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인 케빈(Kevin)은 재능 있는 예술가입니다. 케빈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축구 하는 것과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케빈이 살고 있는 코트디부아르는 덥고 습하지만, 서아프리카의 넓고 푸른 초원이 있고 전세계 대부분의 카카오가 자라는 곳입니다. 케빈은 커서 코트디부아르의 대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지난 11월, 두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습니다. 두 후보는 서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다가, 결국에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며 폭력을 행사했고, 케빈과 같은 아동의 삶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4개월 전, 케빈은 집이었던 코트디부아르 서부 디우루존(Diourouzon)을 떠나야 했습니다. 케빈은 어머니와 여동생, 두 형제와 함께 마을을 공격한 다른 마을 남자들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을 습격한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케빈은 1월부터 현재까지, 듀쿠에(Duekoué) 라는 지역에 카톨릭 교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케빈의 가족처럼 안전한 곳을 찾아 마을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임시거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케빈은 그곳에 모인 1만 5,000명이 넘는 아동 중 하나입니다. 아래는 케빈이 세이브더칠드런과 나눈 대화입니다. 케빈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생활과, 마을을 떠날 때의 상황, 그리고 아동이 난민캠프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축구를 했어요. 저에게는 축구를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마을에 가서 친선경기를 하기도 했지요. 저는 축구가 좋아요. 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하고요.
저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 학교 벽을 꾸미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그림 그리기를 배웠어요. 저는 한번도 미술 공부를 해본 적은 없지만, 수업시간에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저는 어른들과 함께 미술대회에 출전했는데, 4등을 했어요. 저는 사람을 그리는 게 좋아요.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죠. 할 일이 없으면 언제나 공책을 꺼내서 사람을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가 작은 실수를 해도, 지우개가 있으니 괜찮아요.
사진/ 코트디부아르 서부 듀쿠에(Duékoué)의 피난캠프에서, 케빈(Kevin, 14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케빈과 가족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집을 떠나야만 했고 현재는 교회에 마련된 임시처소에서 살고 있다.
케빈과 가족은 집을 비롯해, 옷과 모든 소지품을 잃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케빈은 집에서 살며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저는 제 또래친구 모두와 같은 반이었어요. 이웃 집 친구들이 모두 같은 반이었지요. 우리는 절대 친구들을 떠나지 않았어요. 모든 학년이 다 함께 진급했어요.
피난길
케빈이 살던 마을이 공격 당했을 때, 케빈은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야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칼루(Kalou)씨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그 분은 3학년 때 선생님이셨고, 제 이웃사촌이에요. 그 때 밖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상점은 모두 텅 비어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저를 찾아서 선생님 댁으로 오셨어요.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은 이웃집을 습격하고 물건을 훔쳐갔어요. 다음날이 되자 그 사람들은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모든 이웃집이 텅 비었고, 그 사람들은 집에 불을 질렀어요. 저희 집도 불에 타버렸어요. 그래서 엄마는 우리가 피난을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걸어가는 도중에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뒤쳐지셨거든요.
성당에 도착했을 때 저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렸어요. 엄마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아주 멀리 있었어요. 남동생을 업고 걸어오셔야 했기 때문이죠. 엄마 뒤에도 사람들이 많았어요. 거의 다 오셨을 때쯤, 무장한 한 남자가 앞길을 막아 섰어요.
그 순간 저와 부모님 모두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 피난처에 도착했어요.
케빈은 사람들이 총을 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몹시 무서웠던 그 순간을 설명했습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골라 죽이지 않잖아요. 그 총이 유탄일 수도 있고, 혹은 총을 든 자가 우리 모두를 길목에 세워두고 죽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운 좋게도 저희는 살아 남았어요.
케빈은 가족이 남동생을 잃어버렸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피난을 떠날 때 동생은 부모님이 어디 있는 지 몰랐고, 어디를 가야 하는 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이틀 뒤, 우리는 동생을 찾았어요.
빈 손으로 도망치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옷이 없었어요. 모든 것이 다 이웃집에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집에 불을 질러 다 타버렸거든요. 그 사람들은 좋은 옷들은 골라서 서로 나눠 가져갔어요. 엄마 옷도 훔치고 집을 태웠어요.
우리가 여기 왔을 때에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돗자리 두 개가 있지만, 이곳까지 내내 맨발로 걸어왔어요. 신발조차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이 상의 한 벌뿐이에요. 그나마도 찢어진 상태지요. 이 곳에서 만난 친구가 상의 몇 장과 운동화 몇 켤레를 주었고, 저희 형이 도착해서 운동화 값을 치뤘어요.
피난 4개월 째
케빈이 고향과 친구들에게서 멀리 떠나와 이 곳에서 산지 4개월이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는 그림을 그리며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일이 생각나요. 전쟁이 나서 저와 부모님은 성당에 오게 되었지만, 친구들과는 모두 헤어졌어요. 그림을 매우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림을 매우 잘 그렸어요. 저는 그 친구가 떠오를 때마다 그림을 그려요. 그래서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사진/ 코트디부아르 서부 듀쿠에(Duékoué)의 피난캠프에서, 케빈(Kevin, 14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케빈과 가족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집을 떠나야만 했다.
또 다른 변화는 이제부터 케빈은 성당 밖에서 살아야 하고 학교도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케빈은 부모님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말씀을 기억하며 자신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별 대단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학교에 가고 싶고,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요. 저는 대사가 되고 싶습니다. 프랑스의 코트디부아르 대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저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학교를 갔다가 총격전 때문에 돌아오는 때가 종종 있어요. 제가 가려고 하는 학교는 이곳에서 멀지 않아요. 한번은 그 곳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총격전이 벌어졌어요.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어 우리는 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다른 도시에 사는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데 우리는 학교를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파요. 우리가 뒤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상하고요. 2002년에도 저는 학교를 1년 동안 가지 못했어요. 2005년도에도 거의 1년이나 쉬었고요. 이런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학교를 찾아준다면 가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잠은 어디서 자야 하나요? 이곳 성당에서 등•하교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학교 근처에 제가 묵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이곳에 있던 집은 모두 타버렸지만, 학교를 가기 위해서 성당을 떠날 수는 없어요.
부족한 식량과 물, 그리고 병에 걸린 사람들
성당에서 목욕을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물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해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저는 오랫동안 씻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이나마 씻을 수 있어요.
또 다른 문제는 질병이죠. 식사하는 곳 바로 옆에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있으면 파리가 날아다니거나 음식 위에 앉아요. 파리는 질병을 옮기죠. 한번은 저도 아픈 적이 있었어요. 귀가 감염되어서 부어 올랐고, 매우 아팠어요. 남동생과 어머니는 배탈이 났었어요. 이것이 다 사방에 널려있는 쓰레기며 모기, 파리 때문이에요.
식량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쌀밥을 먹어요. 하지만 어떤 날에는 배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지난 번에 어머니가 밥을 배급 받지 못해 이모가 받은 밥을 나눠먹었어요. 쌀을 받기 위해서 매우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죠.
사진/ 코트디부아르 서부 듀쿠에(Duekoué) 피난캠프에 있는 아동
잘 곳 없는 생활
밤이 되면 잘 곳을 구하는 것도 매우 어려워요, 잠을 자려면 5시까지 잘 곳을 찾아야하죠. 그렇지 않으면 잘 곳이 없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거나, 피난캠프 반대 편까지 가야 해요. 비가 오면 아무도 잘 수 없어요. 덮을 것이 없거든요. 사람들은 바닥에서 잘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바닥을 닦아야지 비닐바닥을 깔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해요.
케빈에게 필요한 것
저에게는 옷과 신발, 음식이 필요해요. 비가 오면 신발이 없기 때문에 걸어 다닐 수 없어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걸어 다니면 병이 날 수 있어요. 우리는 옷, 음식, 신발… 그리고 학용품도 필요해요. 저에게 학용품을 생긴다면 저는 학교에 갈 수 있어요. 또 집이 있다면 학교에 갈 수 있죠. 학교에 가려면 교과서와 공책, 펜, 자가 필요해요. 이 모든 것들이 다 불에 타버렸어요. 이곳에 올 때 삼촌은 저에게 공책 3권을 주시며 학교에 갈 때 쓰라고 하셨어요.
이는 매우 부당한 일이에요. 어린이에게는 집과 학교가 필요해요. 하지만 학교를 가기 위해 교회를 떠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먹고 자는 곳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병에 걸려요. 이곳에서 자기는 매우 힘들어요. 다시 우리 집이 생겨서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이미 불탔고, 다시 지으려면 몇 년이 걸리겠지요. 우리는 집이 없어서 이곳에 있어요. 우리는 다시 살던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집을 지을 수만 있다면 마을로 다시 돌아갈 거에요.
사진/ 케빈(Kevin, 14세)이 공책에 그린 자신의 그림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있다.
케빈과 가족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집을 떠나야만 했고
현재는 성당에 마련된 임시처소에서 살고 있다. 케빈과 가족은 집을 비롯해,
옷과 모든 소지품을 잃었다.
여러분이 도울 수 있는 방법
세이브더칠드런은 현재 코트디부아르 현장에서 케빈과 같은 아동이 충분히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몸을 청결히 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동이 아플 때, 아동을 진찰하고 필요하다면 약을 먹을 수 있게 도와줄 인력 역시 충원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케빈과 같은 수천 명의 아동이 최대한 빨리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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