 방지 캠페인을 소개하는 마리아
생계 지원을 받은 카말의 가족
새롭게 건축중인 아동·청소년 다목적센터
현장의 목소리
인도적지원 이승현 담당자
Q. 세이브더칠드런의 인도적지원이 특별한 이유는?
세계 최초의 아동권리 NGO로서 활동 전반에서 철저히 아동권리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생명과 직결된 식량, 식수, 의료, 주거지에 대한 긴급구호뿐만 아니라 재난 현장 속에서 아동에게 더욱 필요한 보호 활동과 교육까지 아동을 중심으로 한 최고 수준의 인도적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현지 지역사회에서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을 위해 해가 질 때까지 활동하는 유일한 기관이다"라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Q. 긴급구호와 인도적지원은 어떻게 다른가요?
인도주의적 위기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 상황이 발생해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것을 뜻합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의도치 않은 분쟁과 재난으로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험할 수 있죠.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72시간 내에 긴급구호를 시작합니다. 이후 피해 지역을 복구하고 더 큰 재난을 예방하는 과정까지 모두 포함해 인도적지원이라 부릅니다. 로힝야 난민 사태는 복잡한 요인이 얽혀있는 만큼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로힝야 난민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인도적 관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Q. 앞으로 로힝야 난민을 어떻게 지원하나요?
세이브더칠드런은 로힝야 난민 아동이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을 누리며 성장할 수 있도록 통합적 인도적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 조혼, 학대, 방임, 보호자 부재 등 심각한 위험에 처한 아동 250명을 사례관리할 계획입니다. 또한 방글라데시 지역사회에 아동·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추가 설치해 2600명을 보호하고, 이 중 취약한 아동 600명을 추가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로힝야 난민 아동이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지 직원과 사업 개선점을 논의하는 인도적지원 이승현 담당자
커뮤니케이션부문 신지은
사진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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