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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아이들 ③ - 전쟁의 가해자가 되어버린 피해자, 아동병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4-06-25 조회수 9075

전쟁의 가해자가 되어버린 피해자, 아동병

올해는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4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집을 잃었던 역사.
세이브더칠드런은 [전쟁 속 아이들] 기획을 통해 6∙25 전쟁의 아픔을 기리며 전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혹한지 되짚어 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전쟁이 남긴 상처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려 합니다.


2014 아카데미 단편영화 부문에 스페인 작품 한 편에 후보로 올랐습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Aquel No Era Yo)>. 아프리카 지역 아동병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세이브더칠드런 스페인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스페인 NGO인 엘콤프로미소 등이 공동으로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영화입니다. 2013년에는 고야 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동병의 회고, “그건 내가 아니었다”


사진/ 2014 오스카 단편영화 부문 후보에 오른 <그건 내가 아니었다>의 한 장면.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이브더칠드런 스페인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스페인 NGO인 엘콤프로미소 등이 함께
제작한 이 영화는 아동병의 상황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24분 길이의 이 영화에는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내미는 축구스타 호날두 스티커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던 아이 캐니가 어떻게 형제처럼 자란 친구를 총살하게 되는지, 아이가 아니라 군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려냅니다. 영화에서 홀로 살아남은 캐니가 어른이 되어 당시를 회상하며 하는 말은 아동병의 삶을 더욱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군인으로, 아동병으로 산다는 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익숙해지거나 살해 당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가장 힘든 일은 그때의 기억을 갖고 계속 살아가는 일, 이미 내가 저지른 일들을 뒤로 하고 내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현실의 캐니, 남보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진/ 콩고민주공화국 반군에 속해 있었던 남보로(가명, 17)는 전쟁의 일부였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했습니다. 이제 그는 한 복귀 시설에서 공부하며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캐니의 이야기가 그저 영화 속 이야기일까요?

“돌아오기 힘들었어요. 여전히 군인처럼 굴려는 마음이 남아 있었거든요.”
“학교로 돌아오기 전까지 저는 살인마의 영혼으로 살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배운 것이죠.”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아동병으로 있다 가까스로 돌아온 아이들이 세이브더칠드런에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아동병의 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으나 유니세프는 최근 내전이 심화되고 있는 남수단에만 9,000명, 전 세계적으로 약 2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를 만든 단체들이 공동으로 낸 <세계의 아동병>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병은 콩고민주공화국 외에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미얀마, 파키스탄 등 35개 이상 국가에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만난 남보로(가명, 17)도 그런 아동병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북부 지역에서는 군인들이 와서 말썽을 일으키곤 했어요. 어느 날에는 아무 잘못도 없던 우리 아버지를 때려눕히곤 등 뒤로 손을 묶었어요. 그리고 총을 쏘았죠.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저는 복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반군에 들어갔죠. 그들은 제게 총을 주었고 어떻게 쓰는지도 알려주었어요. 그들과 남쪽으로 진군하면서 전쟁이 무엇인지 보았어요. 저도 그 전쟁의 일부였고요. 끔찍했어요. 훼손된 시체, 잘린 팔, 머리 없는 시체, 엄청난 양의 피…….
저는 제가 했던 일들을 후회해요. 하지만 저는 군인이었고 선택권이 없었어요. 장군이 누군가를 치라고 하면 쳐야 했어요. 설령 그 사람이 여성이거나 노인이더라도 말이죠. 제가 반군에 들어간 이유는 우리 마을이 군인들 손에 농락당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가 그들과 똑 같은 짓을 했던 거예요.”

먼 곳을 돌아온 아이들, 다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사진/ 한 때 아동병이었던 줄리앙(가명, 17)은 현재 무장 세력에서 벗어나 콩고민주공화국 키부 지역    
 임시 거처의 위탁가정과 살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줄리앙이 다시 가족의 보호 아래
살 수 있도록 줄리앙의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잔인하게 끌려가 군인이 되기도 하고 가난을 피하기 위해, 갈 곳이 없어서, 혹은 남보로처럼 복수심에 무장 세력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군인이 되었든 전쟁에 가담하게 되는 아이들은 여러 위험에 처합니다. 군인들은 아이들에게 ‘군사 훈련’이라며 흉악한 범죄를 종용하기도 하고 전장의 최전방에 이들을 세우기도 합니다. 전쟁이 멈추었을 때는 짐꾼이나 노예처럼 다루기도 합니다. 아동병에는 남자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 아이들 역시 무장 세력에 포섭되어 청소와 요리 등을 맡고 육체적으로나 성적, 정서적인 학대를 받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무장 세력에서 풀려나도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군인이었다는 낙인 때문에 살던 마을로 돌아가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이 스스로도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다시 사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아동병었던 아이들이 다시 총을 잡지 않게 하려면 무장세력과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것 이상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군인처럼 굴려는 마음’ 때문에 힘들었다던 아이는 그런 자신을 붙잡아 준 것으로 학교를 꼽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보통 아이가 되었어요. 그곳에서의 삶은 끔찍했지만 지금은 학교 덕분에 제가 원래의 제 자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져요. 학교는 제가 잃어버렸던 삶의 리듬을 돌려주었어요.

콩고민주공화국의 시어도어(가명, 15) 역시 학교와 아동친화공간에서 자신의 미래와 롤모델을 발견하며 기쁨을 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는 제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정말 기뻤죠. 제게도 다시 미래가 생기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1년 전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대신 저는 아동친화공간에 나오고 있어요. 이곳에서는 목수 일도 배우고 제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있어요. 제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곳 친구들도 좋고요.

아동친화공간은 제가 겪었던 그 일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여기에 있으면 제가 어떻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알려줘요. 군인들은 나쁜 일을 하는 것만 가르쳤는데 말이죠. 이곳엔 제가 본 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이처럼 다시 돌아온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사회를 지원하고, 아동친화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안전한 공간에서 뛰어 놀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며 동시에 학업과 생활 기술들을 익혀 평화롭고 풍성한 미래를 일궈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글: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

관련 글
<그건 내가 아니었다> 예고편
전쟁 속 아이들 ① - 6∙25 전쟁이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
전쟁 속 아이들 ② - 침묵에 쌓인 전쟁 중 상처,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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