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수진(세이브더칠드런 해외파견단원)
통계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1,000명당 36명의 아이들이 5세 이전에 사망하며 이는 한국의과 비교했을 때 약 7배가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2010년 기준). 공산주의 국가의 가장 큰 특색은 의료와 교육이 무료라는 점인데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이후로 구소련에 속해있던 국가들의 국가 재정은 계속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때문에 공공 의료서비스의 질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빈부 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사설 병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다 수도인 타슈켄트(Tashkent), 그 중에서도 시내에 의료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건교육시설 개소 준비
따라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우즈베키스탄 보건부와 협력하여 기존에 있던 의료시설의 접근성과 이용률을 높이고 모자보건 역량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3, 4월에 걸쳐 방문하고 준비한 현장은 바로 이런 모자보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현지 보건소 의료진 대상 교육시설입니다. 저는 이 곳을 개•보수하여 교육시설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현지 종합병원에서는 저희에게 교육실로 사용할 공간을 제공하는 등 많은 협조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교육실을 보았을 때 저는 준비과정이 꽤 험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공산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물건을 사는데도 멀리 있는 큰 보조르(시장)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최근에 타슈켄트는 도시 재정비 사업 때문인지 많은 보조르를 철거하고 있습니다. 타슈켄트 내 가장 큰 전자상가였던 나보이 상가도 얼마 전 철거 되었답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현지인 직원도 쉽사리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 울타치르칙(UrtaChirchik) 지역 종합병원의 전경
저 건물 정문을 마주보고 오른쪽에 있는 창문이 바로 교육실입니다. 실내를 보면 바닥이 이미 리놀륨으로 깔려 있고 꽤 깨끗한 편이라 다른 우즈베키스탄 사업장인 유카리치르칙(Yukorichirchik)보다는 환경이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내부에 갖춰진 것은 정체 모를 긴 의자 하나뿐이었습니다.
여기에 약 25명의 의료진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모양새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임무였습니다. 또한 앞으로 이 교육실은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임산부도 올 예정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의자를 준비할 때도 거동이 쉽지 않은 임산부가 사용할 수 있는 의자를 찾아야 했고, 최고 섭씨 45도에서 최저 영하 30도까지 연간 기온차가 큰 우즈베키스탄의 날씨에 대비해 에어컨도 갖춰야 했습니다. 커튼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창문에 달 블라인드 역시 직접 창의 길이를 재서 사와야 했고 도난 방지를 위한 방범창도 새로 갖췄습니다.
사진/ 정체불명의 긴 의자를 빼고는 텅 비어 있던 울타치르칙(Ulrtachirchik) 교육실의 내부
사실 저렇게 울타치르칙(Ulrtachirchik) 교육시설을 방문한 이래로 물품 구매와 교육실 준비로 바쁘게 뛰어 다녔지만 두 번의 방문을 끝으로 다시 방문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드디어 다가온 개소식 날 교육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해 두근두근 떨렸습니다.
교육시설 개소 - 종합병원의 뜨거운 환영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교육 교재를 들고 교육시설 입구에 선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다니던 입구 통로에 직원들이 한복을 입고 세이브더칠드런을 환영해주셨거든요. 심지어 저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습니다.
사진/ 개소식을 위해 방문한 세이브더칠드런 회장과 직원, 우즈베키스탄 보건부장관
오늘 개소식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회장과 직원, 우즈베키스탄 보건부장관이 방문했습니다. 손님을 맞는 우즈베키스탄 종합병원 측의 마음 씀씀이와 세심한 준비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 울타치르칙(Ulrtachirchik) 종합병원 입구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간호사 분들과
우즈베키스탄 지부의 현지직원 엔베르
가장 오른쪽의 남자분은 저희 현지 직원인 운전기사 엔베르입니다. 운전기사라고는 하지만 그 역시도 교육시설 개소를 위해서 끊임없이 차를 운전하며 물품 구매를 도왔습니다. 또 직접 전등과 블라인드를 다는 등 주말도 없이 일한 헌신적인 직원입니다. 엔베르도 이 날을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오늘의 결실을 보고 굉장히 들뜨고 즐거워했습니다. Он счастлив сегодня!!!(그는 오늘 행복해요!!)
개소식이 끝난 이후에는 교육실에서 교육이 있습니다. 외빈들은 간단하게 다과 시간을 가질 예정이어서 종합병원 측에서는 아래 사진과 같이 다과상을 준비해주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손님을 초대해서 후하게 대접하는 것을 친교의 방법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진/ 종합병원에서 교육시설 개소를 축하하며 준비해준 다과상
화면의 가장 앞 쪽 그릇에 담겨 있는 정체불명의 갈색 액체는 수말락(sumalak)이라는 꿀과 조청의 중간쯤 되는 음식인데요 빵에다 발라 먹기도 하지만 숟가락으로 주로 떠먹는 음식입니다. 봄에 오랜 시간 동안 저어서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시장에서도 꽤 비싼 편에 듭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쪽으로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빵이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인 쌈싸(samsa)입니다. 타슈켄트에서 아침에 길을 걷다 보면 길 곳곳에서는 이 쌈싸를 구워서 파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가격은 400숨(soum)에서 1000숨까지로(한화로 200원에서 500원 정도) 상당히 저렴해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식사로 많이 먹습니다. 내용물은 주로 호박이나 감자, 고기가 들어가는데요 이 날은 특별한 손님을 위해 독특하게도 시금치에 약간의 향신료를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사진/ 개소식이 있던 날 종합병원 앞.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의상을 입고 주식인
리뾰쉬까(Lepyoshka)를 들고 있는 여성
이 역시도 우즈베키스탄 종합병원 측에서 준비를 한 리뾰쉬까(Lepyoshka)입니다. 이렇게 쌓아진 리뾰쉬까를 조금씩 잘라서 소스에 찍어먹음으로써 동료-혹은 협력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전통이 있는 듯 했습니다.
새 교육시설에서 시작한 보건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진/ 보건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실 내부와 외부 모습
위 사진은 저희가 직접 자로 재고 찾아 다니며 주문해 설치한 블라인드와 도난방지를 위한 방범창 및 에어컨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창만 덜렁 있을 때와는 달리 교육을 위해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무사히 개소식을 마치고 교육실에서는 드디어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울타치르칙 교육 시설을 준비하여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세 번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교육실 모든 책상 위에 준비한 교육 자료들을 올려놓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장면을 한 눈에 바라볼 때였습니다.
사진/ 교육 연수자에게 제공된 교육 자료들. 안에는 직접 만든 교재와 프로그램 일정표, 필기구가 들어 있다.
사진/ 교육 시작 전 완벽히 준비된 교육실 내부의 모습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교육실 앞쪽에는 커다란 화이트보드와 프로젝터 역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었던 이 곳이 이렇게 모든 장비를 다 갖추고 준비되어 있는 걸 보니 정말 그 동안 바쁘게 뛰어다닌 보람이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제 이 곳에서 의사, 간호사, 임산부들을 위한 교육이 꾸준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사진/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울타치르칙 교육실
두 번째로 뿌듯함을 느꼈을 때는 바로 교육이 진행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을 때입니다. 수업이 이미 시작된 터라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 어려웠는데 마침 현지 지역 신문에서 개소식을 취재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기자가 수업 중간에 사진을 찍을 때 저도 그 옆에서 사진을 살짝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기치하에 운전수나 선생님의 월급에도 별 차이가 없었던 이 곳에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에 매우 충실합니다. 한국이나 여타 선진국에서 의료진이 얻는 부와 명성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수를 받음에도 이 곳 의료진은 자신들의 직업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임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로 기뻤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아동과 통한 '전 지구적 감수성'
마지막으로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마음이 따뜻해졌던 순간은 종합병원을 시찰하는 사람들을 따라 동분서주할 때 일어났습니다. 워낙 통로가 좁고, 예방접종 기간이라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그 틈에 끼어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진료실 앞에서 어린 아동이 엄마 손을 잡고 다소 경직되고 어색한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아이는 백신을 맞으러 왔다가 정장차림을 한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정신 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듯 했습니다. 눈이 동그래져서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동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손짓으로 묻자 아동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세 장을 찍고서야 겨우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불편하게 하려고 사진을 찍겠다고 한 게 아닌데 사진 속의 아동은 차렷 자세로 바짝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래도 동그란 아동의 눈과 입가가 저를 향해 웃어주었습니다. 아동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너야'하고 말하자 아동은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뒤에 서 계시던 아동의 어머니는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천만에요'라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 '저야말로 고마웠어요'라고 꼭 말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약 20년 전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제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낯선 곳에 찾아갔는데 하필이면 그날 행사가 있어 높은 어른들이 왔고, 모든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바짝 긴장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런 사람들 틈에서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보건소에서 만난 이 아동에게서 저는 그 옛날 제 자신을 보면서 '전 지구적 감수성'을 느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에도 '참 소중한 순간이구나'라고 느꼈지만 나중에 사진을 한 장씩 정리하면서 그 아동의 사진을 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동의 사진을 찍던 순간, 사진을 보던 아동의 웃음, 어머니의 고맙다는 인사, 카메라에 남은 아동의 사진이 우즈베키스탄에 온 이래로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해외아동보건/영양지원
우즈베키스탄 아동들에게
사랑을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