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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 뜨려다 묵히고 만 후원자: 내 게으름을 찌르고 있는 바늘 두 개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1-10-25 조회수 6963

* 아래 글은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 소개책자에 실렸던 이지민님의 생생한 사연입니다. 지면이 부족해 다 담지 못했던 소중한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내가
애를 낳은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 사진이든 아이가 나오면 눈이 채널고정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덩치가 산만한 내게 아이들이 앙증맞은 색색깔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은 치즈 발린 쥐약이다.

그래, 나도 떠보는 거야! 
뜨개질은 중학교 실과시간 이후 졸업했지만 뭐, 대학 나와서 저렇게 작은 거 하나 못 뜨겠어?
나도 애 낳아서 키우는데 남의 애 귀한 줄도 알아야지.
모자뜨기 키트 몇 개를 왕창 사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함께 뜨자고 권했다.
야 나도 철들었구나 이렇게 좋은 일도 하고…….

그렇다.
이때까진 훈훈한 출발이었다.

첫날 두 줄을 떴다. 되겠다 싶었다.
친구들과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그들의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시큰둥한 눈빛은 그들이 아직 철이 덜 든 거라,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버스에서도 떴다.
왠지 뿌듯했다.
사무실에서도 떴다.
왠지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뜰 때마다 몇 줄씩 늘어나는 쾌감도 알게 되었다.
아, 엄마들이 요 맛에 뜨개질하시는구나.
'우리 아들 것도 하나 떠줄까?' 생각에 내가 만든 목도리를 나부끼며 달려가는 아들의 모습까지 그려봤다.

며칠 뒤, 함께 뜨고 있는 친구에게 은근슬쩍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런데 어라!
친구 것은 뜰수록 조뼛하게 줄어들어 모자 모양이 되고 있었는데
내 것은 뜰 때마다 늘어나서 치마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사용설명서를 들여다 보니 친구의 모양이 맞다.
분명히 동영상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나는 뜰 때마다 꼭 한 코씩 늘어나는 것일까?

떴던 것을 다 풀었다.
세상에 그동안 무식하게 많이도 떴다 욕을 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마음을 다독이며 뜨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또 한 코씩 늘어난다.
다시 풀었다. 욕이 나왔다.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가 가르쳐 주는 방식대로 다시 떴다.
그래도 난 한 코씩 꼬박꼬박 줏대 있게 늘어난다.

달력을 봤다. 벌써 1달이 지나 있었다.
마감시간을 봤다. 2달이 남아 있었다.

그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 쉬다가 다시 떠 보는 거야.
동영상도 다시 찾아보고 말이야.
좋은 일을 한다는데 첫술에 배부르겠니?

책장에 보라색 뜨개실과 15cm쯤 뜬 것을 올려놨다.
1주일 뒤에 다시 떠야지……
쉬다 뜨면 분명 속도가 확 붙어 금방 완성할 거야……

그 1주일은
1달이 되었고
또다시 1년이 되었다.

그동안 내 친구는 다 뜨고 또 뜨고 다시 떠서 우편으로 보냈다.
누군가 참 뜨던 모자는 어떻게 되었어? 물으면
지금 나에게 물었냐고 제스처를 취하며 모르쇠로 일관해 줬다.

언제 그만두는지 보자 했던 남편의 눈에
'네가 그럼 그렇지' 라는 자막이 박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겨울에도 또 좋은 사람이 되어볼까 생각하다
책장 위에 1년 넘게 박혀 있다가
우리 아들의 공놀이로 사라져간 보라색 실 뭉텅이를 떠올린다.
귀여웠던 바늘 두 개도.
 
도대체 이걸 몇십 개씩 뜨는 사람은 뭐야!!!

나는 뜨개질에는 젬병이고
뭔가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것에는 쥐약인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식사 후 점심 시간을 활용해
하루에 30분씩 뜨자는 결심을 다시 세워본다.

- 남편과 두 아들, 남자 셋을 키운다는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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