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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되찾아 준 어린 시절 유일한 사진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4-04-08 조회수 27646




사진/ 세이브더칠드런이 르완다 학살 당시 비윰바 고아원에서 촬영한         
15살 플로두아드 씨의 사진                                                


이 빛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 속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의 소년은 20세기 최악의 집단 학살로 기록되고 있는 르완다 집단학살 당시, 눈 앞에서 부모님을 잃고 동생들과 난민이 되었습니다.

1994년 4월 7일, 르완다 투치족과 후투족의 갈등이 격화돼 발생한 집단 학살로 100일간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희생자 중 30만 명이 어린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르완다와 인근 국가에서 가족과 헤어진 아이들의 수는 8만 명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15살이던 소년 플로두아드는 시체 밑에 몸을 숨겨 간신히 목숨을 구한 뒤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살기 위해 고향 잘리를 떠나 무작정 피난길에 나섰습니다. 수 차례 위기를 넘긴 뒤 도착한 곳은 비윰바의 고아원. 당시 난민 아동들을 대상으로 가족 찾아주기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던 세이브더칠드런은 플로두아드와 동생들의 사진을 찍어 주변에 수소문했고, 이를 통해 남매는 삼촌을 만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은 르완다 학살 발생 20년을 맞아 당시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공개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상자들 속에는 20년 전 난민 어린이들의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촬영한 사진과 특징을
 기록한 서류들이 들어 있습니다.     
                                                                          


2014년, 르완다 학살 발생 20년을 맞아 세이브더칠드런은 당시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대중에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으로 당시에 삼촌을 찾을 수 있었던 플로두아드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35살이 된 플로두아드 씨는 농부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진 속 앳된 자신의 모습, 함께 사진을 찍었던 두 동생의 모습이 어색하고 반가웠던지 그는 웃음부터 터트렸습니다.  



    사진/ 20년 전 세이브더칠드런이 찍은 사진 속 자신과 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플로두아드(사진 좌측)씨.


그럴 만도 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부모와 집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어린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에겐 추억을 챙길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어린 시절은 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다시 마주한 15년 전 자신의 모습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색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20년 전 그날의 기억과 함께 그 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르완다 학살은 그의 삶에서 부모님만 빼앗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사실은 학살의 후유증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 혼자 더 큰 도시로 가서 일자리를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책임으로 느껴졌습니다. 동생들을 내팽개친다면 부모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들이 다 자랄 때까지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지요.
만일 제가 당시 가족을 버렸었다면 지금까지도 굉장한 수치로 남았을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저와 동생들이 삶을 성공적으로 재건했다는 사실이 저에게 아주 큰 자부심과 기쁨이니까요."





사진/ 플로두아드 씨의 동생 사이프리언(31세) 씨와 글로리오스(25세) 씨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현재      
        모습. 사이프리언 씨는 현재 르완다 군에서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으며, 글로리오스 씨는 대학에서
작물학과 수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진/ 장 밥티스트(당시 14세) 씨와 동생 에반스(당시 8세) 씨의 폴라로이드 사진                               


역시 세이브더칠드런의 도움으로 삼촌을 찾을 수 있었던 장 밥티스트와 에반스 형제에게도 이 폴라로이드 사진은 어린 시절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유일한 사진입니다.

학살로 부모님을 잃었지만 남은 혈육을 만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가족'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세이브더칠드런은 큰 자연재해나 내전 등으로 대규모 난민 아동들이 발생한 지역에서 르완다 학살 때와 같이 아동들에게 가족을 찾아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 밥티스트 씨는 이 사업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족을 찾아주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노력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친척이라도 만나서 함께 살 수 있고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정체성을 찾고 자신들이 환영 받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이 정도의 관심과 헌신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진/ 자신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들고 있는 장 밥티스트 씨. 그는 현재 대형 경비회사에서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 밥티스트 씨의 이 말은 세이브더칠드런이 공개한 낡은 사진들 속 아이들이 가족들을 만나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들 속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을 이 사진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목소리는 하나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가족'이 있는 곳이라고요.

 


사진/ 르완다 난민 아이들이 가족을 다시 만난 순간을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들.                               


세이브더칠드런은 르완다 학살 당시 8000명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가족과 친지를 수소문했습니다. 종족이 다르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가족이 목숨을 잃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가족을 되찾은 아이들은 성실한 농부 플로두아드 씨로 자라고, 경호원으로 다른 이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장 밥티스트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르완다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 중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손 꾭히며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작은 사진들에 담겨있는 지난 20년간의 이야기들은 세이브더칠드런이 긴급한 인도적지원의 현장 속에서 의료, 영양과 같은 기본적인 지원과 함께 꾸준히 아이들의 가족 찾기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이자 희망의 증거입니다.



  사진/ 장 밥티스트 씨가 가족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단 한 장의
           사진 밖에 남지 않았지만 무사히, 건강하게 살아남아 꾸린 그의 가정은 이제 수많은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글 : 신은정(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 Colin Crow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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