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을 품은 지역사회, 아이와 함께 자라다
다섯 명 중 한 명. 방과 후 곁을 지켜줄 보호자가 없이 지내는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방치되는 아이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것은 물론 끼니를 거르거나 TV 중독, 게임 중독 등을 겪을 위험도 커집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저녁 식사나 감독자가 아닙니다. ‘배고픈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싫다’는 아이들의 말처럼 성장에 필요한 영양뿐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공부하며 삶의 규범들을 배울 수 있는 공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든든한 어른, 아이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주는 지역사회 등 더욱 큰 범위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이에 세이브더칠드런은 2010년부터 지역사회 아이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듬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영양과 건강, 교육, 발달, 개별 상담, 역량 강화 등 통합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체인지더퓨처(Change the Future)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 보건복지부∙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아동청소년 종합실태조사, 2009 | |
방과 후 삶이 달라진 아이들
10만 9,256명. 2013년 6월 전국 지역아동센터 4,036곳에 다니는 아이들 수입니다. 이렇게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지역사회의 최일선입니다. 하지만 개인이나 작은 단체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지원과 활동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돌봄필요아동 통합지원 프로그램 체인지더퓨처를 통해 지역아동센터와 손잡고 아이들에게 영양∙건강, 교육, 정서∙문화 발달, 아동권리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운도 우정도 샘솟는 체육활동
“공, 이쪽으로!”
5월 19일 대전 복수초등학교 운동장. 지연(가명)이의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지릅니다. 지연이와 함께 발야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체인지더퓨처에 참여하는 인근 서대전지역아동센터 아이들입니다. 일찍 찾아온 여름 날씨에 아이들의 겉옷은 이미 운동장 벤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직 규칙이 익숙하지 않은 1학년 동생부터 ‘공 좀 차는’ 6학년까지 한 팀에 속해있지만 어느 누구도 경기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주환(8, 가명)이가 찬 공이 겨우 몇 걸음 앞으로 떼구르르 굴러갔지만 선생님 손을 잡고 1루로 뛰어가는 주환이 표정에는 웃음이 번집니다. 벤치에는 공을 찰 순서대로 앉은 큰 아이들이 주환이를 응원했습니다. 홈으로 힘껏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이 밭은 숨을 쉬는 동안 응원석에서는 아이들의 환영이 쏟아집니다. 그렇게 1시간을 꼬박 뛰어논 아이들은 수돗가에서 발갛게 익은 얼굴을 식혔습니다.
사진/ 대전 복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인지더퓨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체육 활동에 참여한
서대진지역아동센터 아이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힘이 났어요.”
이날 얼굴로 날아오는 공에도 용감하게 다가섰던 진아(가명, 9)가 말했습니다. 체육활동은 가희(가명, 13)가 체인지더퓨처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활동이잖아요. 전에는 친구들이 따로 따로 놀았는데 운동하면서 다 같이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온 몸으로 읽는 책 – 교육프로그램
체인지더퓨처의 지원을 받는 지역아동센터에는 ‘미니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며 책에 대한 관심도 키워나갑니다. 체인지더퓨처의 교육프로그램은 이처럼 단순히 건물을 짓거나 책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책과 더 가깝게 생활하며 스스로 배움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독서의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들이 함께 진행됩니다. ‘역사’를 테마로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서 독서지도 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듣고, 책에서 나온 현장을 직접 찾아 가 보는 체험학습을 통해 책은 아이들의 '온 몸으로' 다가갑니다. 특히 체험학습은 부모님과 야외활동을 하기 어려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주말을 의미있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아동보호’의 역할도 합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상황에 맞게 미니도서관의 크기와 프로그램 운용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독서를 위한 자신들만의 공간이 생기고 눈높이에 맞는 책이 채워져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책을 훨씬 더 가깝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루에 책 10권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 부산 문일지역아동센터에 설치된 ‘미니도서관’을 열심히 이용하여 꿈을 키워가고 있는 변재희,
권다빈, 박수빈 양(왼쪽부터)
자타공인 문일지역아동센터의 독서왕 변재희(초4), 권다빈(초3), 박수빈(초4) 양. 세 소녀에게 미니도서관은 책과 함께 마음껏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박수빈 : “예전에는 여기에 복도랑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처음 미니도서관이 완성된 모습을 봤을 때 엄청나게 놀랐어요.”
권다빈 : “한 번은 열심히 책 읽다가요, 누가 ‘다빈아’ 하고 불렀는데 너무 놀라서 심장이 내려가는 줄 알았어요.”
변재희 : “미니도서관이 생기기 전에는 책 놓을 공간이 없어서 사무실 쪽에 두고 그래서 저만 볼 때가 많았는데 이제 다른 친구들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아동권리 현장
대전 가정지역아동센터 교실에는 아이들이 손으로 쓴 생활규칙이 책장에 붙어 있습니다.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하단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날인 등 제법 형식을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에 날인한 아이들은 이 규칙을 쓰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올해 4월 아동권리교육에 참여한 후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시간 잘 지키기’, ‘바닥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 스스로 지킬 규칙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사진/ 가정지역아동센터에는 아동권리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규칙들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바깥으로 아동권리 활동을 더욱 넓혀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바로 아동자치활동 차일드클럽(Child Club)에 참여하는 아이들입니다. 가정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한 대전지역 아이들은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식당,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리아 아이들 등 아동권리와 관련한 기사를 스크랩하며 기자단 활동을 준비해왔습니다. 앞으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취재해 아이들의 시선이 담긴 지역 신문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사진/ 대전지역 차일드클럽 모임을 앞두고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산 지역 차일드클럽 아이들은 자원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지역사회 일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회장, 부회장과 함께 무엇을 준비할지, 가서 무엇을 할지 스스로 준비해서 요양병원을 찾았습니다. 갈팡질팡했던 사람은 오히려 ‘뭘 도와주어야 하나?’ 고민했던 그곳 사회복지사였습니다. 그에게 서미돌 부산 문일지역아동센터장은 ‘기다려보세요. 아이들이 다 알아서 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서미돌 센터장도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아이들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회의나 제대로 할까?’란 의문도 들었어요. 그런데 차일드클럽을 통해 아이들이 부쩍 자란 걸 느껴요. 아이라면 누구나 잠재된 역량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걸 발현하는 것 같아요.”
사진/ 가정지역아동센터에서 차일드클럽에 참여하는 아이들
체육활동을, 차일드클럽을, 독서지도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역아동센터로 오는 아이들은 이제 쉬는 시간이면 미니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학교 앞에서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사던 군것질거리를 뒤로 하고 이곳에서 영양간식을 먹습니다. 친구들과 다양한 상황에서 어울려 보며 친구들의 마음을 살피기도 하고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내 마음을 만나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체인지더퓨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방과 후 삶을, 그리고 미래를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글: 고우현, 신은정(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김흥구,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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