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 아침 7시. 이른 토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공원 한얼광장에는 부산한 발걸음이 오갔습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200여 명이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하는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을 진행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추운 아침 날씨에 자원봉사자들은 손을 비벼가며 마라톤 대회의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화제는 바로 안전이었습니다. 어린 아동에서부터 성인 보호자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가 2,000명 이상 참여하는 대회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해가 점점 따스해져 올 무렵,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어린이가 하나 둘 한얼광장에 들어섰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어린이의 밝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습니다. 교육을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이제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하는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이 시작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 둘… 이봉주 선수와 함께하는 준비운동
가족 단위로, 학교 친구들과 참여한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무대 앞에 모였습니다. '뚝딱이 아빠' 김종석 씨가 진행을 맡아 무대에 오르자 유치부 아동부터 성인까지 온 가족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이어 뚝딱이 아빠의 소개로 참가자 한 명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바로 국민마라톤영웅 이봉주 선수였습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에는 국민마라톤영웅 이봉주 선수도 함께 참여해서
지구촌 5세 미만 영유아의 생존권을 위해 달리는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무대에 선 이봉주 선수는 마라톤에 참여함으로써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를 살리는 데 힘을 실을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마라톤 시작에 앞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절차, 몸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봉주 선수와 어린이 응원단의 구호에 맞춰 참가자들도 함께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마라톤 출발과 함께 얼굴엔 웃음꽃이!
간단한 맨손체조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드디어 마라톤 출발지점에 섰습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중등부부터 초등부, 유치부가 차례로 출발했습니다. 이봉주 선수 역시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선에 섰습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가한 유치부 아동과 보호자가
이봉주 선수와 함께 마라톤 경기를 시작하고 있다.
출발을 알리는 폭죽 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은 코스를 따라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마라톤 대회이기 때문에 이번 대회 코스는 총 4.2195km였습니다. 일반 마라톤 코스의 1/10에 해당하는 거리였지만 올림픽 공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거리였습니다. 선두 그룹이 지나간 길을 서두르지 않고 밟아가는 참가자들의 얼굴은 그날 하늘만큼이나 무척 맑았습니다.
사진/ 전 세계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하는 2011국제어린이마라톤 참가자들이
마라톤 코스를 따라 서울 올림픽공원 일대를 달리고 있다.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에서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뛰는 어린이도 많았습니다. 어린이들은 맑은 주말에 탁 트인 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달리게 된 것이 신나 가쁜 숨을 헉헉 몰아 쉬면서도 웃음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신난 사람은 어린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처럼 맑은 공기를 가르는 부모님들도 자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가한 부자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달리기, 그 이상의 달리기
사진/ 마라톤 코스를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어린이들
참가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참여한 가족, 친구를 부르는 들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날 마라톤은 단순한 여가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원인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을 막기 위한 실천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참가자가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면 후원사 KB국민은행을 통해 세이브더칠드런의 해외영양사업 후원금 2만원을 적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이 특별한 이유는 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4km가 조금 넘는 코스를 달리는 동안 참가자는 매 1km마다 체험 부스를 통과했습니다. 각 체험 부스는 5세 미만 영유아가 처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 참가자들이 마라톤 중 저체온 체험 부스를 지나면서
작은 온도 차가 만들어 내는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체험부스는 1km 지점에 마련된 저체온 체험 부스였습니다. 이곳에는 분무기가 설치되어 있어 첫 구간을 달려온 참가자들이 몸을 식혔습니다. 참가자들은 물방울을 피해 옹송그리며 부스를 지나가는 동안 작은 온도 차가 만들어 내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C. 신생아가 털모자를 썼을 때 얻는 보온 효과입니다. 작아 보일 수 있는 이 차이가 신생아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신생아가 엄마의 따뜻한 품에 안겨 털모자를 쓰면 생존율이 70%까지 증가됩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 참가자들이 말라리아 모기 체험 부스를 지나고 있다.
저체온 체험 부스를 벗어나 1km를 다시 달리면 말라리아 모기 체험 부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체험 부스 천장에는 모기가 가득했습니다. 물론 종이에 그린 가짜 모기였습니다.
우리가 모기에 물리면 피부가 부어 오릅니다. 매우 간지럽고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어린이가 모기에 물리면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모기는 말라리아를 옮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만원이면 살 수 있는 살충처리된 모기장이 있다면 이곳 어린이도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리쬐는 가을 햇볕을 맞으며 3km 구간에 도착할 무렵이면 참가자는 목이 타기 마련입니다. 그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식수체험 부스입니다. 이곳에는 흙탕물이 가득 담긴 물통이 줄지어 쌓여 있습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가한 아동과 보호자가 식수체험 부스에서 흙탕물을 살펴보며
저개발국 아동의 식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먼 길을 걸어와서 덥고 목이 마른 상황. 그때 있는 물이라고는 흙탕물, 오염된 물뿐이라면 어떨까요? 5분 거리마다 편의점이 있어 손쉽게 생수를 마실 수 있는 대한민국 도심에서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저개발국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3km가 아니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물조차 오염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오염된 물을 마시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에게 오염된 물을 마시는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오염된 물 때문에 시작된 설사로 생명을 잃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도 매우 많습니다. 설사는 5세 미만 영유아의 사망원인 중 14%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하루 이틀 고생하면 쉬이 낫는 설사인데 왜 저개발국 어린이들은 생명까지 잃는 걸까요? 식수 체험 부스에서 1km 더 가면 나오는 영양 체험 부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 참가자들이 영양체험 부스에서 저개발국 어린이의 영양실조의 원인과
이에 따른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마라톤 코스 종점 부근에 자리잡은 이곳에서는 이제까지 힘차게 달려온 참가자에게 초코바를 건네줍니다. 간식으로 먹는 이 초코바 하나가 내는 열량은 180kcal 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어린이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열량은 고작 100-400kcal. 많아야 초코바 2개 분량입니다. 한국 6-16세 아동의 일일 섭취량이 1,800-2,500kcal라는 점을 들지 않아도 아프리카 아동에게 영양이 극히 부족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참가자가 4개의 체험 부스를 모두 통과하면 길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4.2195km의 마라톤 코스가 끝을 맺게 됩니다.
더욱 특별한 마라톤 - 우리의 정성이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에게 전해지도록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 행사장에 설치된 모자뜨기 체험 부스에서 참가자들이 미니모자를 만들고 있다.
마라톤 코스를 마치고 나면 가장 먼저 참가자를 맞아주는 곳은 모자뜨기 체험부스입니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미니모자를 만들면서 신생아 모자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면서 다시 한 번 털모자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 길이 만한 미니모자라 하더라도 뜨개질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만드는 데 40분 가까이 걸립니다. 그럼에도 부스를 해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참가자들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에 몰두했습니다.
사진/ 모자뜨기 체험 부스에 신생아 털모자와 미니모자가 걸려 있다.
사진/ 2011국제어린이마라톤 참가 아동이 희망에 벽에 부착할 나무 판에
지구촌 아동을 위한 메시지를 적고 있다.
이봉주 선수가 몸을 풀었던 무대 반대편에는 희망의 벽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희망의 벽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린이들은 색색의 색연필과 사인펜을 들고 희망의 벽에 걸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사리 손으로 그린 그림은 지구 다른 한편에 살고 있는 어린이에게 쓰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소원. 희망의 벽에는 현장을 둘러보던 사진작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소원이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가 건강해지길(EVERY ONE will be healthy).
사진/ 어린이들이 희망의 벽에 그림으로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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