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글에서 네팔의 분쟁영향 지역 아동을 위한 저희 세이브더칠드런의 활약상을 자랑스럽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2010년 새로운 사업지역을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빰빠라빰! 하지만 2009년 사업지역이었던 바그룽 (Baglung)의 달링 (Darling) 지역과 데비스탄 (Devisthan) 지역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학생들의 출석률 체크하고 교사 및 지역주민 대상 워크샵 등을 통해 장기적인 역량강화를 진행할 예정이니, 그동안 제 글을 통해 이 지역에 애정을 갖게 되신 분들은 너무 슬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사업지로 선정된 쿵가 (Kungha) 지역과 보방 (Bobang) 지역은 2009년 사업지역보다 더욱 접근성이 낮은 곳입니다. 바그룽 중심에서 가장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 두 지역은 예전에는 전혀 길이 없어 당나귀조차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길이 생기는 덕분에 이제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차량과 당나귀가 간신히 다닐 수 있게 되었지요.
사진/쿵가 마을로 들어가는 새로 생긴 길을 따라 당나귀와 사이좋게 가는 우리 차량
이렇게 최대한 차을 타고 들어가다가 길이 없어지는 순간에 차에서 내려 걸어갑니다. 물론 산을 오르는 것이죠. 사실 저는 쿵가의 디팍 (Dipak)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날 몸살 기운이 있었답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 중간에서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었지만, 지역주민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 제가 약속을 어길 수는 없는지라 후덜거리는 다리를 끌고 산을 올랐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 중간에 쉬기를 여러번 보통 다섯시간 걸린다는 거리를 여섯시간 반 동안 올라갔지요. 그렇게 도착한 디팍 초등학교는 거의 축제분위기였습니다. 학교가 설립된 지난 43년동안 교육청은 고사하고, 그 어떤 외부인사도 학교를 한번도 찾은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접근성이 낮고, 볼품없는 가난한 마을의 학교에 외국인이 찾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마을 주민들까지 구경을 왔을 정도니까요.
사진/디팍 초등학교에 모인 지역주민들과 학생들
특히 제 눈길을 끈 것은 초등학교 신입생으로 보이는 아주 작고 어린 아동들과, 초등학생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십대 중후반의 여아들이었습니다.
분쟁의 영향을 받고 생활이 어려운 산간지역의 네팔어린이들은 취학연령이 되어도 다양한 이유 때문에 입학을 하지 않기 십상입니다. 집에서 방치되어 지적 발달의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늦게나마 입학하면 수업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지요. 그런 아동들을 학교로 불러들이는 것이 저희 사업의 첫 번째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동들이 주축이 된 아동클럽이 각 가정을 방문하여 학부모들에게 취학연령의 자녀를 입학시킬 것을 부탁합니다. 이 때 집에서 손가락을 빨던 아동들은 교복을 입고 가정방문을 한 언니,오빠,형,누나의 듬직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입학 후에도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생들의 중퇴율은 11%가 넘습니다. 학비는 무료지만, 교복이나 학용품을 준비하지 못해 학교를 못보내는 가정이 대부분인 마을을 위해 저희는 신입생들에게 교복과 학용품을 무료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바로 제가 도착한 그 날이 신입생들이 학교에 입학한지 몇일되지 않아 학용품을 전달받는, 그런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십대 중후반의 큰 어린이들은 작년 저희가 이웃지역에서 지원했던 만학도와 중퇴학생을 위한 대안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이 학교에 정규학생으로 재입학하게 된 친구들이었습니다. 작년 사업의 결실이 올해 사업의 성공적인 시작과 이렇게 연결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진/꼬꼬마 어린이부터 중학생 나이의 여학생까지 모두 디팍 초등학교 학생들!
그런데 저는 사실 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지만, 학용품 세트를 나눠주는 임무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나눠주는 선물은 종종 지역주민들을 더 작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손사래를 쳤지만, 학교관리위원회와 마을 주민들은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으로 학용품을 나눠줄 수 있게 된 것이니 제가 이를 전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셨습니다.
학용품을 받으려고 줄을 서있던 키작은 어린이들이 차례로 제 앞에 왔는데 영 겁을 먹은 눈치였습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처음 학교에 온 것도 긴장되는 일인데, 이렇게 덩치가 걸리버처럼 큰 외국인이 자신들을 내려다보며 학용품을 주는 것이 그다지 편치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당장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로 했습니다. 한 명 한 명에게 학용품을 전달하면서 어눌한 네팔어로, 하지만 진심을 담아,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메헤낫 가레라 람라리 빧누스 하이” (공부 열심히 해야돼.) 대부분의 아이들은 빨리 선물을 받고 불편한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그 중 몇 명은 제가 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제 눈을 똑똑히 바라보고 대답했습니다. “하주르” (예).
사진/교장선생님이 빨간 티카를 찍어서 축복해주고, 저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학용품을 전달했어요
교실로 들어가 지역주민들과 면담을 했습니다. 아동이 어디에서나 보호받고, 학교에서는 즐겁게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쿵가 마을을 만들기 위해 1년동안 모두가 열심히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학교에 꼭 보내고, 종종 학교의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참여하며, 교사들은 저희가 지원하는 워크샵과 훈련에 참가하여 아동친화적이고 비폭력적인 교수법을 배우고 사용하며, 아동들은 학교를 빠지지 않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참여하고, 아동클럽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키는 어린민주시민으로 자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좁은 교실을 가득 메운 마을 주민들
디팍 초등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팔라서 네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하지만 “하주르”라고 대답한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떠올리자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잠시 집중력을 잃었는지 발을 헛디디고 말았습니다. 산에서 굴러 떨어지던 그 순간, 제 머리속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죽지는 않았지요.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외상이 심했지만,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답니다. 가난한 마을에는 병원도 없는지라 마을의 유일한 약국에서 준 빨간약 (“아까징끼” 같은)을 바르고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다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정말 아프기도 했지만,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길을 가다 넘어져서, 정말 큰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듯 꺼이꺼이 우는 어린아이마냥 저도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사진/양 쪽 다리와 양 팔이 모두 다쳤어요
현장 속 이야기를 통해 저는 늘 여러분께 희망차고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개인적인 사고소식까지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4000 km 넘어 있는 한국에도, 제 얘기를 귀 귀울여 들어주고,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치하지만, 여러분으로부터 “Garu씨, 화이팅”을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에서 국제개발학을 공부할 때, 종군기자 클럽에 종종 갈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릎쓰면서 계속 전쟁의 중심에서 기사를 쓸 수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제 아버지뻘 되시는 한 기자 아저씨가 이라크 전 때 입은 부상을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찾을 진실이 당장 나 한 사람의 목숨보다 위대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 기자 아저씨의 총알 부상만큼 드라마틱 하지는 못해도, 저도 앞으로는 제 다리에 깊게 난 상처를 보면서, 베테랑 국제아동구호가로써의 훈장을 달았다고 자랑스레 생각하렵니다. 제가 방문하는 학교와 마을마다, 제가 눈을 마주치는 어린이 한명 한명마다 여러분의 관심과 진심이 전해질 수 있게 계속 노력할께요.
# 필자 김윤정의 책, 반나야 학교가자! 소개
Garu와 히말라야 아이들의 글을 멀리 네팔에서 보내주고 있는 김윤정씨가 “반나야, 학교가자!” 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네팔 파견 전 캄보디아에서 근무하며 경험했던 이야기 중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웹페이지에 올리지 않았던 다양한 이야기는 물론, 이름마저 생소한 “아동구호 활동가”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담겨져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과 국제개발 및 구호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으신 분,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을 꿈꾸는 분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탈근대 시대정신을 소유한 필자는 전 지구를 누비는 21세기형 개척자다. 한 젊은이의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열정을 담은 이 책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수많은 다른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고 그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 서창록
이 책은 개발학 입문에서 현장까지 단계별로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피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부딪히면서 느낀 일들을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사업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이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도영아 (KOICA 네팔 사무소장)
굶어 죽어가는 소말리아 아이의 사진을 들이대면서 독자에게 뭔가 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다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에서 오는 행복함, 그 휴머니즘에서 오는 인생의 잔잔한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길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10~11쪽)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분야든 관련 단체에 직접 뛰어들기 전까진 그저 관심 있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일주일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단체에 찾아가 일을 하다 보면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 그 분야에서 이름난 활동가나 전문가를 만날 기회가 자주 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막연했던 생각이 구체적인 목표로 바뀐다.(중략)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쌓는 인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대학 선배나 동아리 친구들로부터 얻는 정보와 격려와는 또 다른, 나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로부터 실질적인 지원과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NGO 분야도 좁은 세상이라 몇몇 사람들을 알게 되면 주변 사람들까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23쪽)
국제구호와 개발 내의 분야는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의료사업에는 전직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이 교육사업에는 교사, 교육, 공무원, 아동심리학 또는 발달 전문가 등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데 보통은 의료사업이나 교육사업의 코디네이터, 매니저, 어드바이저(고문)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반면에 ‘제너럴리스트’는 교육, 의료, 지역 개발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코디네이터나 매니저, 팀장 등으로 활동하며 사업계획, 시행평가, 보고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인류학, 사회학, 국제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근무지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46쪽)
기본적으로 이 분야가 ‘인도주의적’ 분야라고 해서 인도주의적으로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지는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만으로 취업이 되는 직업이라면 국제개발 및 구호는 모두 현지인을 채용해야 할 것이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물론이고 지역 문화와 언어를 그들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원하는 인재는 외국인으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현지인들이 갖고 있지 못한 특정 기술이나 경험을 갖고 있는, 그래서 그것을 현지인들과 함께 키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57~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