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사람들] 영세이버, 그들의 청춘이 조금 더 반짝이는 이유 |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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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3-30 조회수 4431 | |
[나누는 사람들] 영세이버, 그들의 청춘이 조금 더 반짝이는 이유 세이브더칠드런 대학생 아동권리 옹호 서포터즈 '영세이버' 지난 2010년 활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283명의 영세이버들이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아동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아동권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만큼 단순한 봉사활동보다 공부할 것도, 고민할 것도 많은 영세이버 활동. 하지만 영세이버들은 이 시간이 이후 자신들의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각자 다른 자리, 다른 모습의 아동권리 지킴이로 살아가고 있는 영세이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영세이버 1기 박건우 | 공익법무관 영세이버의 시작을 함께 한 박건우 씨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지금은 공익법무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세이버 활동 당시 모니터링팀에서 체벌에 관한 제도와 미디어 모니터링을 하며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공익법무관으로 일하면서 다룬 사건 중 재혼을 하면서 배우자가 데리고 온 자녀를 입양한 후에 사이가 나빠져 이혼을 하게 되자 파양을 신청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건에서 파양청구소송의 피고가 된 아동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민법의 관련 조항을 적용할 때 아동권리 최우선의 원칙을 최대한 살려 서면을 쓰고자 노력한 기억이 납니다. 만약 제가 영세이버 활동을 하면서 아동권리협약의 원칙들을 배우지 않았다면 아마 일반 민사사건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영세이버 2기 김하민 | 한국코닥주식회사 테크니컬 세일즈 스페셜리스트 옹호팀 기장이었던 김하민 씨는 현재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영세이버에서 흔치 않은 이과 출신인 김하민 씨는 취업준비만으로도 바쁜 대학교 4학년 때 영세이버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영세이버 시절 활동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영세이버 활동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인으로서 아동에 대한 책임의식과 가치관이 변화되었어요. 저는 지금도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후원도 계속하고 있어요.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과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서로 다른 구성원들과 협력해 나가는 데 영세이버 때 기장을 맡아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고 활동을 만들어나갔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영세이버 3기 조한솔 | 명지대학교 아동학과 대학원 아동가족심리치료전공 이제 대학원생이 된 조한솔 씨는 아동보호팀 부기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아동학과에 다니던 조한솔 씨에게 영세이버 활동은 그야말로 안성맞춤. 특히 1년간 ‘방임’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대중 캠페인을 진행하며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보듬고 치료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는 아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꿈이 초대형 태풍이라고 한다면 영세이버는 그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게 해 준 느낌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첫사랑 같기도 해요. 대학교 2학년 때 영세이버가 됐는데 제 대학시절 첫 번째 대외활동이었거든요. 3기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활동했어요. 토론을 할 때도 각자의 생각은 다르지만 결국 ‘아동’이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모이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영세이버를 생각하면 따뜻한, 고향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글 신은정(커뮤니케이션부)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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