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흔히 요즘 아이들은... 하는 말을 즐겨 씁니다. 뉴스에는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나 스마트폰, 게임 중독 등에 대한 기사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수치화, 계량화돼서 나오는 수많은 기사나 자료 속에 정작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와 함께 아동이 느끼는 삶의 질을 건강, 주관적 행복감, 관계, 물질적 상황, 위험과 안전, 교육, 주거환경, 바람직한 인성 등 8개 영역에 걸쳐 조사하여 국내 최초로 '아동 삶의 질 종합지수'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두 번째 조사가 진행되었는데요, 올해는 아이들에 대한 설문조사와 함께 '포커스그룹 인터뷰'가 진행되어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이를 연구 결과에 반영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행복에 대한 아이들의 솔직한 생각은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수치'에 아이들의 관점이 반영된 '의미'를 더해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커스그룹 인터뷰는 전국 8개 시도(경기, 경남, 대구, 대전, 서울, 전남, 제주, 충남) 초등학교 5학년 ~ 중학교 1학년 학생 46명을 대상으로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에서 진행했는데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정리한 유민상, 최창용, 이주연, 고은혜 연구원들을 만나 인터뷰 내용들을 되짚어 보고 포커스그룹 인터뷰에 참여한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사진/ 아동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한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유민상, 최창용, 이주연, 고은혜
연구원(좌로부터)
1. 얘들아, 너희가 생각하는 행복은 뭐니?
- 즐거운 거
- 기쁜 거
- 자기가 만족할 때
-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 외롭지 않을 때
최창용: 아직 개인적으로 정리가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느낀 건 아이들에게 행복은 ‘즐거움’과 제일 가까운 것 같다는 거였어요. 대부분의 지역에서 첫 질문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아는지'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였는데 아이들은 즐거움이라는 감정적 느낌을 그대로 제시하기도 하고 즐거움을 느낀 상황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아이들이 실제로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행복에 가까운 즐거움을 느끼는지 조금 더 아이들의 입장에서 알아가려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주연: 제가 느끼기에 아이들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족함을 느낄 때나 자기가 하는 활동이나 놀이, 수업시간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때 행복하다고 표현한 것 같아요.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이들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인 셈이지요.
사진/ 최창용 연구원은 아동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와 행복한 때를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 집에서, 학교에서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니?
- 다 같이 가족들이 같이 즐기면서 사는 모습...저는 주변에서 좋은 가정 꾸리고 사는 그런 분들이 행복해 보여요.
- 그냥 저녁 먹을 때...? 그냥 같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친구들이랑 놀 때가 행복해요.
- 친구랑 같이 놀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엄마가 오늘 일이 있고 숙제 많이 밀렸다고 못 가게 할 때 (행복하지 않아요)
- 저번 선생님은 공부할 때 외우는 거 강조했는데 이번 000선생님은 이해시키는 걸 더 강조해요. 더 재미있어요.
최창용: 가정에서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물었을 때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이 부모님과의 관계였어요. 학교에서의 행복도 담임 선생님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았고요. 학교나 가정, 지역사회 등에서 행복이나 만족을 판단하는데 있어, 각 영역들 안에서 맺고 있는 대상과의 관계가 거의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었죠.
고은혜: 아이들이 가정에서 엄마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정작 엄마 아빠는 늦게 오시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친구는 없고. 아이들이 관계를 정할 수 있는 시간이나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관계'를 더 열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진/ 아이들은 부모님, 친구, 선생님 등 관계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너희들이 살고 있는 동네와 지역사회는 어떠니?
- (우리 동네의 좋은 점은) 경비실 아저씨들 성격!
-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라서 경비아저씨도 있고 애들이 많아요. 그리고 앞에 마트가 있어서 밝아요.
- 주변에 놀 데가 많이 없어서 (힘들어요)
- 밤에 길을 가면요 가로등이 없어서 태권도 끝나고 가면 귀신 나올 거 같아서...걸어가면 좀 이상한 아저씨가 달려
나올 거 같고...
- 어제 학원 끝나고 버스 타고 집에 오고 있는데 학생들이 놀이터에서 막 모여서 당당하게 담배 피는 걸 봤는데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이주연: 아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장소는 '놀이터' 인 것 같고요, 그 다음이 문방구나 슈퍼였어요. 아이들에게는 가서 뭔가 행동할 수 있는, 사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놀이공간이나 슈퍼마켓 같은 장소가 중요한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유민상: 아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공간으로 어두컴컴한 골목이 나왔어요. 어두컴컴한 골목에 낯선 사람이 있으면 그게 아이들에게 제일 무서운 환경이 되는 거예요. 공포스런 환경이 되는 거죠. 상급생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는데요, 실제로 상급생에게 맞은 경험이 없더라도 친구가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상당히 위협이 되는 것 같아요. 6학년 선배가 와서 행패부리고 간다던가 동네 중학생 형이 그런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최창용: 크게 지역사회나 동네 자체가 만족스러운지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만족스럽다’라고 대답을 해요. 그런데 저희가 안전이나 위험, 바뀌길 바라는 점 등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을 하면 '동네에 무서운 형, 언니가 있어요' 라든지 '가로등이 더 밝았으면 좋겠어요' 와 같은 대답이 나왔던 것 같아요.
사진/ 가장 많은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 참여한 이주연 연구원은 “사회적으로도 어른들을 늦게까지
회사에 잡아놓지 않고 가족들과 같이 오래 있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4. 너희들과 가족, 학교, 동네, 이웃, 우리 사회 전체가 더 행복해지려면 어떤 게 달라져야 할까?
- 아이들이 성적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 범죄자들이 없는 세상,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 어린 아이들은요, 외로움을 좀 잘 느껴가지고...사회적으로도 어른들을 늦게까지 막 회사에 잡아놓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경찰이 어린이들한테 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유민상: 어느 지역에서 인터뷰한 아이들이 동네에서 위험에 처하면 동네 어른들은 자기를 도와줄 거라고 대답했는데 경찰들은 신경 안 쓴다고 대답했어요. 경찰들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골목까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대답을 듣고 가슴이 아팠죠.
고은혜: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사회일텐데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 학교 선생님이 공평하고 나를 지지해주면, 친구들도 그런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를 타는 거죠. 설령 가정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긍정적인 친구들이 있고 학교 분위기, 이웃 분위기가 좋으면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어요.
사진/ 유민상 연구원은 동네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어른들이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연구자로서, 어른으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5.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온 어른들에게 묻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신 소감이 어떠셨나요?
이주연: 처음 아이들을 만나서 우리가 왜 왔는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설명하면서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서 왔고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아이들의 대표가 돼서 직접 이야기하는거다' 라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의 자세가 달라진달까...되게 진지해지고 눈빛이 반짝반짝 하는 걸 느꼈어요.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도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행복해 보이니' 라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라고 대답한 친구도 있고 '잘 모르겠다' '아니다' 라고 대답한 친구도 있었는데요, 그 대답이 자신이 지금 행복한지에 대한 대답과 일치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결국 어른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여유롭고 행복하고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어야 그 속에서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고은혜: 아이들은 자신을 지지해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지각하게 되면 말도 굉장히 잘 하고 뭔가 행복해 보였어요. 기뻐하더라고요. 이번 연구를 통해 그런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하고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데에 저도 가슴 뿌듯했던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이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고 그런 것들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그런 게 아이들에게는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사진/ 주어진 한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고은혜 연구원은 아이들이 “나 할 말 많아요” 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민상: 아이들이 굉장히 재미있어해서 깜짝 놀랐어요. '박사 따고 또 오세요' 하는 말까지 하더라고요(웃음).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불행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위험한 환경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동학대와 관련된 제도, 학교 폭력이나 체벌, 아동 범죄 등 아직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이 돼야 행복으로 가는 중간 정도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가 작년 아동 삶의 질 연구를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아이들은 대부분 '웰비커밍(well becoming)', 즉 성공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웰빙(well being)'으로 가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자꾸 물어보고 탐구하려는 어른들의 관점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창용: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긍정적인 부분도 많이 발견했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만족스러운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기존의 문제나 부정적인 산물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긍정적인 것들을 얼마나 가져가고 있는지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죠. 안타깝게 생각됐던 것은 '믿을만한 어른이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님, 선생님도 대답이 바로 안 나오고 부모님과 선생님을 제외하고 나서는 대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평소 어른들을 접촉할 기회나 범위를 생각하면 이해도 되지만 부모님이라서, 또는 선생님이라서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특히 아동 권리옹호는 아이들이 직접 나설 수 없는 부분들을 어른들이 대신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4명의 연구원들은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나 할 말 많아요’ 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첫 걸음은 어른들의 잣대를 버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와 가슴을 열어 들어주는 것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삶의 질’ 연구를 비롯한 다양한 옹호 활동을 통해 꾸준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더 많은 어른들이 함께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신은정(커뮤니케이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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