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과 아동: ‘아동권리실현’을 위한 공적개발원조 정책 토론회” 참관기
한국전쟁 이후 각국의 원조를 받던 한국은 이제 다른 나라를 돕는 공여국이 됐습니다. 원조 규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원조 활동을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선진화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해외원조가 그 취지대로 개발도상국의 진정한 발전에 기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5월 14일, 이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정부가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지원하는 예산을 공적개발원조(ODA)라고 합니다. 2012년 한국의 총 ODA 금액은 15억 5,100만 달러로, 한 사람이 ODA에 기여한 금액은 3만 4,900원입니다. 한 가족을 네 명이라고 치면, 한 집에서 ODA를 위해 내는 돈이 1년에 약 14만 원이나 되는 셈입니다.
ODA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할까요? 한국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제3조에서 ODA가 “개발도상국의 빈곤감소 및 여성, 아동, 장애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의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가장 먼저 보듬겠다는 선언이자, 유엔아동권리협약과 같은 국제인권규범을 ODA 사업에서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ODA 정책에서 취약자, 특히 아동의 인권 향상이 그 중요성과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글로벌발전연구원이 진행한 ‘국내외 원조기관의 아동정책 비교연구’ 결과, 덴마크, 스웨덴, 호주, 캐나다 등 해외 원조기관들은 원조의 성과에서 아동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교육이나 보건 이외의 분야에서도 아동인권적 접근법을 취하는 등 ODA 전반에 아동 이슈를 담아내고 있는 반면, 한국은 ODA 정책과 전략 문서에 아동 이슈가 거의 반영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과 글로벌발전연구원이 진행한 ‘국내외 원조기관의
아동정책 비교연구’ 결과 등이 담긴 토론회 책자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 아동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약자의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가치 때문만이 아닙니다. 아동은 개발협력 사업의 매우 구체적인 부분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동은 빈곤과 인권 침해에 가장 취약한 존재로서 개발협력 사업의 최우선 수혜자인 동시에, 어려움을 이겨낼 역량을 가진 발전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세이브더칠드런은 정책 제언에서 ▲ 아동의 특성과 권리가 존중될 수 있도록 ODA 사업의 모든 과정에 ‘아동인지적 관점’ 도입 ▲ 원조성과평가 등에 상대적으로 더 소외되기 쉬운 아동들의 상황과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아동에 대한 세분화된 접근법 마련 ▲ ODA 진행 과정에서 원조기관의 직원이나 활동이 아동에게 오히려 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동안전보호정책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과 관련, 세이브더칠드런 호주에서 아동보호팀을 이끄는 캐런 플래너건 씨가 호주 국제개발청이 2008년에 도입한 아동안전보호정책을 소개했습니다. 아동안전보호정책은 원조사업 과정에서 아동이 피해를 입는 경우를 예방하고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보호체계입니다. 2000년대 초, 원조기관 관련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악용해 난민캠프에서 아동을 학대하거나 성적으로 착취한 사례가 알려져 충격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플래너건 씨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게 만들려면 예방과 대응을 위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호주 국제개발청의 자금이 집행되는 모든 ODA 사업에서, 관련 기관들은 직원이나 자원봉사자 채용시 적합성을 철저히 확인하고, 직원에게 학대예방과 신고절차에 대해 교육하며, 현지 주민과 아동에게 피해신고방법에 대해 알리는 등의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호주에서 아동 보호팀을 이끄는 캐런 플래너건 씨
소외된 계층을 일컫는 여러 범주 중에서도 왜 하필 ‘아동’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아동인권적 접근법’은 여성, 장애인 등을 누르고 아동만 고려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람직한 ODA 사업에서는 이런 범주들이 분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통합될 것입니다. 2002년 유엔총회 아동특별세션에서 한 아동이 말했듯이, “우리는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을 원합니다. 아이에게 맞는 세상은 모두에게 맞는 세상일 테니까요.”
글: 김현주(권리옹호부) / 사진: 정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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