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열세 시간의 노동
열세 살, '시리아 아이스크림 소년'의 이야기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 어느덧 4년. 지금까지 40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포격과 총성을 피해 주변 요르단과 레바논, 이라크의 난민 캠프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힘겨운 여정 끝에 닿은 난민 캠프에서의 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깥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한 난민촌. 매일 같이 수 백 명이 밀려들어 이미 수용인원을 초과한지 오래인 이곳에서도 삶은 계속됩니다.
굶주림에 지쳐가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피난길에 챙겨온 소중한 물건을 팔고, 누군가는 아침마다 배급되는 빵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 매일 새벽부터 긴 줄을 섭니다. 그 중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하지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대부분은, 아동입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이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고된 노동만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뛰놀던 학교와, 늘 꿈꾸던 ‘내일’이 사라졌다는 절망입니다.
하루 열세 시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요르단 자타리(Za’atari) 캠프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열세 살 소년 자셈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난민이라는 이름의 삶은 너무나 슬퍼요”
시리아에서 자셈의 일상은 여느 열세 살 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학교에서 뛰어 노는, 근심걱정 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자셈의 일상은 1년 반 전, 송두리째 뒤바뀌었습니다. 무자비한 포격으로 집을 잃은 뒤, 부모님과 자셈, 그리고 다섯 형제는 고향 땅 시리아의 정든 집과 학교, 친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셈과 가족들은 ‘시리아 국민’이 아닌 ‘요르단 자타리 캠프의 난민’이 되었습니다.
“난민캠프에는 오고 싶지 않았어요.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요.”
언젠가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면서 자셈은 자타리 난민촌 안에 생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 나가고, 숙제를 하고, 시험도 치렀습니다.
하지만 자셈의 학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첫 학기를 마치자 마자, 자셈의 아버지가 홀로 시리아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가족의 생계를 이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이 한창인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떠나자 집안의 차남인 자셈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자셈과 한 살 위 형은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그만 뒀을 때, 마치 제 꿈이 저 멀리로 달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열 세 살의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하는 자셈.
이젠 아침마다 책가방을 드는 대신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준 아이스크림 수레를 끌러 나갑니다.
“저의 하루는 아침 7시에 시작돼요. 가족들이 먹을 빵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다음, 수레를 끌고 나가 캠프에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을 팔죠.”
이틀에 한 번, 자셈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아이스크림을 팔러 나갑니다. 하루 열 세 시간씩 일해도 고작 벌 수 있는 돈은 3~4 요르단 달러 (약 5000원)정도. 자셈은 종일 일해 번 돈을 모두 어머니께 드립니다.
“학교를 다녔을 때는 매일매일이 지금보단 훨씬 좋았죠. 숙제를 하고 나면 좀 쉬다가 오후 내내 친구들과 놀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너무나 지쳐요”
“저도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에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던 자셈에게 세이브더칠드런이 자타리 캠프에 노동아동 쉼터 (Drop-In Centre)를 짓는다는 소식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습니다. 쉼터가 문을 연 첫 날부터 지금까지 자셈과 형은 꾸준히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형과 저는 아이스크림을 팔러 나가는 순번을 정해요. 장사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은 쉼터에 오죠”
세이브더칠드런이 자타리 캠프에 세운 노동아동 쉼터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노동에 내몰린 아이들이 심리정서적 지원을 받고 다양한 놀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무 때나 원할 때 들러서 놀다 갈 수 있는 곳 이라는 의미로 드롭인 센터(Drop-In Centr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아져요. 시리아에서도 늘 하던 축구도 할 수 있어요. 여기와서 저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 마음이 한결 편해져요.”
쉼터에서는 아이들이 난민 생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유로운 교육활동과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동 권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무용 공연도 이런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자타리 캠프에서 이 쉼터에 정식 등록한 아이들은 500명이 넘습니다.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지만 나도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놀고, 웃고, 떠들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한 어린 아이 말이에요. 쉼터는 저에게 희망과도 같아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에 한발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니까요.”
“학교에 돌아가 다시 꿈 꾸고 싶어요”
자셈은 아버지와 다시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형과 자신이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머지 않아 곧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지요.
“이게 지금 제가 처한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죠.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면 돈을 버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권이 없어요.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져서 저도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이나미 (커뮤니케이션부)
고된 노동의 현장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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