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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개발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가끔 지인들이 자녀에게 개발도상국 아이와 일대일 해외결연을 맺게 해주고 싶다며 방법을 문의해오곤 한다. 왜 자녀에게 해외결연을 권하는지 이유를 물으면 의외로 이런 대답이 꽤 많다. “우리 아이가 자신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운 좋게 태어났는지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일깨워주고 싶다.”
한번은 개발도상국의 5살 미만 영유아가 예방하기 쉬운 질병으로 얼마나 어처구니없게 목숨을 잃는지 설명하는 거리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한 여성이 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와 내가 건넨 전단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봐, 여기는 이렇게 아이들이 죽잖아. 그런데 너는 이렇게 편하게 살고 부족한 거 하나 없는데 공부를 안 해? 부끄럽지 않아?”
자녀가 매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갖길 바라는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의 곤경을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와 행복의 근거로 삼는 일부 시선을 느낄 때면, 내가 하는 일이 뜻하지 않게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데에 기여하고 있지는 않나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다’는 자부심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늘었다. 10여년간 구호개발단체와 미디어는 모금홍보방송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데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단체들과 미디어가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을 국내에 전달하면서 맥락을 지운 채 부분적 사실만 부풀렸을 때, 하나에 불과한 이야기를 유일한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을 때,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구호개발단체들의 모임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는 모금, 홍보의 목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아이를 다룬 보도제작물을 만들면서 간혹 발생하는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가이드라인 제작 과정에서 수집한 부적절한 촬영 사례는 급박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종종 어떤 현실 왜곡이 이뤄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모금방송을 위해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를 촬영하러 간 제작진은 아이가 자신이 가진 가장 예쁜 옷을 성의껏 차려입고 나타나자 방송 내용과 맞지 않는다며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요구했다. 에티오피아 시골마을의 식수난을 촬영하러 간 한 방송사는 적절한 ‘그림’이 나오지 않자 가축이 이용하는 작은 연못에 아이를 데려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시도했다. 피부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를 촬영하면서 붕대를 풀라고 요구한 미디어도 있다.
가난을 ‘볼거리’로 만드는 이러한 일부의 관행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을 유포할 뿐 아니라 그들이 계속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수동적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고착시킨다. 때로는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에 대한 낙인,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빈곤, 인도적 위기 등 다양한 상황별로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 기준을 정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그간의 관행이 한번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체들 내부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스스로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개발도상국에 대한 관심과 나눔을 통해 우리 자신은 무엇을 배웠나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나눔의 실천이 공감의 상상력을 키우기보다 비교우위에 선 사람의 시혜적 동정에 머물러서는 안 되지 않을까.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