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권리교육을 진행하는 ‘권리세이버’ 이영실, 유수연 씨 인터뷰
국제사회가 모든 아동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처음 선언한 지 90년이 지났습니다. ‘아동권리’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그지없었을 개념이 이제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동권리라는 ‘단어’가 확산된다고 해서 아동권리가 ‘실제로’ 뿌리내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동권리가 추상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일상에서 녹아날 수 있으려면 무엇이 중요할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아동권리교육을 진행하는 ‘권리세이버’ 이영실 씨, 유수연 씨와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이영실 씨는 2012년 6월부터, 유수연 씨는 2012년 10월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의 권리세이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진/ 권리세이버 이영실 씨(왼쪽)와 유수연 씨
Q : 권리세이버에 자원하셨을 정도면 평소에 아동권리에 관심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유 : 꼭 그렇진 않아요. 아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동권리’를 개념화하고 있지는 못했어요. 아동권리교육도 아동권리 자체가 주제가 아니라 뭔가 다른 주제의 교육을 아동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법을 알려주는 건 줄 알았어요.
이 : 저도 아이들이 자기가 누릴 것만 권리라고 주장하지 말고 배려와 책임의 중요성도 알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권리세이버 양성과정에서 아동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어렴풋이만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개념화하고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암기가 잘 안 되어서 고생은 했지만요(웃음).
Q : 새로운 개념틀을 갖게 되면 (가령, ‘아동권리’) 그것이 일상에 영향을 미치나요?
유 : 그 개념틀을 렌즈삼아 일상을 돌아보게 되죠. 단적인 예로, 수업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내가 이런 내용을 알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내 판단을 들이밀면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던 것, 정답을 내가 이미 정해 놓고 그쪽으로 몰아간 것 등이 후회가 돼요. 이제 되도록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요.
이 : ‘개념’과 ‘실천’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한 것 같아요.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 엄마들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아이와 대화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방식이 답을 정해 놓고 그쪽으로 유도하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들은 엄마의 유도 심문을 잘 알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그러니까 말은 많이 주고받더라도 사실상 대화는 차단되는 결과가 나오거든요.
Q : 개념이 확산될 때 형식적으로만 흐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유 : 아동권리교육의 맥락에서 이야기해보자면, 요즘은 초등학교에 외부교육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런 교육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강사의 질문에 정답이 뭔지 등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단편적인 답이 나오기도 하고요. 카티아투[아동권리교육 중 세계시민교육 파트에서 활용되는 동화 주인공. 아프리카 소년이다. 편집자] 이야기 보여주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물으면 돈을 보내준다, 편지로 응원해준다고 답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세계시민교육이 형식적으로 흐르게 되면 오히려 편견을 심어줄 우려도 있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 아이들은 다 가난하다는 식으로요.
이: 실천하는 길을 틔워주는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고민하다가 이제 카티아투 이야기를 할 때는 환경이야기를 같이 해요. 세계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요. 중국의 벌목으로 우리가 황사 피해를 보듯이 카티아투 집에 물이 부족한 것은 우리가 물과 물자를 많이 써서 그런 것일 수 있잖아요. 돈이나 편지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학용품 아껴서 나무를 덜 베어도 되게 한다든지, 이렇게 지속적으로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Q : 아동권리를 ‘진정으로 실천하고자’ 할 때, 어른들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 :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어른들이 믿는 것? 엄마가 보기에 아이가 A경로로 가면 훨씬 쉽게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도, 아이가 B나 C경로로 가려 할 때 믿고 기다려 주는 거요. 정말로 A가 더 안전하고 확실한 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부모의 기다림이 아이의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유 : 스스로 하게 두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잘 하는 일도 많아요. 권리세이버 양성과정에서 강사들끼리 권리만화그리기 같은 것 실습해보면서 ‘이렇게 어려운 걸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교육 나가보니 아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잘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무언가를 내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걸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전에 중학생을 대상으로 다른 교육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아이가 3명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잠을 자거나 딴 짓 하거나... 그런데 마지막에 질문할 사람 손들어보라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질문을 쏟아내는 거예요. 나름 자신의 방식대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거죠. 내가 원하는 방식의 반응이 아니라고 해도 아이들은 다 듣고 변화하고 반응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Q : 아동권리에는 ‘보호’도 분명 포함되잖아요. 어른들의 개입이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냐,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막는 것이냐의 경계가 모호한 것 같아요.
이 : 보호하는 것과 스스로 성장하게 두는 것이 상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보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권리교육에서 폭력이나 왕따 문제를 다룰 때, 그런 일을 당할 경우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뒤에, 그러므로 상대방이나 어른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말해요.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그리고 왕따의 경우에는,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데도 엄마들이 개입해서 일을 악화시키거나, 없던 왕따가 생기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Q : 아이들 사이에 낙인이나 편견이 형성되어 있다면 피해자인 아동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아이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이 : 의사표현을 강조하는 것이 책임이나 부담을 당사자인 아동에게만 지우는 것이어서는 안 되겠죠. 강사나 교사가 개입을 해야 할 때가 물론 있어요. 강의 나가서 조별 과제를 내보면 “얘는 잘 못하는 애니까 얘는 빼고”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어요. 이미 아이들 사이에 서열이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요. 그럴 때는 그 아이의 행동이나 발표를 들어서 그 아이가 속한 조 전체를 칭찬해주거나, 준비물을 나눠줄 때 그 아이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곤 해요. 그러면 다음 번 수업 때 그 아이가 똑바로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봐요. 정말 뿌듯하죠.
유 : 아동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어요. 앞에서 폭력이나 왕따를 당할 때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했지만, 세심하게 귀 기울여주고 지켜봐주는 어른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잖아요. 아이들도 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개념으로만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자신이 저지를 수 있는 차별에 더 민감해져야 할 테고요.
이 : 핵심은 ‘관심’인 것 같아요. 좀 전에 어른이 개입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개입하냐 아니냐보다는 얼마나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한 관심을 바탕에 깔고 나서, 상황에 따라 개입을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스스로 해 나가도록 놔둘 수도 있겠죠. 학교에서는 특히 담임선생님들의 태도와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학급의 분위기나 아이들 사이의 다이나믹에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크니까요. 아동권리교육 참관하시면서 담임선생님들도 많이 배운다고 하세요. 저희로서는 이 점도 큰 보람이죠.
아동권리선언90년 “모든 아동은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가 있다”
90년 전인 1924년,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제네바에서 열린 총회에서 5개항으로 이뤄진 아동권리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국제사회가 모든 아동이 누려야 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이 5개조의 선언문은 1년 전인 1923년에 세이브더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이 작성한 것으로, 1924년 이후 ‘아동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으로 불리게 됩니다.
1959년 유엔은 제네바 선언을 확장해 10개조의 아동권리선언을 채택했고, 30년 뒤인 1989년에 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나 미성숙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이자 권리의 주체임을 천명하고, 생존, 보호, 발달, 참여 등 만 18세 미만의 아동이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학대와 노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 표현과 참여의 자유를 누릴 권리, 교육 받을 권리, 건강하게 자랄 권리, 여가와 놀 권리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190여 개 나라가 협약이 정한 아동권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며, 한국도 1991년에 이 협약에 비준해 협약당사국이 됐습니다. |
글: 김승진(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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