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 이야기 01]

8년 넘게 세이브더칠드런의 현장을 누빈 사진가

세상을 본다는 것, 

인간을 만난다는 것 

"‘아, 이것이 자존감이구나’, 정말 ‘인간으로서의 품위구나’, 느꼈어요. 

사실 도와주러 간다기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하러 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008년부터 8년 넘게 세이브더칠드런과 아프리카의 말리(모자뜨기 캠페인), 니제르(아프리카에 빨간염소 보내기 캠페인), 잠비아(모자뜨기 캠페인), 코트디부아르(스쿨미 캠페인), 방글라데시(소녀들의 꿈, 백만 개의 별 캠페인) 현장을 같이 다니며 그것을 기록한 사진가가 있습니다. 이런 구호현장 외에도 서울역 거리의 아이들을 시작으로 요양원 사람들, 농민, 철거민, 유럽의 집시, 해고 노동자, 중앙아시아의 이주민, 시골의 할머니들을 만나며 다양한 세상을 보았고, 그것을 카메라 파인더에 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든 사진집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고려인』 ,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  『집시 바람새 바람꽃』은 우리 시대와 삶의 기록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인권위와 『눈 밖에 나다』,『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등의 사진책을 만들면서 한금선 사진가는 늘 현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사진은 세상을 기록하는 동시에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한 한금선 사진가가 어떤 눈으로 현장을 보았는지, 어떤 만남을 가졌는지, 그곳의 흙과 바람, 사람들의 눈빛,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사실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오래 작업해오셨습니다. 어떻게 세이브더칠드런과 만나게 됐나요? 

2008년 12월에 아프리카 말리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작가 김용택 선생님과 동행해 사진작업을 하면서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프랑스어가 가능하고, 시간을 내어 함께할 수 있는 사진가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는 지역이 프랑스어를 쓰는 아프리카였고, 마침 제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 인연이 닿은 거예요. 사실 사진가들이 많이들 아프리카나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요. 저도 삶의 현장을 또 하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이한다는 데 망설임이 없었어요. 그 후 니제르 염소보내기, 잠비아 모자뜨기, 코트디부아르 스쿨미 캠페인에 합류해 여러 차례 같이 갔고, 은화어린이집 등 국내 현장에 간 적도 있어요. 

아프리카로 떠난 첫 작업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아프리카 말리에 모자뜨기 캠페인으로 처음 갔을 때였는데, 마을 대표님이 첫 대면에서 하신 얘기가 기억에 남아요. “너희가 온 그곳은 지금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라고 들었다.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도움을 주러 왔다니 잘 수행하고 가도록 하라. 우리도 최선을 다해 우리의 아이들과 여자들을 위해 힘쓰겠노라.” 

그 말을 듣고 ‘아, 이것이 자존감이구나‘, 정말 인간으로서의 품위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도와주러 간다기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하러 간 거라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작업과 재능기부 작업은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두 작업이 비슷해요. 사진의 주제도 일관되지요.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가의 결과물 속에서 NGO가 필요한 사진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식이에요. 또한 세이브더칠드런은 너무 비참하거나, 아동이 자신도 모른 채 찍힌 사진 등을 피하는 엄격한 사진촬영과 게재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저 역시 그런 원칙에 동의해요. 재능기부는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자 사진 작업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에요. 이제껏 사진가로서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제대로 참여한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고, 지금도 고민중입니다. 잘 안 될 때가 많아요(웃음).

아프리카 현장에 도착하면 어떻게 일이 진행되나요?

나라마다, 사업장마다 조금 다르지만, 공항에서 픽업되면 모두 일정표에 맞게 움직이고, 현지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이 동행해요. 몇 달 전에 간 코트디부아르의 경우,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안교육도 받았어요. 사업장에서 떨어진 도시의 호텔에서 묵는 경우도 많고, 지역간 이동거리도 상당하죠. 사업장에서 케이스(사례) 가족이나 아동을 만나는 일도 꽤 자주 있어요. 공식 통역이 있기도 하고, 직접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죠. 

현장에서 주민이나 아이들과 접하는 시간이 한정적인데요. 이미지 포착은 사실 직관적으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시간의 의미는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1년을 찾아가도 사진으로 담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한 번을 가도 작업이 잘되는 경우도 있어요. 시간이 흐른다고 알게 되는 것이, 마음의 문이 열려 접근하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말리와 니제르 출장 때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열흘 더 남아 있었던 적도 있어요. 팀과 같이 움직이며 작업하는 것, 혼자 천천히 곱씹으며 작업하는 것이 다른 의미를 가지죠. 이건 사실 ‘복습’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출장 때는 바로 인터뷰를 위해 A장소로 이동해서 진행한다면, 혼자 남게 될 때는 카메라를 들지 않고 그냥 슬슬 마을로 산책을 다니기도 해요. 사진이란 것이 특별히 시간을 들여 친해져야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촬영하면서 마음이 오가게 되면 친해지는 건 그 결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강의와 작업으로 다큐멘터리 후배들이 많으신데, NGO와의 일이나 사진작업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사실 ‘경험’은 사진가에게는 큰 재산이에요. ‘어딘가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찍고 싶다’는 마음은 사진가에게 중요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NGO와의 작업도 권유하는 편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NGO에서의 사진 사용방식에 대해선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아프리카에 다녀와 사진전을 한 번 하면 큰 비용이 드는데, 그만큼 후원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무엇을 전달할지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사진가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이어가야 하고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산다는 건 어떤가요. 행복하신가요? 

행복하다기보다는, 저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최선에서 얻어진 것이 행복이라면, 감사는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후회보다는 긍정의 쪽에 부등호가 주어질 때 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걸 좋아합니다.

앞으로의 사진작업 계획은 어떤지요? 

요즘엔 10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농촌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을도 척박해지고 어르신들도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가끔은 과연 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어요. 작업의 방향을 잃고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는 상태지요.

거리나 요양원, 힘든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인간의 ‘희노애락’이에요. 그것을 느낄 수 있고, 담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진은 그냥 한 번 보고 그만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진은 볼 때마다 중첩되는 의미, 변화되는 의미가 있어요. 볼 때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경험이지요. 그리고 이제 작은 도시를 만나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종종 펼쳐보고, 요즘엔 조지 오웰의 책을 곁에 두고 지낸다는 한금선 사진가의 작업실에는 무거운 장정의 사진집, 사진관련 책, 예전의 사회과학 책과 문학, 인문서가 여기저기 빼곡했습니다. 

‘거리로 나가라. 그리고 인간을 찍으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진가들이 거리로 나가 난민촌과 빈곤의 현장, 열정의 거리, 미로 같은 마을과 응시하는 눈빛 하나만으로 시간을 잊게 하는 빛나는 사진들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지금도 묵묵히 담고 있는 한 사진가의 책과 전시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글 이선희(후원관리부)        사진 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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